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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17. 2021

아무리 해도 안 써지는 날은

how 2 write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촬영 현장을 담은 코멘터리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신애가 저수지에서 발견된 아들 준이의 시체를 처음 목격하는 장면이었는데 계속 NG가 났고 반복되는 컷 촬영에 전도연의 얼굴은 파리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창동 감독은 어느 순간 모든 카메라를 멈추게 하더니 전도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자, 오늘은 우리 모두가 운이 없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찍읍시다. 괜찮아요."

촬영은 그렇게 하루가 밀렸지만 결국 전도연은 다음날 그 장면을 성공적으로 연기해 낸 것 같다. 그녀는 그 영화로 다음 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까.


사진을 배우고 싶어서 임종진 작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결국 사진을 배우진 못했지만 사진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배울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기 전에 대상과 충분히 친해져야 한다는 것, 뭐든 시간을 가지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단 많이 찍어봐야 한다는 것...... 등등. 출사 실습을 나가서 내가 물었다.

"아까 찍고 싶은 걸 못 찍고 지나친 게 자꾸 마음에 걸리네요. 작가님도 그런 경우가 있으시겠죠?"

"그럼요. 그럴 땐 다음날 똑같은 시간에 혼자 거기로 다시 가면 됩니다."  


아무리 글을 쓰려고 해도 안 써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이창동 감독 말대로 운이 없는 날인 것이다. 그러니 임종진 작가가 했던 것처럼 다음날 다시 해보면 된다. 안 써지는 날이 있으면 써지는 날도 있겠지 생각하면서.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마지막 부분을 서른아홉 번이나 고쳐 썼다고 한다. 그도 써지는 날보다 안 써지는 날이 더 많았으리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 내일 아침에 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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