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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8. 2021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거장의 귀환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을 빌어보면 가까운 미래의 미국에서   청소년들의 친구로 복무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팔린다는  정도는 쉽게 수긍이 간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의 주인공 클라라는 이른바 AF(Artificial Friend). 그녀는 태양광을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똑똑한 AF인데 가게에서 조시라는 소녀의 관심을 받고 결국 조시를 기다렸다가 그녀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된다. 조시는 물론 조시의 엄마 크리시나 친구 릭까지 클라라를 좋아하고 클라라도 조시에게 성심을  하지만 그녀는 사람이 아니므로 인간의 삶에 깊이 들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와 조시가 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프라이버시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어두운 구석에서 냉장고를 바라보며  있는 클라라의 모습은 담담하면서도 서글프다. 조시의 집엔 죽은 조시의 언니 샐이나 향상되지 못한 이웃집 친구   비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조시도 몸이  좋다. 클라라는 조시가 언니처럼 되지 않고 건강해지기를 자신의 에너지원인 태양에게 빈다.


SF는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장르지만 거장의 작품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복잡하지만은 않다. 뭔가 미래적 세계관을 설정하고 그 얘기를 하기 위해 차분히 인물과 배경을 설명해 나간다. 그러다가 효과적인 에피소도와 대사들을 배치해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독자들은 어느새 이야기에 매료되어 소설이 현실이라는 착각에 빠지고 자기도 모르는 새 주인공의 편이 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유전자 재배열로 '향상'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함께 사는 놀라운 세계를 창조해 내지만 등장인물은 로사와 클라라 등 AF들과 조시, 매니저, 조시의 엄마, 닉 등이 거의 전부다. 클라라는 인간 세계를 빠르게 습득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 외롭다'는 것까지  깨닫는다.


작가는 로봇을 통해 자신의 아이를 '이어가려' 시도하는 크리시나 카팔디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들만 영혼이나 마음 같은 특별한 무형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뻐기는  아닌가' 묻는 듯하다. 그러나 소설은 이런 이야기만 단선적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교류모임'에서 클라라를 보자마자 장난 삼아 던져보려는 아이들의 무례도 지적하고 릭의 어머니인 헬렌이 아들을 위해  애인 밴스에게 청탁을 했다가 무시당하는 아픈 장편도 보여준다. 이처럼 심오한 주제를 이토록 담백하고  짜인 이야기로 펼쳐놓다니.  가즈오 이시구로는 노벨문학상을  이후에도 여전히 담담하고 사려 깊은 문체로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다. 이전에 『나를 보내지 마』를 읽는 기간이 너무나 좋았는데  소설 역시 그랬다. 대학로 동양서림에서 장류진의  소설과  작품  개를 놓고 고르라고 했더니 아내가 "당연히 이시구로지!"라고 했는데 역시 최근에 읽은 소설  최고다. 이시구로와 친한 소설가 살만 루시디가 "이시는 기타도  치고 가사도  써서  딜런 정도는 쉽게 이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집에 있는 어쿠스틱 기타 위에 책을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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