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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18. 2021

오해하기 딱 좋은 책

박용만의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내가  책엔 아내와 하와이로 신혼여행 가서 신세를 졌던 레이첼이라는 친구 얘기가 나오는데 두산 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이  부분을 읽고는 지인이었던 레이첼에게 연락해 ", 이거 너지?"하고 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혀 안면도 없는 대기업 회장님이  책을 읽어 주었다는 것도 영광스러운데 그보다  놀라운  책을 꼼꼼히 읽고 거기 등장하는 지인에게 연락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박용만 회장은 대기업 회장이면서도 글쓰기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소탈한 사람이고 동시에 젊은이들과의 소통이 원활하기로 소문난 트위터리안에 얼리어댑터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가 재밌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페이스북 담벼락에선 어느 서점에서 가수 요조와 함께 독자 싸인 행사를 하는 모습까지  상태였다. 그래서 어서 책을 구해서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박용만 회장에게서  재밌게 읽었다는 페이스북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웃으며 레이첼 얘기를 했더니 세상 좁다고 하며 같이 웃어 주었다. 책을 보내주겠다고 해서 염치 불구하고 주소를 드렸더니 바로 아내와  것까지  권을 보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아내의 책엔 '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다' 글까지 쓰여 있었다.


책을 펼치면 처음 만나는 글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에서 나오는 "당신은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습니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후배에게서 이 질문을 받은 박 회장은 한참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다가 결국 김치밥을 해놓고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았던 어젯저녁이라 대답한다. 과연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라는 제목의 책을 쓸 만한 소박하고 구체적인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이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첫머리에 이 얘기가 나와서 더 친근감이 갔다.

'기업인 박용만의 뼈와 살이 된 이야기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허리 통증 등 각종 병을 대하는 그의 자세였다. 허리 수술을 세 번이나 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어찌 그리 늘 멀쩡하고 즐겁게 살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는 박용만 회장은 이런 상황들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자 않고 '디폴트'로 놓는 놀라운 인생관을 보여준다. 불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고통이 꽤 많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당하는 고통에 대한 묘사는 너무도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발톱을 깎으려면 30분 정도 스트레칭부터 하고 유연성이 생기도록 준비를 해야 깎는 것이 가능하다. 그나마 순식간에 깎아야지 모양 다듬는다고 시간 끌면 접힌 채 몸을 펴지 못한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책은 제목부터 설마 대기업 회장님이......? 하는 오해를 받기 딱 좋다. 그러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런 오해에서 이해로 가는 지름길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기업 회장님이 중학교 입시 준비할 때 만났던 친구 여동생에게 첫사랑을 느껴 결국 결혼까지 하고 유학을 떠난 이야기도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좋아하는 사진이나 글쓰기 모두 혼자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보다 많이 외롭다는 것도 의외의 캐릭터 아웃팅이다. 게다가 내가 자주 갔던 논현동의 평양면옥과 명동 하동관, 을지로 우래옥, 부암동 계열사, 삼선동 생고기촌 등 쏟아지는 음식점 이야기도 너무나 재밌다. 특히 두산 임원들과 점심시간에 급하게 평양면옥에 갔다가 모두 지갑을 가져오지 않아서 사장님에게 "저 두산그룹 회장인데요. 돈을 안 가져와서......"하고 외상을 했던 에피소드는 진짜 웃긴다(신문에도 났던 일이라고 한다).


"네, 저는 아내를 존경합니다."

박용만 회장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다는 대답이다. 그의  '공처가' 대답이 SNS 타고  널리 퍼졌음은 물론이다. 퍼거슨 감독은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했다지만 그건 SNS 나쁜 점만 바라보았을 때의 얘기다. 박용만 회장처럼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소박한 면모도 보여주는 CEO 확실히 앞서가는 사람이다. 개그맨은  분을 웃기기 위해 밤새워 우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책과 SNS 통해 의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잔뜩 들려주는 박용만 회장도 속으로는 울고 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울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도   없으니까. 그런 사람은 그늘까지 인생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으니까. 오해하기  좋은 , 그러나 읽고 나면  이해되는   박용만의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를 뒤늦게  읽었다. 너무 재미있고 알찬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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