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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01. 2021

너무 다행이다, 한강이란 작가가 있어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의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대개 아름답고 서늘한 그의 문체에 감동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리고 다 읽고 나면 문체를 뛰어넘는 그 아이디어들에 더 감탄하게 된다.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에서 읽었던 「작별」이라는 단편을 예로 들어보자. 소설은 벤치 위에서 잠깐 졸다가 눈사람으로 변해버린 여자의 이야기인데 이 황당한 설정 이후 이어지는 묘사들이 그렇게 사실적이고 슬플 수가 없다. 나중에 유튜브를 통해 들은 얘기지만 작가는 진눈깨비 속에서 녹아내리는 여자를 떠올리면서 아, 눈사람에게는 따뜻함이 죽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뜻함에서 죽음을 연상하는 사람이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강의 이런 형이상학적인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카프카가 지금 살아 돌아오더라도 아이구 형님, 할 만한 소설을 갖게 되었다.


제주 4.3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라는 얘기만 먼저 전해 들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떤 아이디어가 들어 있을까 궁금했다. 여기에 한강 작가 자신을 닮은 소설가 경하가 나오고(진눈깨비 속에 녹아서 사라지는 여자 이야기 '작별'이라는 소설을 지난해 여름에 썼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큐멘터리 영화 만드는 작업을 멈추고 제주도로 가서 목공을 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잘린 인선이 나온다. 편두통과 위경련에 시달리며 유서를 쓰고 있는 경하는 유서를 완성할 때까지만 살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인선에게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메시지가 온다. 수술 동의서 같은 것 때문에 주민증이 필요하겠거니 생각했으나 인선의 부탁은 오늘 안으로 제주도로 내려가서 자기가 기르고 있는 앵무새에게 물과 먹이를 주라는 다소 엉뚱한 내용이었다. 비행기를 타려면 주민등록증이 꼭 필요하니까 다른 거 다 제쳐두고 그 얘기부터 했던 것이다.

한강은 손가락이 잘린 친구에게 병문안을 갔다가 손가락 접합 수술이 성공하려면 삼 분에 한 번씩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아픔을 느끼고 피를 흘려 신경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꾸었던 바닷가 묘지 꿈과 손가락 잘린 친구의 이야기, 그리고 20대부터 몇 번 제주도에서 살았던 경험들이 한데 모이고 또 어떤 내러티브 구조가 떠오르면서 1948년 4.3을 다룬 이 소설이 쓰이게 된 것이다.

경하가 손가락이 잘린 인선 곁에 머물지 않고 제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은 혼자 있을 새를 살리기 위해서였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경하는 제주의 눈보라와 만나 엄청 고생을 하게 된다(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들은 현재형의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눈보라 때문에 어떤 혼(魂)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제주 4.3에 대한 끔찍한 진실을 듣게 된다. 아울러 경산으로 부산으로 대구로 쫓아다니며 죽은 오빠의 흔적 찾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 씨의 사연도 알게 된다.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소년이 온다』 이후에 쓰는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으면 했고 그러면서 '그 어떤 사랑과 애도도 결코 종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쓴 문장인데 그 각오는 300여 페이지에 걸쳐 놀랍도록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과 함께 한강의 짧고 간결한 문장에 실려 결국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표현은 결코 과한 게 아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루었던 『소년이 온다』가 시작부터 독자를 광주 한복판으로 들어가게 한다면 1948년 4월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경하와 인선의 곁을 한참 에두르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폭발적인 아픔의 감각으로 내 안을 휘젓는다. 작가는 왜 인선의 손가락이 전기톱에 잘리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57페이지에서 그녀가 경하에게 속삭이는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목장갑째 잘려나간 손가락 두 개의 메타포로 제주에서 학살당한 3만 명, 아니 보도연맹에 가입해 억울하게 총살당한 수십만 명의 아픔까지 되새기는 작가의 공감능력에 나는 몸을 떨어야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글을 쓰는 동안 작가의 몸이나 심리 상태는 과연 괜찮았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아파보지 않으면 이런 글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문학동네에서 김하나 작가를 사회자로 내세워 마련한 북토크를 유튜브로 보며 갱지 노트에 메모를 하고 있는데 고양이 순자가 책상 위로 뛰어오르더니 노트를 깔고 앉아 버텼다. 고양이의 능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무의미한 행위를 통해 주인(사실은 집사)에게 정신적인 브레이크를 선사해 주는 것. 나는 물을 한 잔 마시고 김하나와 한강의 이야기를 마저 시청한 뒤 개운한 마음으로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아침을 먹으며 아내에게 유튜브를 보여줬더니 내용이 정말 깊고 좋다며 감탄했다. 한강 작가는 물론 김하나 작가까지 다시 보인다며 좋아했다).


제주도에 처음 갔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에만 감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게스트하우스에서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읽고 4.3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주도 사람들은 하나 같이 4.3 얘기만 하면 입을 다문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 제주 출신의 PD가 있었는데 4.3에 대해 물어보니 일반인보다도 더 모르는 게 많았다. 어릴 때부터 그 얘기만 나오면 어른들이 쉬쉬하며 질색을 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강이 소설로 4.3을 다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다음엔 춥고 쓰리고 아프면서도 행복한, 아주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너무 좋다. 『소년이 온다』 리뷰를 쓸 당시에는 긍정문에 '너무'라는 표현을 쓰는 걸 금지하던 시절이라 '너무 좋다.'라고 표현하는 걸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맞춤법조차 바뀌어 이젠 긍정문에도 너무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다시 한번 얘기한다. 우리에게 한강이라는 작가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오늘의 맞춤법 : 째와 채의 사용법 

- :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대로 전부' 뜻을 나타냄. (통째·병째·그릇째 따위.) '목장갑째 잘려나간'

- : (어미 - 뒤에 쓰이어) '이미 있는 상태 그대로' 뜻을 나타내는  (흔히 '채로' 꼴로도 쓰임.  채로 잡다·눈을  채로 밤을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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