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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2. 2021

어제 먹은 물돌이 손칼국수

풍산장터 입구 물돌이손칼국수

첫날 안동맥주를 양껏 마시고 들어온 우리들은 오전 내내 체화정 옆 숙소에서 빈둥거리며 놀았다. 내가 유튜브 강연 촬영 건으로 오후 3시에 줌 회의를 잠깐 하기로 한 것 말고는 특별히 급한 일이 없으므로  다들 여유를 가지고 빈둥거리다가 박재희 선생이 커피를 마시자고 해서 근처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하늘은 속절없이 맑아 날씨가 비현실적으로 좋았다. 차갑게 부는 바람이 머릿속을 탈탈 털어주는 기분이었다.

점심을 어디로 먹으러 갈까 하며 밖으로 나와 걷다가 아내가 공중화장실 안에서 잠깐 검색을 했다며 <물돌이손칼국수>라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사실은 전날도 시장 안에 있는 칼국수집을 가려했으나 그 집이 너무 일찍 문을 닫는 바람에 안동찜닭으로 갔던 것이었다. 풍산장터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테이블마다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기는 쌈밥과 칼국수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곳이라 쌈밥 이인 분과 칼국수 두 개를 미리 주문해 놓고 잠깐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다 돌아오기로 했다. 식당 뒤로 난 갈대밭 길을 걸으니 불어오는 바람과 흔들리는 갈대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이헌준 선생과 내가 똑같이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는 모습을 보고 박재희 선생이 깔깔깔  웃었다.      


아내는 식당이 깨끗하고 여자 사장님이 단정하면 음식도 맛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점심 손님이 빠진 식당으로 들어서니 인물이 좋고 날씬한 사장님이 우리를 맞았다. 식당 안도 깨끗하고 반짝반짝 윤이 났다. 음식이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예상대로 칼국수 국물이 정말 맛있었고 면도 얇고 쫀쫀했다. 반찬도 하나같이 맛있었는데 특히 김치와 총각김치 맛이 끝내줬다. 우리는 감탄을 거듭하며 쌈밥과 칼국수를 나누어 먹었다. 아까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먹고 싶었던 동치미칼국수를 주문할 수 없었다는 이헌준 선생의 말을 듣고 아내가 동치미칼국수도 하나 시켜보자고 말했다. 쌈밥을 다 먹기 전에 동치미칼국수를 추가 주문했더니 식사가 끝나기 전에 국수가 나왔다.


여기는 경상도지만 김치에 검은깨를 넣은  보면 사장님은 전라도에서 오신 분일 거야, 라는 얘기가 나와서 내가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고향이 의성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음식이 하나 같이  맛있냐고 했더니 사장님은 "음식점은 아무나 하면  돼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지."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국물엔  넣느냐는 질문엔 "설명하기 복잡하다"면서 스물다섯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MSG 전혀 넣지 않는다고 했다. 사장님은 원래 골프 레슨 강사를 하던 분이었는데 운동을 하던 아들이 다치는 바람에 전격적으로 음식점을 열어 벌써 8년째라고 했다.

"음식은 그냥 만들면 안 돼. 사랑이 들어가야 돼요." 사장님은 철학이 뚜렷했다. 면을 직접 만드는데 손님이 너무 많을 때는 편하게 기성품을 쓰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다가도 마음을 다잡고 어떨 땐 새벽 네 시 반에 나와 일을 하는 적도 있다. 처음엔 종업원을 쓰기도 했는데 다 자기 맘 같지가 않고 또 그분들에게 함부로 대하기도 싫어 결국 혼자 일을 하게 되었다. 홀 서빙은 아들이 맡아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장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마지막에 나온 동치미칼국수도 너무 좋았다. 아내가 이런 동치미국물엔 밥을 말아먹어야 한다고 하니 이헌준 선생이 "제가 지금 그러고 있잖아요."라며 말하며 밥그릇을 가리켰다. 단골인 이헌준 선생은 가끔 혼자 바쁜 시간에 찾아왔다가 사장님에게 야단을 맞는다며 웃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 유명한 집이었는데 우리는 이제야 식당의 존재를 알고 기뻐하는 중이다. 여름엔 콩국수도 맛있다고 하니 내년에 또 와야겠다. 아, 물론 올 겨울에도 다시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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