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
"나는 지금도 이발소에 가면 머리를 직접 감아요. 다른 사람이 감겨주는 걸 못 견디니까."
광주항쟁 때 시민군으로 활동했다가 공수부대원들에게 체포되어 무지막지한 매를 맞고 모진 물고문까지 당했던 한 노인은 감독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끔찍했으면 3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리 감기는 걸 남에게 맡기지 못할까. 눈물조차 말라버린 그의 꺼먹한 눈이 슬프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유난히 트라우마가 많다. 멀리는 제주 4.3과 6.25가 그렇고 가까이는 세월호가 그렇다. 그 중간쯤에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이라는 커다란 상처가 있다. 아직 아물지도 않았고 진상규명도 되지 못한 상태다.
오늘 아침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김현정의 뉴스쇼' 등 라디오 시사방송에서는 앞다투어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헬리콥터를 타고 온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관이 광주에 가서 시민군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당시 주한민군 정보요원 김용장 씨의 증언을 보도했다. 어제 본 다큐멘터리 [김군]도 광주 항쟁에 대한 영화다. 다만 아주 젊은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 추적 다큐'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기대가 생긴다. 영화를 만든 강상우 감독은 1980년 당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주옥 씨가 훗날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와서 우연히 문제의 사진을 보고 "김군이네..."라고 한 혼잣말에서 힌트를 얻어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북한군 600명 개입설'을 주장하던 지만원에게 북한특수군'제1광수'로 지목된 남자가 사실은 같은 동네에 살던 넝마주이로 추정되며 자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막걸리집에도 자주 놀러왔던 연상의 청년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현재와 1980년 당시 그리고 간간히 1989년 광주청문회 때 장면들을 오가며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사람들과 기자, 시민들을 하나 둘 만나는 감독과 PD들의 여정을 담담히 따라간다. 하지만 그들의 회고와 자료화면들을 보면 당시에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가 매 순간 느껴지기에 보는 사람까지 담담할 순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탄식과 한숨이 흘러나온다. 김군 찾기로 시작된 영화는 끝내 김군을 찾지 못하고 끝난다. 아마도 김군은 죽었으리라. 영화 속 극장 안에서 만나는 세 명의 시민군 동지들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이 영화를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광주는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이젠 다 끝난 거 아닌가? 라는 우리의 생각을 여지없이 부수어버리는 힘 있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나레이션 한 번 없이 이어 붙인 장면들의 연속만으로 긴장감 있게 진행되는 점도 놀랍다. 이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 양희 씨가 이전에 만들었던 [노무현입니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절한 설명 없이도 진실은 다 전달되기 마련이다. 다만 광주항쟁 때 주먹밥을 나눠주던 주옥 씨가 박근혜 탄핵 집회 때 또 주먹밥을 나눠주는 장면을 삽입한 것은 전체 이야기의 촛점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물론 제작진의 고민은 어제 처음 영화를 접한 우리보다 훨씬 깊고 길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어제는 첫 시사회였다. 이제 추가 편집과 색보정, 믹싱까지 손보고 나면 훨씬 더 날렵하고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로 일반 관객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영화의 건투를 빈다. 이 작품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추척극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세대가 새로 쓰는 역사책이기도 하다. 꼭 극장에서 만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