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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연인처럼

추운 겨울, 나를 더 사랑하는 법 (2023-겨울)

by 망고수니


세상에는 사랑할 것들이 참 많다. 연인, 가족, 친구, 반려동물, 음악, 여행… 우리가 살아가는 개성 넘치는 이 시대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더욱 다양해졌고, 이들을 나열하는 행위는 귀찮고도 즐겁다. 확실한 건, 이 모든 사랑에는 힘이 필요하다. 언제 한 번은 대체 그 엄청난 힘의 기원이 무엇인지 새삼스레 고민했고, 길지 않은 시간 끝에 너무도 당연한 답을 냈다. 사랑은 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많은 것을 사랑하는 힘에는 ‘나를 사랑하는 노력’이 수반된다는 것을 말이다.


흔히 대학시절은 마음만 먹으면 사랑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이른바 ‘무한 동력의 시기’라고 불린다. 사실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다는 쉬운 말속에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는 말이 삼켜지면,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의욕과 현실이 나란하지 않은 시기이기에 차근차근 로드맵을 만들어가는 우리는 여러 딜레마에 빠진다. 진정 마음이 향하는 것을 사랑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거나, 해야 하는 일을 착실히 해내느라 정작 마음이 무엇을 향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상황 말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신경 쓸 것도, 어려운 것도 많은지. 나를 사랑하는 과정에 얽힌 고민과, 해결의 실마리를 내밀하게 들여다보자.






자기 계발
: 사랑이 와닿지 않는다면


걱정이 많고 자아탐색 욕구도 짙은 에디터에게는 소소한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대형 서점에 방문해 자기 계발 코너 앞을 서성거리다 결국 구매는 하지 않고 돌아오는 것.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깨달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자기 계발서를 뒤적거리는 기분은 제법 좋다.


'갓생'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자기 계발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YES24의 상반기 도서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자기 계발 분야의 판매량이 25.6% 증가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수천억 자산가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나와 동떨어진 대단한 사업가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가 스펙을 쌓거나 돈을 벌기 위한 방법으로만 소개되면 반감이 든다. 나를 향한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자기 계발과 자기 자랑의 경계선을 나누는 것도 애매하다.


2022년 5월 오픈서베이의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와 같은 영상 콘텐츠에서도 자기 계발 채널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자기 계발을 접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것이다. ‘비밀이 많은 사람이 되세요’, ‘여유 있는 사람이 인기 많은 이유’. 다름 아닌 89.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그림 유튜버 ‘이연’의 영상 제목이다. 수직 드로잉 장면과 함께 자기 계발적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그녀의 영상에는 엄청난 분량의 공감 댓글이 돋보인다. 65.5만 자기 계발 유튜버 ‘드로우앤드류’의 채널도 마찬가지. 젊은 꼰대를 자처한 앤드류의 조언 콘텐츠인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와, 다양한 분야의 연사를 초청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그린룸 토크’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의 첫 순서로 자기 계발을 다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자기 계발'이라는 말에서 막연하게 느껴지는 부담감은 그 단어가 지닌 깊은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리 딱딱한 주제일지라도 유튜브 콘텐츠로 만나면 훨씬 잘 기웃거릴 수 있기 때문일까,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자기 계발적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그들의 콘텐츠는 담백하다. 성과를 드러내 대단한 사람임을 억지스럽게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울림을 준다. 그들의 애청자이자 고민 많은 대학생으로서, 일상적인 수준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며 적당한 자극과 잔잔한 위로를 받는 것은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취미
: 사랑을 비교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향한 사랑을 단순히 ‘자기 계발’이라고 정의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렇다면 이 사랑을 위해 진정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취미’와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 나이, 거주지와 같은 기본 정보를 지나 '취미'를 언급하는 것처럼, 취미는 우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취미와 취향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노래방 가기'는 취미이고, '인디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취향으로 볼 수 있다. 취미가 활동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반면, 취향은 개인의 선호도나 감각을 나타낸다. 물론 디테일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취미와 취향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콤마어들과 취미와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고민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취향은 많고 확실한데, 그렇다 할 취미를 잘 모르겠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행위는 즐겁기 마련인데, 우리는 어쩌다 이 질문을 두고 한없이 복잡해지는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이 쌓이던 차, 다양한 취미와 취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콤마어 S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Q. 이제껏 주요했던 관심사나 취미가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삶을 꾸려오셨나요?
A. 좋아하는 게 많은 만큼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쓰는 편입니다. 저는 운동, 그림, 책을 좋아하고 악기 다루거나 글 쓰는 것도 좋아해요. 운동하거나 그림 그리는 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취미 활동이라 애정을 많이 두는 것 같습니다. 생각 많을 때는 일기든 그냥 글이든 쓰고 나면 더 이상 그 생각들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가득해져서 좋아요. (중략)

저는 그냥 묵묵하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할까?’, ‘어떤 게 내 진로에 도움이 되고 삶에 도움이 될까?’ 하는 큰 고민 없이 주어진 일들을 차분하게 해내며 틈틈이 새로운 것들도 이것저것 해봐요. 그러다 보면 분명 나의 취향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뚜렷해집니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게 저는 좋아요.


S의 이야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대단한 취미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그냥’ 해보는 그녀의 태도였다. 취미를 찾는 여정은 시선의 방향을 내면으로 두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좋아 보이는 것’이 참 많다. 심지어 그대로 따라 하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인기 있는 장소에 방문한 사람들은 즐거워 보이고, 여행이 취미라며 주말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사람도 뭔가 있어 보인다. 그들을 따라 인기 스폿을 방문해 보기도 하고, 가끔은 여행을 떠나 보기도 하면 ‘크게 나쁘지는 않다’는 감정이 들지만 결국 우리는 생각한다. “저 정도의 깊은 애정을 가져야지 취미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쉽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답이 없는 이 문제와 씨름하며 고통을 자처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다양한 것을 접하고 즐거운 감정이 드는 순간을 포착하다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취미를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취향
: 사랑에 단단함이 필요하다면


사랑의 대상이 명확한 사람은 단단하다. 나락에 떨어질지라도 좋아하는 것을 움켜쥐고 다시금 올라올 수 있다. 이를 잘 나타내는 단어 ‘취향’은 개인의 선호도나 감각을 뜻한다고 했다. 취미보다 어려운 취향에 대한 것. 이런 취미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취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고민에 빠지곤 한다.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취향 찾기 대작전’이었던 에디터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강렬하지만 뻔하지 않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광고’가 좋았다. 관련 학과에 입학했고, 학회와 동아리로 바빴으며, 그 덕분인지 공모전에 나가서 상도 받았다. 꽤 이른 시기에 인턴까지 합격한 나는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큰 걱정 없이 지냈다. 바빴기 때문에 취미에 대한 고민도 나에게는 불필요했다.


그러나 5개월의 인턴생활을 마친 나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불안과 무기력에 휩싸였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였다. 광고 그 자체에 사랑을 쏟았던 나는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괴리감에 크게 낙담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었다면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무엇이 중심인지 몰랐던 나는 오래 흔들렸다. 격변하는 상태 속 불확신과 싸우다 보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는 차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만이라도 확실히 알고 싶었다. 취향의 색깔이 아직은 무채색이라고 여겼던 나는 다채로운 사람들이 가득한 문화마케팅 학회에 들어갔다. 예정에 없던 휴학도 감행하면서 처음으로 부담 없이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러던 중 ‘내가 남들에 비해 무식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나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을 접했다. 주변 친구들은 영화를 100편씩 보고, 전문가에 빙의해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특히 기록에 열심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분석하고,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게 좋아 한 달에 열댓 개씩 블로그를 써댔다. 나의 기록물을 본 친구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또 즐거워했다. 나만의 나락에서 내가 움켜쥔 것, 아니 애초에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기록’이었다. 기록으로 하여금 좋아하는 것을 가시화할 수 있었던 나는, 그 비슷한 것들의 꾸러미를 ‘취향’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취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비교를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취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외부로 시선을 돌려 보는 것을 권해본다.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특별함에 새삼스럽게 이름을 붙여보자. 나를 구성하는 특별하고도 고유한 감각은 나를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연인처럼 대하라는 말이 있다. 연애를 할 때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것처럼, 이를 자신에게도 적용해 보라는 뜻이다. 스스로의 어떤 부분을 사랑할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과정은 가치 있다. 그러나 사랑은 항상 어려우며 잘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 ‘나’에 대한 것이니, 그 과정만큼은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향한 사랑’이라는 이 말이 진부하면서 오글거리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말 연초가 맞닿은 싱숭생숭한 겨울은, 오글거림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거리에는 이미 2024년의 달력과 다이어리가 전시되어 있고, 사람들의 옷소매가 심장보다 팔 끝 발끝에 가까워짐은 한 해를 마무리할 준비를 하라는 형형색색의 시그널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나를 사랑하기에 가장 적합할지도 모를 이 계절, 추운 날 껴입는 옷과 반비례하는 만큼 나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사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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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즈널 이슈

해당 글은 대학생 광고마케팅 잡지인 '콤마매거진'의 겨울호에 수록되는 4p 스페셜 기사였다. 겨울호의 컨셉이 '사랑'이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겨울호에 담을 사랑을 고민해야 했다. 겨울이 다른 계절과 다른 점은 한 계절 사이 해가 바뀐다는 것이다. 겨울철의 싱숭생숭함은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일 것이라 판단,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주제로 선택했다.


2) 타깃독자

콤마매거진의 독자층은 대부분 대학생이다. 비중 있는 네 페이지를 홀로 채워야 했기 때문에 그들이 지루해하지 않을 소재를 선정해야 했다. 다양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 연말연초 시즌 대학생들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도록 [자기 계발 - 취미 - 취향] 3 구조로 글을 전개했다.


3) 자료 수집

YES24 상반기 도서 판매 통계에서 자기 계발 도서 판매량 25.6% 증가 데이터 인용
오픈서베이 조사 자료에서 유튜브 자기 계발 콘텐츠 증가 트렌드 확인
유튜브 인기 채널(드로우앤드류, 이연)의 콘텐츠 구조와 댓글을 분석하여, MZ세대가 느끼는 감정과 공감 포인트를 파악
인터뷰 활용: 콤마매거진 활동 중 만난 인터뷰이, 개인적 경험담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 추가


* 대학생 광고마케팅 잡지 콤마매거진 [Issue.52 사랑] 스페셜 기사 4p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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