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장류진 (feat. 소설가 박상영)
그녀의 데뷔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막 3쇄에 들어가던 즈음이었다.
소위 '판교 소설'의 창시자이며, 직장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로 대표되는 소설가 장류진은 요즘 가장 핫한 여성 작가이자, 내가 애정하는 여성 소설가이기도 하다. (TMI이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남성 소설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잘 알려진 박상영 작가이다.)
잡지를 후루룩 훑어가던 내 시선이 인터뷰 꼭지의 대문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던 그녀의 사진에 홀린 듯 멈추어 섰다. 최첨단을 달리는 미래지향적 건물로 가득한 도시, 판교를 배경으로 상큼 발랄한 표정의 젊은 여성이, 팔짱을 끼고 45도 위로 시선을 향한 채 서 있는 사진 - 왜 작가들은 사선으로 처리하는 시선을 즐기는 걸까? -이었다. 작가라기보다는 함께 쇼핑하고 놀러 가면 좋을, 이웃에 사는 귀여운 여동생 같은 그녀의 첫 이미지가 그때까지 '작가'라는 두 글자에 내가 가졌던 선입견을 뒤흔들었다.
기사를 다 읽고 난 다음날 나는 그녀의 책을 주문했고, 바쁜 와중에도 사흘 만에 책에 실린 여덟 개의 단편들을 완독 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중간중간 피식피식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중2병 걸린 사춘기 남자아이 입에서나 터져 나올 법한 비속어가 곳곳에, 하지만 너무도 적확하고 해학적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은 신선한 기운을 내뿜으며 쉴 새 없이 반짝였다.
계속 안으로만 침잠하는 것 같은 무거운 심리묘사 하나 없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고, - 그녀는 종종 작품이 가볍다는 비판을 듣는다고 한다 - 오히려 넘기는 책장 한 장 한 장의 무게가 크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찬찬히 그려가며, 이야기를 곱씹으며 읽게 되었더랬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그동안 내가 '한국 작가들의 단편'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렸던 '과한 독백과 심리 묘사', '과장된 자아', '이 세상의 슬픔은 모두 나의 것'같은 기존의 관념들을 시원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녀의 단편들은 소설적 서사가 탄탄하면서도, 단편 드라마가 머릿속에 그려지듯 - 실제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20년' KBS 드라마 스페셜'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 작품 속 캐릭터와 대사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단편소설이지만 정적이지 않고, 장편소설이나 장르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동적인 감각이 끊임없이 독자들의 심상을 자극한다.
문학평론가 인아영은 이런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듯 장류진의 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류진의 소설에는) 한국 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듯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 깊은 우울과 서정이 있었던 자리에는 대신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리 인식, 신속하고 경쾌한 실천, 삶의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있다...'
장류진은 말한다. '소설은 고귀하지 않다'라고.
어찌 보면 기존의 문단을 향한 도전과도 같은 대담한 이 발언에서 나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작가 박상영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느꼈던 쾌감 혹은 해방감과 궤를 같이 하는 감정이었달까.
"틀어박혀 지내는 작가들의 많은 소설들이 '노잼'입니다... (독자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이야기를 쓰는 것은 마치 똥을 싸는 것, 즉 ‘배설’을 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장류진의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인, 단단히 땅에 발을 붙인 자들에게서 목격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현실과 맞닿아 있기에 더 친근하고 쉽게 읽힌다. 물론 기본적으로 그녀의 문장이 품고 있는 탁월한 '가독성'이 큰 역할을 하지만, 작가 스스로가 독자들의 세상 속에서 함께 부대끼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일반인과 차별되는 고귀하고 기품있는 문장들로 대중들이 작품에 쉬이 다가가기 힘들게 만드는 기존 한국 문단 작가들의 고질적 병폐를 말끔히 씻어낸다. 판타지를 보면 어쩐지 김이 새는 것 같은 (나와 같은) '현실 밀착형'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고도 공감 가는 매력을 발산한다.
지루한 묘사나 현학적인 언어들이 없는, 잰 체하지 않고 담백한 그녀의 이야기는, 속도감과 단시간의 몰입도를 중시하는, 문학 작품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MZ세대들을 위해 앞으로 한국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듯하다.
part 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