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튜브, 각종 OTT로 영상이 넘쳐나는 요즘, 오히려 한 영상을 진득하니 보는 끈기는 부족해진 듯하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확실히 나 자신은 그렇다.
드라마 본방을 사수하기 위해 열일 제쳐두고 티브이 앞에서 대기를 타고, 본방을 놓치면 추가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지나간 회차를 복습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드라마 전편을 다운로드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드라마 속 세상에 빠져있었던 나였건만..
세월 따라 무뎌진 내 흥미의 소구점이 웬만해서는 작동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드라마 서사나 캐릭터의 매력도가 떨어진 탓인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더 이상 임용고시를 앞두고도 차마 패싱 하지 못했던 <하얀 거탑>, 보채는 갓난아이를 어르면서도 시청을 포기하지 못했던 <자이언트>, 짝꿍과 함께 포복절도하다가 눈물마저 찔끔거리게 만들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 잠 많던 내가 새벽잠 설쳐가면서까지 화면 속에 빠져 있게 만들었던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드라마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이 내 구미를 자극하긴 하지만, 어쩐지 예전 <시그널>이나 <터널>을 볼 때만큼의 쫄깃쫄깃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유연석의 연쇄살인마 연기가 꽤 훌륭하긴 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예쁜 여 주인공과 말쑥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가슴 절절한 사랑을 주고받던 그가, 퀭해진 얼굴에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사이코패스 같은 대사를 무심히 내뱉는 장면이 주는 '기기한 즐거움'이 있다.
그래도 그립다. 그 시절이. 지금의 내겐 아무리 재미있는 걸 봐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어쩌면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다시 톺아보고 싶어졌다. 나를 사정없이 끌어들이던 그 시절의 드라마 보던 풍경을.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라마의 세세한 부분은 희미해졌을지 모르겠으나, 드라마를 보던 내 생각과 마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었던 풍경만큼은 어제일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 일들에 시들해진다는데, 인간을 그리 만드는 세월의 짓궂음에 이렇게라도 저항해 보고 싶다. 지금보다 어리고 젊었던 내가 가졌던, 즐거움을 느끼는 유연했던 감각과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켜 봐야겠다.
세월은 오늘도 앞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시간을 거슬러 그때의 감각을 되살리고 말 테다!
이번 연재를 구상하며 제일 처음 떠오른 드라마는 배우 김명민과 이선균 주연의 <하얀거탑>입니다. 보신 분들이 많으실지 궁금하네요. 이 드라마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제 관점에서는) 원작을 훨씬 능가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본방 시청률은 10퍼센트 남짓인 드라마였지만, 그 임팩트만큼은 거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 다음 주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