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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n 19. 2022

윙컷 그리고 길들이기

최근 집안에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심해진다. 공사를 해서가 아니다. 반려조 앵무새들이 격하게 날갯짓하는 소리다.

우리 집에는 모란앵무 한 마리와 왕관앵무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 방에는 각 하나씩, 총 두 개의 새장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새장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앵무새들이 잠잘 때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앵무새들이 가슴 근육을 가능한 많이 움직이도록, 그래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건강하게 살도록 하고 싶어서 거의 새장 밖에 풀어놓고 지내기 때문이다. 외부 사람들이 보기엔 문화적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만한 광경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새들이 머리 위를 활보하고 다니는 경우가 잦다. 이제는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머리 위를 오가는 새들이 보이지 않으면 되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새들의 날개깃이 너무 자라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들은 사람을 뒤쫓아 오다가 닫히는 방문에 부딪혀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버티다 버티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윙컷'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날개깃 정리를 하러 간다.


며칠 전에도 새들을 데리고 최근 집 주위에 새로 문을 연 앵무새 카페에 들렀다.

갈고리처럼 변해가는 발톱과 수북하게 자라난 날개깃을 정리하기 위해 카페 직원에게 새들을 맡겼다.

그런데 10분쯤 지나 새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온 직원의 표정이 어쩐지 심상찮아 보였다.


"모란앵무가 성깔이 제법 있네요... 이렇게 자꾸 입질하게 두시면 안 되고, 그러지 못하도록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 하세요. "


이 말을 하는 직원 손가락에 군데군데 물린 듯한 상처가 보였다. 조금 미안한 맘이 들었다.

모란앵무들은 덩치에 비해 부리가 크고 튼튼하며 부리 끝이 날카로운 편인데,  '입질'-부리로 무는 행위-을 하며 애정 표현을 하거나 자기 방어를 한다.

직원은 입질을 못하도록 교육시키는 방법을 여러 차례 우리에게 시연해 보였다. 그 방법이란, 입질을 할 때 곧바로 새부리를 손으로 꽉 움켜잡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새들은, 입질을 하면 원치 않는 두려운 상황에 처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버릇을 고치게 된다고 했다.


새들을 쓰다듬거나 손 안에서  데리고 놀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손을 물리게 되면 짜증이 나기도, 정말 제대로 교육이라도 시켜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카페 직원이 말한 대로 참교육을 시켜보리라 마음먹고 여러 차례 '입질 고치기'를 시도해봤다. 그런데 앵무새 카페 직원과 우리 가족들에 의해 손으로 수차례 제압을 당한 새는, 어느 사이엔가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풀이 죽었다. 평소처럼 재잘거리지도, 씩씩하게 밥을 먹지도,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겁먹은 자세로 하루 종일 구석에 처박혀 그저 조용히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순간 정신이 확 들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욕심에, 내가 좀 편하자고 '반려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새를 억압하고 내 식대로 길들이려 하고 있다니.... 새는 나름의 방식으로 내게 애정표현을 하고 자기 방어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새의 입장에서 사람 손은 엄청 두렵고 낯선 존재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다리가 다섯 개나 달린 채 흐느적거리며 움직이는 위협적인 대형 연체동물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니.




반려조와 즐겁게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앵무새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그러면서도 난 그 아이들을 오로지 내 입장에서, 내 편의에 맞춰 길들이고자 마음먹었던 거다. 그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불편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오롯이 내게 맞춰 녀석들을 길들이려 한 나 자신이 순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우리 집 새들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강자'의 입장에 있다. 그러니 내가 녀석들을 길들이려 들면 강압적인 폭력이 행사될 가능성이 크다. 해서, 결심했다. 녀석들에게 내가 '길들여지는' 쪽을 택하기로.

때로는 녀석들에게 손을 좀 물리기도 하고, 이따금은 내 손을 거부하는 녀석들에게 섭섭함을 느낄 지라도 내가 받아들이고 적응하자고 말이다. 이것이 더 아름답게 길들여지는 모습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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