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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ug 24. 2024

진주만 하늘에 또 다른 우리가

와이키키의 숙소에서 42번 버스를 타고 진주만까지 가는 데에는 한 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에메랄드 바다빛에 질세라 하늘이 강렬한 원색의 빛을 발하던 날이었다. 하와이의 대중교통을 본격적으로 이용한 첫날이었고, 어느 정도 현지 공기에 적응이 된 이후여서 맑게 갠 정신으로 거리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 하와이의 거리가 현저히 이국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거리는 전통 복장을 입고 훌라춤을 추는 무용수들 대신, 종종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의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가득했으며, 적당히 지저분했다. 물론 키 큰 야자수는 어디에나 즐비했지만, 버스에 닿을 듯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는 비닐 천막들이 오히려 내 시선을 더 붙들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이야기 풀어볼게요)



우리는 진주만에서 'USS ARIZONA' 기념관을 방문했다. 진주만 폭격 당시에 두 동강이 난 채, 천 백 명이 넘는 승조원들을 품고서 그대로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애리조나호'를 추모하기 위한 곳이다. 영화 <진주만>에서도 일본군에 의한 애리조나호 폭격과 침몰 과정이 제법 긴 시간에 걸쳐 등장하는데, 현재 애리조나호는 침몰한 그 모습 그대로-물론 세월의 흔적은 느껴진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수심이 얕은 지형인 진주만이라, 덩치 큰 전함인 애리조나호의 윗부분 중 일부가 물 밖으로 솟아올라와 있어, 육안으로도 일부 구조물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놀라웠던 점은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배의 실루엣 또한 제법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애리조나호 기념관은, 애리조나호가 가라앉아 있는 위치의 수면 위에서 애리조나호와 십자 형태를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버드아이뷰로 본 수면아래 애리조나호와 수면 위의 애리조나호 기념관(출처: USS Arizona 기념관 예약사이트) 팔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선체에서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리조나호 기념관에는 진주만 폭격 당시 사망한 1,177명의 이름이 고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폭격이 있었던 건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무려 팔십 년도 더 지난 일이라 까마득하게만 느껴졌지만, 애리조나호의 마지막 생존자가 올해 4월 10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하니, 진주만의 그 아침이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역사와 그리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기만 한 진주만의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여행을 떠나오기 전 영화 속에서 보았던 그날의 하늘이 떠올랐다. 그러자, 휴일의 평화롭고 고요한 하늘을 순식간에 덮쳤을, 새까만 전투기 떼가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았다. 한 나라가 품었던, 결코 용납되지 못할 야욕은 한반도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 멀리 태평양 한가운데에서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결국 ‘인류에게 저주’라고도 일컬어지는 핵폭탄의 사용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애리조나호 기념관의 새하얀 벽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름을 마주하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숙연함은, 애리조나호에서 희생된 분들보다는 1941년 당시 '민족 말살 통치기'하에서 스러져갔을 이 땅의 청년들을 향한 것이었다. 1941년 진주만의 흔적을 대하며 나는, 태평양 전쟁 중에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성을 무참히 말살당한 채, 가미카제 공격의 일원으로 끌려갔을, 그 시절 우리의 청년들이 생각났다.

영화 <진주만>의 일본 전투기 폭격 장면
영화 <진주만>의 전투기 격납고 폭격 장면
진주만 폭격 당시 격납고 부근의 현재 모습(ft. 나의 도촬로 찍힌 부녀)
격납고 앞의 전경

일제 치하 비극의 역사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날아간 그곳에도 여전히 상흔을 남기고 있었다. 나는 진주만에서 대니(영화 '진주만'의 조시 하트넷 역)가 아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앳된 얼굴의 또 다른 우리를 떠올렸다. 진주만의 하늘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저 평화롭기만 했고, 그래서 더 나는 저릿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 알아두면 유용할 진주만 일대 여행 정보 =

1) 애리조나호 기념관까지는 무료 보트를 타고 들어간다.(아래 영상 참고) 승선 시간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멀리서 보이던 바다 위 새하얀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내가 진주만 폭격이 있었던 그 자리에, 애리조나호가 잠들어 있는 그곳에 다가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

2) 애리조나호 기념관 방문자센터까지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지만, 애리조나호 기념관에 가기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된 역사적 장소이니만큼, 예약하는 과정이 상업적이라기보다는 기본적 형식을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금액은 1인당 1달러이며 예약 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예약이 완료되면 사이트에 입력한 본인의 이메일 주소로 큐알코드가 날아온다.

https://www.recreation.gov/ticket/233338/ticket/16

3) 애리조나호 기념관 예약사이트상에서는 입장 한 시간 전까지 도착할 것을 권장했지만, 실제 현장을 가보니 예약 시간 2,30분 전에만 도착해도 충분했다. 프로그램 시작 전에 소지품을 유료로 맡겨야 하는데, 가방 하나당 7달러의 비용이 든다. 우리의 경우에 핸드백 하나와 그보다 조금 작은 휴대용 가방이 있었는데, 친절한 직원의 안내로, 작은 가방을 큰 가방에 넣은 채 맡겨 하나의 가격만을 지불했다.


4) 애리조나호 기념관, 미주리호 그리고 격납고가 있는 항공센터 사이에 무료 셔틀이 운영되고 있다. 위의 동영상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성의 카메라 부근에 슬쩍슬쩍 비치는 것이 미주리호인데,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입장료는 미주리호가 항공센터보다 더 비싸다. 혹시 둘 중 한 장소를 선택해서 갈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개인적으로는, 항공센터보다는 미주리호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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