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와 장애
둘째는 아직 초등 저학년이라 자신의 두 귀에 달린 인공와우를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초등 고학년이 되면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춘기와 장애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엄마인 나는 벌써부터 긴장이다. 사춘기 때는 전두엽이 꼬일 대로 꼬이는 시기라 아무리 온순한 둘째라도 어떻게 자신의 장애를 몸 밖으로 표출할지 아니면 아예 꽁꽁 감출지는 겪어보지 않았으니 자신만만해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때가 되면 엄마의 영향력은 거의 밑바닥이 될 것이고, 만약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와우를 감추기' 전략을 쓴다고 한들..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작년과 올해에는 서울에 있는 많은 특수교육청에서 앞다투어 청각장애 이해 교육을 신청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는 편견 없이 장애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조기교육이 되었고,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쭉 빨아들이듯 청각장애에 대한 정보를 잘 받아주었다.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을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식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시간이 되었다. 장애에 대한 이해 교육이야말로 다양한 연령대에서 두루두루 유익한 교육임을 새삼 느낀다.
강사 입장에서는 모든 수업이 감사하고, 한마디라도 더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사춘기 청소년들이 득실득실한 교실에서 장애 이해 교육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솔직히, 그 교실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말은 똑같이 하지만, 표정 하나하나, 반응 하나하나가 신경 쓰인다. 다들 눈을 깜빡거리며 '이걸 왜 들어야 하지?' 하는 표정, 특히 고등학교에 가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눈빛을 보내는 아이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가 얼마나 깊이 닿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서 초등 고학년부터 중·고등학교에 갈 때는 꼭 마이쥬를 챙겨간다. 강의를 하면서 알게 된 중요한 진리는 쪼꼬맹이들보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마이쥬 앞에서 더 진지해진다는 사실이다. 마이쥬 한 봉지면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어준다. 이것이 바로 마이쥬의 매직!
사춘기 난청 아이가 있는 학급에 들어가면, 그 아이가 자신의 장애를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따라 수업의 분위기와 교육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난청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장애를 커밍아웃했는지, 아니면 그걸 숨기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교실의 공기가 확연히 다르다. 올해 초부터 청소년 학급에서 많은 수업을 진행했는데, 놀랍게도 2/3 정도의 난청 아이들이 여전히 자신의 장애를 반 친구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이마다 청력의 정도는 다 다르다. 하지만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흡수하는지, 그 '장애 흡수 데시벨'은 더 제각각이다. 같은 난청을 가진 아이라도 어떤 아이는 자신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지만, 또 어떤 아이는 그걸 숨기며 조용히 살아간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아이의 비밀을 존중하며 아는 척하지 않고 수업을 시작한다. 청각장애 이해 교육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 교실 안에 있는 난청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떤 메시지가 그 아이에게 조금 더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자연스레 들면서, 교육을 진행할 때 더 깊은 사명감이 생긴다. 내 이야기가 그 아이에게 닿을 수 있기를, 그 아이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한 마디 한 마디에 마음을 담는다.
어느 날,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반에 강의를 다녀왔다. 그 반에는 양쪽 귀에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 여자아이, 애플이(가명)가 있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이는 반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인공와우에 대해 직접 소개하고, 언제 잘 안 들리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고 했다. 장애를 숨기지 않고 스스로 공개한 애플이 의 용기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이렇게 아이가 자신의 장애를 오픈한 반에 가면, 교실의 분위기는 훨씬 따뜻하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궁금증을 풀고자 했다. 특히 친구들이 인공와우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는데, “애플아, 너도 음악이 저렇게 들려?”라는 질문들이 나왔다. 내가 인공와우로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 시뮬레이션을 보여주었을 때, 그 아이들은 “음악이 저렇게 들린다고?” 하고 놀라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애플이를 바라봤다.
고학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사소한 오해로 인해 마음이 상하기도 쉬운데, 그들은 이제 애플이가 왜 때때로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질문이 애플이에게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애플이도 더 편안하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애플이가 자신의 장애를 이렇게 당당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 깊이 감사했다. 친구들 속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를 보면서 애플이의 엄마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플이를 키우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용기와 노력이 있었을까?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란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부러운 일인지...
며칠 후에 나는 ‘와우 감추기’ 전략을 쓰고 있는 4학년 남자아이 포도(가명)가 있는 교실에 다녀왔다. 포도는 양쪽에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강의를 준비하기 전, 특수 선생님과 어머님과의 상담에서 포도의 상황을 미리 전달받았다. 두 분 모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의를 신청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가 와우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하는 걸 꺼려해서, 절대 티 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머리도 자르지 않고 일부러 길고 있어요.” 심지어 포도의 어머님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계셨지만, 몇 년 동안이나 아들의 머리를 자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매일 와우를 숨기고 학교에 가야 하는 포도의 무거운 마음이었다.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 아이의 심정이 얼마나 힘들까. 어머님은 아이가 와우를 감추지 않고 친구들에게 다 오픈하고, 마음 편히 학교 생활을 하길 바라고 있었지만, 아이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도, 포도도 얼마나 답답할까.
수업을 시작하려고 교실에 들어가자, 금세 머리 긴 학생이 눈에 띄었다. 포도였다. 이런 경우 절대 포도와 눈이 마주치거나, 그를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마치 그 반에는 난청 학생이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다행히도 포도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잘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업은 3~4교시에 걸쳐 진행됐다. 반 아이들은 생각보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특수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모두 포도의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하고 계신 듯했다. 수업 중에도 반 친구들은 보청기와 인공와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 동안, 반 아이들 전부가 담임 선생님과 함께 보청기로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너무 시끄러워요. 공부할 때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요.”, “이거 끼고 달리기 하면 빠지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친구들이 직접 경험하고 말해주니, 나는 그들의 반응이 정말 고마웠다.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담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에게 말했다. “강사님, 포도가 자신이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말해 달라고 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요? 진짜요?” 눈물이 차오르는 걸 억누르며, “선생님, 저 정말 눈물 날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네요.”라고 말했다. 마음 한구석에서 터져 나오던 감동이 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포도는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나눌 준비가 된 것이었다. 그 순간이, 그 아이의 작은 변화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런 일은 정말 드문 일이다. '어디서 그 큰 용기를 얻었을까, 어떻게 마음을 바꾼 걸까?!' 4교시 수업 중간에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반에도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포도야, 잠깐 일어나 줄래?” 포도가 일어나자, 주변 친구들이 그에게 엄지 척을 해주기 시작했다. "우리 멋지게 수술받고 용기 내준 포도를 위해서 손뼉 쳐줍시다!" 마치 포도의 용기에 대한 찬사처럼, 친구들의 눈빛과 행동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의 포도는, 아마도 그동안 자신이 움츠렸던 마음을 조금씩 펴며, 친구들에게서 따뜻한 친절과 지지를 경험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경험이 포도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만약 이 용기를 바탕으로 5학년, 6학년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학기 초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와우를 친구들에게 오픈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는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
사춘기는 누구에게나 험난한 시기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몸과 마음이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사춘기와 장애가 짬뽕이 된다면... 그 마음 오죽할까? ‘왜 나만 매일 와우를 착용해야 할까? 왜 남들은 필요 없는 보청기를 내가 써야 하지?’ 이런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수없이 반복되겠지. 보청기나 와우를 벗어던지고 싶은 순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세상 속에서 ‘왜 하필 나일까?’라는 물음이 마음 깊이 자리 잡을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포도가 자신의 인공와우를 친구들에게 오픈한 그 순간은 포도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으리라. 이 순간이 포도가 12년 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자신의 와우를, 그 무거운 짐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진 날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친구들의 응원과 선생님의 지지, 그 모든 것이 포도를 더욱 용감하게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께서 "강사님, 정말 역사적인 날이에요."라고 말씀하시는데, 포도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등교할 생각을 하니, 너무 눈물이 났다. 포도가 오늘의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며, 앞으로도 자신의 장애를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포도야, 네가 보여준 용기 덕분에 선생님은 오늘의 수업이 더욱 특별했어. 용기 내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