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너의 세상
아이가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는 상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잠잘 때는 인공와우를 빼서 건조기에 넣어둔다. 아이는 이 시간 동안 완전한 무음 속에서 자게 된다. 잠자는 동안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나도 아이는 알 수 없다. 둘째, 샤워할 때는 와우를 물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반드시 빼야 한다. 샤워 중 갑작스러운 소리나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아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셋째, 와우 배터리가 방전될 때는 즉시 소리 없는 세상에 갇힌다. 배터리 경고음이 울리면 깜빡이지만, 놓칠 경우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다.
작년 어느 날 아침 6시쯤, 갑자기 '경고알람'이 심하게 울린 적이 있었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대피하라는 긴급 알림이었다. 다행히 잘못된 알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문득 둘째의 인공와우가 마음에 걸렸다. 내가 항상 상상만 해왔던 그 불안한 시나리오가 떠오른 것이다.
가끔 둘째가 성인이 되어 혼자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는 상상을 하는데, 그 경고알람을 듣고는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자느라 인공와우를 건조기에 넣어둔 상태라, 아이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갑자기 건물에 불이 나거나, 대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아이는 경고 알림도, 문 두드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위험에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무리 불안한 생각을 떨쳐내려 해도, 그 막장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오른다. 너무 극단적인가? 그렇지만 불안한 시나리오라는 게 늘 그렇다
어느 날은 아이가 샤워를 하고 있을 때를 상상해 본다. 갑작스럽게 위급 상황이 발생해도, 현관문을 아무리 세게 두드려도 아이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언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면서도, 샤워하면서도 늘 곁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전쟁이나 재난 상황이 발생해 와우를 충전할 수 없게 된다면, 그때 아이는 더 이상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텐데,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수어를 배우거나, 입술을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하나?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걱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의 안전에 대한 이런 걱정들은 부모로서 떨쳐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자는 도중에 울리는 알람은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샤워 중 위급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샤워 중 집에 '불이 나면 화장실 불을 세 번 껐다가 켜는' 그런 나름의 비상 신호까지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대비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못 듣게 되는 상황은 항상 걱정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인공와우가 세상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 고리를 놓쳐버리면 벌어질 일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이런 걱정들이 매일 쌓여가는 이 어미의 마음도 모르고, 아이가 커가니 아이는 와우의 장점을 아주 영리하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인공와우를 통해 소리를 듣는 난청 아이에게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소리를 들을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인공와우를 빼면, 그 순간 세상전체가 무음모드가 된다. 비장애인들은 아무리 귀를 막아도 주변 소리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데, 완벽한 고요라니! 가끔은 그런 완벽한 고요가 부러울 때가 있다. 소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 쥐 죽은 듯한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어떤 걸까? 그 침묵의 세계에서 아이는 어떤 안도감을 느낄까? 때로는 그 고요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건 아닐까 싶다. 완전한 고요 속에서의 평온함, 요즘은 그게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오늘도 아이는 아침 6시 40분쯤 일어나 혼자 거실로 나가 책을 읽고 있었다. 잠에서 깬 나는 옆에 없어진 아이를 확인하고, "00아" 하고 불렀는데 대답이 없다. ‘아, 또 와우를 끼지 않았구나.’ 요즘은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와우를 끼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잘 때나 샤워할 때를 제외하고는 잠시라도 소리를 놓치는 게 싫어서 무조건 와우를 끼워주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가 그 소리 없는 시간을 오히려 우아하게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간을 그냥 두기로 했다. 소리가 없는 아침이 되려 아이에게는 휴식 같은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책 읽는 모습이 너무 예뻐 나는 아이폰으로 그 아침을 담으려 찰칵하는데도, 아이는 어느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다.
일곱 시쯤 나도 거실로 나와 아이 앞에서 독서할 준비를 했다. 아이패드로 찬양 연주곡을 틀고,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이는 여전히 책에 몰두하고 있었고, 찬양 연주도, 커피 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7시 30분쯤 밖에서 공사 소리가 두두두두, 진동처럼 들려왔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그 시끄러운 공사 소리가 듣기 싫어 속으로 투덜댔지만, 아이에게는 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평온한 모습을 보며, 잠시 아이의 고요한 세상을 부러워해 본다.
한참 책을 읽던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엄마, 투포환이 뭐야?"라고 묻는다. 나는 무심코 "어... 무거운 쇠구슬 같은 거... 그걸 던지는... 아, 너 와우 안 끼고 있구나."하고 웃음이 나왔다. 들리지도 않으면서, 마치 늘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묻는다. 아이는 자주 이렇게,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도 마치 항상 모든 것을 듣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모습이 가끔은 웃기고, 가끔은 신기하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아이는 고요한 세상을 잠시 누비다 왔고,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비로소 세상의 소리와 다시 만났다. 와우를 끼는 순간, 세상의 소리가 갑자기 쏟아지듯 다가왔을 테지만, 아이는 그 변화조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1시간은 당연히 와우를 끼지 않는다. 나도 이제는 "와우 껴"라는 수신호 - 두 번째 손가락을 귀 쪽에 가르치며 끼라는 표시-를 그만둔다. 아이가 1시간 책을 읽다가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아이는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와우를 낀다. 귀가 약하니, 후각은 귀신같다.
요즘 아이는 소리를 골라 듣는 게 더 익숙해졌다. 내가 잔소리를 시작하면, 슬쩍 와우를 빼버린다. 그러면 잔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이는 스트레스 없는 세상 속에서 나를 멀리하며 자유를 만끽한다. 내가 잔소리를 끝내는 타이밍에 맞춰 다시 와우를 착용한다. 마치 마법처럼. 가끔 극장에서 너무 큰 액션 장면이 나오면, 아이는 와우를 뺐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귀에 붙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종종 '너는 좋겠다, 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듣기 싫은 소음이 들릴 때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아침부터 찡찡거리며 청소기 돌릴 때도 아이는 와우를 끼웠다 뺐다 하면서 소리의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율한다.
처음 수술을 할 때, '너에게 예쁜 소리만 들려줄게'라고 굳게 결심했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소리들만 골라, 너의 귀에 속삭여 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커서 스스로 예쁜 소리를 골라 듣는다. 나보다 더 능숙하게. 잔소리가 시작되면 와우를 슬쩍 빼고, 엄마는 죽어도 모르는 그 소음 없는 고요한 세상에서 듣고 싶은 소리만 고르는 그 능숙함이라니!
그 고요한 바다 같은 세상에서, 비록 엄마의 소리보다도 더 깊은 곳에 숨겨진 네 진짜 목소리를 찾아가길. 예쁜 소리, 맑은 소리, 그리고 네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그 소리들을 많이 많이 듣기를. 엄마가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었던 세상 속에서, 네가 선택하는 소리로 너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길 바란다.
네가 듣는 그 고요 속에서, 더 넓고 평화로운 바다가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