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왓디 피 마이 나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의미의 태국어 인사)
크루 파이가 비음이 섞인 다소 과장되고 요란한 특유의 목소리로 태국 새해인 송크란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와 방학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도 롬싹의 동료 선생님들은 이렇게 종종 친근한 메시지를 보내온다. 어쩌다 학교에라도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집에 들러 고양이 우쭈의 근황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며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새로 오픈한 동네 카페 소식을 전하며 5월에 롬싹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거기에 들러 무엇 무엇을 먹자는 달콤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은 참으로 다정하다.
내가 롬싹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은 외국어부 교사 사무실이다. 이 사무실은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미얀마어, 일본어, 한국어 등을 가르치는 교사 15~20여 명이 사용한다. 근무하는 선생님 수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 사무실은 영어나 중국어, 한국어 교생 선생님들로 늘 붐비고 다른 사무실에 비해 젊은 선생님들이 많기 때문에 가장 소란스럽고 활기찬 사무실이기도 하다. 태국은 모든 공립학교에 영어 원어민 교사들이 있는데 이 경우, 학교는 에이전시를 통해 교사들을 소개받고 개인과 학교의 계약으로 고용하는 형식을 취한다. 중국어와 한국어의 경우는 국가 간 협약에 의해 양국 교육부 주관으로 교원들을 파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는 보통 4,5 명의 영어 원어민 교사들이 있고 중국인 교사 2명, 한국인 교사인 나와 자원봉사인 외국어 선생님들까지 10여 명의 외국인 교사들이 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5월이면 사무실은 마치 다양한 식재료가 아직 요리되지 않은 날 것의 상태로 담긴 찌개 냄비 같다. 부장 선생님과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까지의 젊은 선생님들이다.
젊고 다양한 국적의 선생님들이 모여 있다 보니 재미있는 일들도 많이 있지만 종종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와 사소한 실수들로 서로 맘이 상하고 심할 경우엔 학교를 그만두거나 그만두게 만드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학기 초반에 우리 사무실에서 태국인 교사와 외국인 교사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웠던 문제는 사무실 청소에 대한 것이었다. 다 큰 성인들이 청소 문제를 가지고 다툰다는 것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청소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자존심 같은 것이 걸린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사실 나는 사무실 청소를 교사들이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태국인 교사들이 태국에선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말했고 청소를 할 인력을 고용할 여유가 없다고 말해 그들의 방식을 수용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요일별로 세 명의 교사가 한 조가 되어 청소를 하도록 명단이 작성되었고 사무실 문에 붙여졌다. 나는 게이브 Gabe라는 미국인 교사와 매칭 교사인 태국인 한국어 교사 베스트 Best와 함께 청소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처음 한 달간 단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혼자 청소를 해야만 했다. 사실 청소와 관계없이 나는 늘 가장 먼저 출근하는 교사 중 한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청소해야 하는 수요일이 아니어도 매일매일 어떤 선생님들이 청소를 하는지를 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국인 교사와 영어 원어민 교사들은 명단에 이름이 있는데도 거의 청소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인 교사와 나, 영어 원어민 교사이지만 필리핀 사람인 프란시스 Francesco, 몇몇 계약직 태국인 교사들만 청소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확히 한 달이 되었을 때 나는 이런 방식으론 더 이상 청소를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태국인 교사들은 청소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들 입으로 말해놓고 계약직 선생님들 이외에는 누구도 청소에 동참하지 않았다. 사무실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그래도 누구 하나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지저분한 사무실을 참을 수 없었던 내가 교사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청소할 사람을 구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사실 청소는 아주 간단해서 사무실을 쓸고 대걸레로 닦고 휴지통을 비우는 일 정도였기 때문에 한 달에 400밧이면 충분할 것 같다고 판단을 했고 교사 한 사람이 30밧씩만 모아도 모두가 싫어하는 청소를 대신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선생님들을 설득했다. 처음 태국인 선생님들 입장에선 돈을 내는 것이 싫기도 했고 또 부장 선생님의 결정으로 정해진 일을 번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누가 부장 선생님께 일의 경위와 계획을 이야기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자원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인정했고 우리는 모두 '청소'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른바 청소 용역 관리 업무는 지난 3월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나의 일 중 하나였다. 매달 선생님들에게 돈을 걷고 청소를 하는 학생에게 돈을 지급하고 혹시 학생이 청소를 하러 오지 못하는 날 대타로 청소할 학생을 찾는 일까지. 외국인 교사인 내가, 학생들과 의사소통도 어려운 내가, 왜, 도대체 이런 일을 맡아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단지 불평등하게 이루어지던 청소를 합리적으로 조율해서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기로 했다. 계약직 교사이건 태국 교육 공무원 자격을 갖춘 교사이건 외국인 교사이건 이제 우리는 청소 앞에 평등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선 합리적인 접근,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사무실의 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영어로 소통한다. 외국어부 부장인 크루 푸탄 Phut Tair은 그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실제로 방콕이나 치앙마이 같은 대도시에서도 한 사무실의 교사들이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원활한 소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 하지만 때때로 외국인 교사들인 우리가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내밀한 내용들이 쉽게 공유될 때 소소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크루 메이, 수업 계획안 작성을 다 했나요?"
"네? 수업 계획안이요? 난 그런 얘기 못 들었어요."
"어머, 그래요? 지난 회의에서 이번 주말까지 각 언어별로 수업 계획안을 작성해서 제출하기로 했는데요?"
......
"베스트 선생님, 수업 계획안 얘기 왜 나한테 안 했어요? 한국어 수업 계획안은 어떻게 됐죠?"
"선생님, 그건 제가 임의로 작성했는데요."
"네?, 임의로? 그건 안되죠. 보여주세요."
"태국어로 작성했어요."
......
이런 문제들 말이다. 사실 모르고 지나갔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일지도 모르는데 알고 나면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은 몹시 불편하다. 내 수업 계획안을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이 쓴단말인가. 나의 매칭 교사인 베스트 선생님은 어차피 태국어로 작성할 문서이니 나의 일을 덜어 주려는 좋은 의도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한국어든 영어든 내가 작성한 수업 계획안을 태국어로 바꾸는 작업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에게 따로 묻는 것이 귀찮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나는 보통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일수록 가능하다면 감정을 담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태국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남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베스트 선생님, 내 계획안을 써줘서 고맙지만 한국에선 자기 수업 계획안을 다른 사람이 쓰지 않아요."
"네, 그런데 선생님, 이건 그냥 제출하면 끝이에요.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에요."
"네, 알아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일은 내가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내 수업 내용도 아닌 진짜 의미 없는 내용이 써진 계획안을 내 이름으로 제출하고 싶지는 않아요. 크루 푸탄에게 얘기해서 한국어 수업 계획안은 영문으로 제출하도록 할게요. 영어 선생님들도 영문 계획안을 제출하니까 내 계획안도 그렇게 해도 될 것 같아요."
......
우리 사무실 같이 다양한 환경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일하는 공간에선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을 많이 배려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 사소한 배려가 어떤 사람에겐 너무 '훅'하고 들어간 간섭이나 침해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가장 최고령자인 내가 젊은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큰 비중을 두고 했던 일중에 하나가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쉼 없는 연애 스토리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생애 가장 활발히 연애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절을 보내고 있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국적도, 문화적 배경과 차이도 장벽이 되지 않는 그들의 연애사를 들어준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뿐만 아니라 '삶'적인 면에서도 그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서 가끔은 삼각관계인 '썸'에 대해 알게 되는 곤란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영어 선생님인 G는 중국어 선생님인 C를 좋아하고 태국인 선생님인 S는 G를 좋아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G와 S는 거의 매일 밤 개인적인 연애 상담을 의뢰해 오는데 나는 가능하면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침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이쪽의 이야기가 저쪽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했다. 사랑을 얻은 건 C와 G이고 S는 오랜 시간 힘들어했다. 하지만 G는 곧 학교를 떠나야 했고 원거리 연애가 힘들어진 C와 G도 결국 헤어졌으며 S는 요즘 이탈리아 남자와 썸을 타고 있다.
타지에서 한 번도 속해 본 적이 없는 조직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각기 매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건 매일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큼이나 비명을 지를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열 달을 그렇게 지내면서 내가 체득한 관계 맺기에 대한 노하우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설령 한눈에 그 사람이 좋아지더라도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낮은 담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담은 상황에 따라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는 가변적인 재료로 쌓아야 하며 서로 솔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이 여기까지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담의 높낮이와 상대방과의 거리는 또 매우 상대적이어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회에선 다중이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던 나는 상당히 다양한 케이스에 담을 맞출 수 있는 경우가 많았고 대체로 이곳 롬싹에서의 '관계' 성적표는 지금까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