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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i Mar 29. 2023

일용할 양식의 기쁨

2019년 5월 태국 중부 페차분 짱왓의 롬싹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땐 밤 10시가 넘은 캄캄한 밤이었다. 낯선 잠자리, 생각보다 열악한 관사의 상태 때문이었는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설치고 아침은 미리 구입해 간 과일과 요구르트로 간단히 먹었다. 그리고 점심은 태국인 한국어 교사인 베스트와 영어 교사인 임 선생님과 함께 동네 국숫집에서 먹게 되었다. 육류 베이스의 국물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썩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지만 롬싹이란 도시도 태국이란 나라도 처음인 나로서는 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또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좋다고 하며 맛있는 국수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돼지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미트볼이 들어간 매운 국물의 국수를 적당히 분위기 맞춰가며 먹었고 관사로 돌아가서는 폭풍 청소를 시작했다. 이미 청소가 된 집이라고 했지만 냉장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지저분했고 댄스홀을 해도 될 정도로 넓은 1층 공간의 타일 바닥은 대걸레로 수없이 닦아내도 검은 물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었다. 오후 내내 맹렬히 청소를 했다. 너무 피곤해서였는지 저녁은 생각이 없어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산 바나나를 하나 먹었을 뿐인데 2층으로 올라가려던 나는 숨 쉬기도 힘들 만큼의 순간적인 강한 복통으로 쓰러져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일어나지도 못한 채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며 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동네 클리닉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정신을 차렸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진통이 다시 찾아왔고 계속 구토를 했다. 6,7시간이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그런 오지에 꼭 가야겠냐며' 말렸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여기서 죽으면 안 되겠어.' 나는 병원에 와 있던 부장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에게 더 큰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요구했다. 자정이 넘어서 주도인 페차분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옮겨졌고 특급 병실에 입원을 했다. 생각해 보면 큰 병원이라고 종합병원이라고 뭔가 다른 처치를 받은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옮기고 나는 거짓말차럼 상태가 호전되었고 1인실 특급병실에 이틀이나 입원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그 이틀의 입원으로 한국 교육부가 커버해 주는 내 보험은 거의 소진이 되었다.


롬싹에서의 진정한 첫 끼_릴리와 함께 

부임한 첫째 날과 둘째 날을 병원에서 보내고 출근한 첫날 한국에서 온 선생님이라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내주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환대에 롬싹에 도착해서 계속 끙끙거리며 고민했던 많은 문제들이 흔적도 없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보는구나.' 얼마나 감사했는지. 이 첫사랑은 돌아올 때까지 나의 롬싹 생활을 유지하게 해 준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반겨준 외국어부 사무실의 많은 선생님들 중 베트남에서 온 릴리 Ly Nguyen 선생님이 베풀어준 사랑은 절대 잊지 못한다. 우리는 내가 베트남에서 5년이 넘게 거주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금세 이모와 조카처럼 친해졌다. 그녀는 내가 식중독으로 고생한 이야기를 듣고 그날 점심시간에 베트남 사람들이 먹는 쌀로 만든 인스턴트 죽과 직접 만든 멸치 볶음을 가져가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매일 자신의 아침밥으로 태국식 찹쌀밥과 치킨, 혹은 찹쌀밥과 돼지고기 숯불구이 등을 사면서 나의 아침까지 챙겨주었다. 그리고 롬싹에서 맞는 첫 주말 아침 그녀는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며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관사 근처에 있는 소문난 쏨땀 장인의 식당을 알려 주었다. 도착해 보니 오픈된 공간이어서 위생 상태를 염려했지만 뷔페식으로 차려진 쌀국수와 야채들, 태국식 야채조림 등이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쏨땀을 잘 모르는 날 대신해 그녀는 한국사람들 입맛에 맞을만한 메뉴를 골라주었고 깔끔하면서도 풍미가 좋은 그 맛에 나는 그날 쏨땀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고 사랑과 배려가 담긴 식사였기에 먹는 내내 행복했고 나는 그날의 식사를 롬싹에서의 진정한 첫 끼니로 기억하고 있다.

땀 타이와 무삥(돼지고기 숯불 꼬치구이), 소면같이 얇은 삶은 쌀국수, 찹쌀밥, 공심채와 양배추, 롬싹 사람들의 식사에서 빠지지 않는 돼지 껍질을 튀긴 스낵(캡무)으로 구성된 쏨땀 한 상. 롬싹 사람들은 땀 타이는 쏨땀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태국 동북부인 이싼 지역과 가까운 지형적 관계 때문인지 '빠라'라는 생선을 발효시킨 일종의 젓갈을 넣은 쏨땀 빠라를 먹지 못하면 쏨땀을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쳐주지 않는 분위기랄까. 2년을 지내는 동안 나름 쏨땀 마니아라고 할 만큼 쏨땀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쏨땀 빠라는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릴리 덕분에 좋아하게 된 또 하나의 롬싹 대표 거리 음식은 소금구이 생선인 쁠라 빠오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태국에서는 외식 문화가 발달해 있어 저녁 시간이면 도시의 메인 거리에 저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팔거나 집에 가져가 먹을 수 있도록 밥과 반찬들을 파는 포장마차들이 긴 줄을 이룬다.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릴리와 자주 쁠라 빠오를 사다 내가 머물던 관사 앞 포치에서 먹곤 했는데 고추와 마늘, 고수 뿌리와 라임으로 맛을 낸 초록색 장, 남찜탈레는 생선과 함께 먹기에 매우 훌륭한 향과 풍미를 가지고 있다. 껍질을 발라내고 남찜탈레를 찍어 배추나 다른 야채에 올려 야채와 쌀국수를 넣어 쌈처럼 싸서 입에 넣었을 때 그 맛은 환상적이었다.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는 길에 깨달은 행복

태국 사람들은 샤브샤브를 사랑한다. 아이들에게 뭘 사줄까라고 물으면 99% 샤브를 사달라고 한다. 태국 음식 중에도 샤브샤브와 비슷한 수끼가 있는데 아이들은 굳이 가격이 비싼 샤브집에 가고 싶어 한다. 사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샤브집이란 태국의 수끼와 일본식 샤브샤브, 그리고 중국의 훠꿔가 뒤죽박죽 혼합된 형태로 판매되고 있는 집인데 대부분 대형 쇼핑몰에 위치하고 메인 메뉴인 샤브 외에도 초밥이나 연어회 같은 음식을 뷔페식으로 차려놓고 골라 먹을 수 있게 한 깔끔한 식당을 의미한다. 불행히도 롬싹에는 그런 샤브집이 없어서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3시간, 핏사눌룩에나 가야 그런 샤브집에 갈 수 있었고 가격도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비싼 편이어서 롬싹의 아이들은 그런 샤브집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내가 롬싹을 떠나온 건 2019년 3월이니 어쩌면 지금쯤 롬싹에도 대형 쇼핑몰이 생기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샤브집과 한국 분식집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태국 사람들이 모두 샤브를 좋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롬싹에서 지낸 2년 동안 학교 회식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샤브집에서 진행되었다. 

학교 회식을 위해 가던 샤브집은 우리나라의 옛날 불고기집에서 사용하던 것 같은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약간 아래쪽으로 빙 둘러진 부분에 육수를 넣고 버섯이나 야채를 담갔다 건져 먹는 형식의 샤브집이었고 고기와 해산물이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로 진열되어 있는 곳이었다. 외국인 선생님들을 위한 첫 번째 환영 회식에서 나를 비롯한 외국인 선생님들은 고기나 해산물을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애꿎은 버섯과 야채만 담갔다 뺐다 하면서 눈치를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샤브집에서 회식이 있을 때면 나는 나서서 고기나 해산물을 굽고 선생님들의 접시에 담아주는 역할을 자처하곤 했는데 그건 롬싹 첫날의 식중독 사건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했고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원래의 내 식습관 때문이기도 했다. 

음식으로서의 롬싹 식 샤브샤브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회식에 참여하는 일 자체를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롬싹에서 지내면서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고 말할만한 상황에서 자동차 없이 사는 삶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롬싹의 선생님들은 매우 친절했고 자신들의 자동차로 혹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나를 태워주기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남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처음엔 그런 상황이 생기면 곤혹스러웠다. 5시면 거의 칼퇴근을 하는 학교 선생님들은 퇴근 후 바로 회식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6시나 7시에 회식 장소에서 만나곤 했는데 그럴 땐 나를 픽업하기로 한 선생님은 학교에서 집에 갔다 다시 학교로 와서 나를 픽업해 약속된 식당으로 가야만 했었고 난 그 불편함을 끼치는 것에 대해 늘 마음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릴리가 갑자기 미국으로 가게 되면서 그녀를 위한 회식 약속이 잡혔고 그날은 릴리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해가 뉘엿뉘엿 붉게 타오르며 지고 있었고 바람이 좀 불었으며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그런 잊지 못할 날씨였다. 그녀의 오토바이 뒤에서 바람과 빗방울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한 순간 눈물이 핑돌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갑자기 행복감에 횝싸였다. 누군가의 뒤에 앉아서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믿게 되었구나.'하고 알게 된 순간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왔다. 롬싹에서 나는 누군가의 뒤에 앉을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상대방의 배려와 도움을 받아들였고 나도 그만큼 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일을 부탁하지 않아도 넌지시 해 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학교식당에서 매일 아침을   

실내에 부엌이 없는 시스템이 어색했던 나는 한동안 집에서 음식을 해 먹지 못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학교에 가고 점심시간에도 여러 가지 일들로 밥을 먹지 못하게 되면 퇴근하고서야 첫 끼를 먹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학교 식당이 오전 7시 정도부터 문을 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태국의 공립학교 식당은 우리나라 쇼핑몰에 있는 푸드코드 시스템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일단 규모면에서 그렇게 넓고 여러 업체들이 입점해 있다. 메뉴도 다양해서 학생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는다. 가격은 메뉴 한 가지에 20밧(약 75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아침엔 모든 식당들이 문을 여는 건 아니지만 주로 국수나 카우 깽(밥에 다양한 종류의 국이나 반찬을 얹어 먹는 덮밥 같은 식사) 집과 과일을 파는 집은 문을 연다. 

학교 식당이 오전에 문을 연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엔 혼자 먹을 땐 국수를 다른 선생님들과 먹을 땐 카우 깽을 주로 먹곤 했다. 

내가 즐겨 먹던 국수는 피쉬볼이 들어간 운센 남싸이다. 국숫집에 가면 우선 국수 종류와 고명을 골라야 한다. 국수는 당면과 비슷한 운쎈부터 넓적한 모양의 센 야이, 센 렉부터 얇은 국수인 센 미, 그리고 밀가루 국수인 센 바미 등 선택의 폭이 넓다. 그리고 고명은 돼지고기 미트볼인 룩친 무나, 피쉬볼인 룩친 쁠라외에도  다양한 야채들과 해물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국물도 남싸이, 남똑, 똠얌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했다. 20밧의 행복.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에게 딱 적당한 양의 따뜻한 국수가 주는 행복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학교 식당의 수많은 식당 중에서 나의 단골집은 국숫집, 매운 샐러드를 파는 얌집, 그리고 과일집. 매일 사과와 그린망고, 수박, 파인애플 등 신선한 과일을 환상적으로 싼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었다. 깨끗이 씻어 껍질까지 벗기고 예쁘게 잘라서 봉지에 담아주면 교무실 내 자리에서 나는 하루종일 과일을 씹어 먹으며 수분과 에너지를 보충했다. 학생들에게도 과일집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과일집에 달려와 수박이나 파인애플을 나무젓가락에 꼬치처럼 끼워 간식으로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영혼의 밥집_참 키친 

태국공립학교 한국어 교원으로 파견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때 경험이 있는 선생님들은 어디로 발령을 받든 걸어서 30분 이내에 세븐(편의점)이 있으면 살만한 곳이라고들 했다. 그냥 농담이려니 생각했던 그 말은 진실에 가까웠다. 롬싹 나의 관사에서 가장 가까운 세븐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로컬 식당은 쏨땀집뿐이었다.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나에게 걸어서 5분 거리에 새로 문을 연 참 키친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미국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치앙마이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일한 제대로 된 전문가가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모던한 분위기의 식당을 낸 것이니 나는 손님이라곤 아무도 없던 그 식당의 오픈 날부터 단골이 되었다. 참의 주요 메뉴는 외국인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레시피를 수정한 태국 가정식이었다. 

태국식 오므라이스와 매운 소스 돼지고기 야채 볶음이 참에서 처음 먹은 음식이다. 로컬 식당보다 깔끔하고 위생적이며 무엇보다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가격은 로컬 식당의 3배 정도 되었지만 우리 돈으로 7,000원 정도의 가격이니 외국인들에게는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손님이 많지 않았던 참의 셰프이자 오너인 완과 친구가 그리웠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완에게 비건 메뉴를 부탁했다. 한 학기가 지나고 짧은 휴가 후 돌아온 참의 메뉴에는 새로 개발한 비건 음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완의 비건 메뉴의 열렬한 고객이 되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두부 버섯볶음이었다. 동남아의 다른 나라의 비건 음식들보다 간이 약하고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린 그녀의 비건 음식은 최고였다. 나는 학교의 새로운 외국인 선생님이 오면 첫 식사를 꼭 참에서 같이 했고 외국인 선생님들 사이의 커뮤니티를 통해 참은 외국인 선생님들 사이에선 롬싹 제일의 레스토랑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외국인 선생님들은 비건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물론 K푸드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 캐나다 선생님은 엄마가 김치를 직접 담고 현미밥만 먹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들의 부탁으로 참이 쉬는 날 우리는 참에 모여 한국식 비건 메뉴를 직접 만들고 같이 나누어 먹는 시간도 가졌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참은 나의 롬싹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진심의 개미알 수프와 개구리 튀김

롬싹에서 나는 20대 선생님들과 어울렸다. 나의 코티칭 선생님이었던 태국인 한국어 선생님이 25살의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 외국어부의 외국인 선생님들이 거의 20대의 선생님들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랬던 거 같다. 물론 외국어부의 부장이었던 푸탄 선생님은 50대 초반으로 나와 나이가 비슷했고 여러모로 많은 신경을 써주고 친절했지만 따로 둘이서만 만나거나 같이 식사를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2년간의 근무가 끝나가던 어느 날 푸탄 선생님이 같이 점심을 하자고 초대했다. 수업이 없는 중간 시간을 이용해 드라이브라도 가는 기분으로 따라나선 곳은 외곽에 있는 로컬 음식점이었다. 메뉴는 놀랍게도 개구리 마늘 튀김과 깽 카이 못 뎅이라는 말 그대로 붉은 개미 알탕.

개구리 튀김은 개구리라는 사실을 모르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었다. 특히 마늘 튀김은 정말 맛있었다. 마늘만 먹는 나를 보고 푸탄 선생님은 마늘은 돈 주고 안 사 먹는 싸구려 식재료라며 살이 통통한 개구리 튀김을 자꾸 내 접시에 올려 주었다. 문제는 붉은 개미 알탕. 검게 보이는 국물은 허브를 짓이겨 낸 즙에 '빠라'를 조금, 진짜 조금 넣어 만든 국물로(빠라를 많이 넣은 국이었다면 아마 입도 대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된장찌개와 비슷한 맛이 났다. 거기에 버섯, 토마토, 호박, 오이, 각종 허브와 함께 개미 알을 넣어 끓인 국이 바로 붉은 개미 알탕이다. 국안에 하얗고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보이는 게 개미알이다. 생각보다 커서 놀랐는데 개미도 꽤 크다. 붉은 개미는 늙은 망고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데 알은 일 년 중 3월부터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5월 중순까지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1Kg에 1,000 밧 정도 한다고 하니 여기 사람들에게는 매우 비싼 식재료이다. 

먹기 쉽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좋은 음식'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초대한 자리라는 걸 알기에 용기를 내어 먹었다. 김치를 잘 먹는 외국인을 보고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나 개미 알탕과 개구리 튀김을 나에게 대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깽 카이 못 뎅이 비싼 요리여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가격이라 너도 나도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깽 카이 못 뎅을 사주고 싶어 했으면 어땠을까...


퇴직한 선생님의 팟타이와 카오 소이

태국에 가기 전 먹어본 태국 음식 중 내 입맛에 잘 맞았던 음식은 팟타이다. 국물을 좋아하지 않고 고기보단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볶음 국수인 팟타이 꿍에 생 쪽파와 숙주를 잔뜩 올려 먹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롬싹에는 도대체 팟타이를 파는 식당이 없었다. 롬싹에서 새로운 카페와 식당을 찾아다니며 같이 음식을 먹는 동료였던 임 선생님이 어느 날 내가 좋아할 식당이 문을 열었다면 소개해 준 식당은 간판도 없이 팟타이와 카오 소이만 파는 집이었다. 일단 정갈한 집이었고 팟타이의 맛이 훌륭했다. 밸런스가 딱 맞는 맛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라임즙까지 완벽한 팟타이를 맛본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그 식당을 찾았다. 하루는 임 선생님 없이 혼자서 식당에 갔는데 마침 한가한 시간이라 용기를 내어 요리를 하고 있는 분께 인사를 했다. 그분은 물론 펫차분 짱왓에 사는 유일한 까올리(한국사람)인 나를 알고 있었고 내가 팟타이 꿍만 먹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곤 카오 소이라는 닭고기 베이스의 국수가 있는데 자신의 고향인 치앙라이 지역의 음식이라며 먹어보기를 권했다. 치앙마이에 여행을 갔을 때 맛있게 먹어 본 기억이 있어서 좋다고 하고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앞에서 지켜봤다. 음식을 식탁으로 서빙을 해주고 그분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롬싹비타야콤 학교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퇴직했다는 이야기부터 치앙마이, 치앙라이 등 북부 지방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다.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후배라고 생각해 주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마음이 느껴져 그날의 식사는 매우 인상적으로 내 맘에 남아 있다.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북부 지방 음식에 관심을 갖고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먹어보는 시도를 하게 되었고 북부 지방의 음식들은 우리의 음식과도 닮은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치앙마이의 유기농 찹쌀밥

롬싹으로 파견이 결정되었을 때 롬싹이 속한 펫차분 짱왓에는 공항이 있고 지리적으로 롬싹은 태국의 정중앙에 있기 때문에 교통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중앙에 있다는 위치가 북쪽인 치앙마이로 가든 남쪽인 방콕으로 가든 버스를 이용하면 7,8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절망스러웠다. 펫차분 공항은 내가 발령을 받았을 2017년 당시에는 폐쇄된 상태였고 2018년 오픈을 했지만 사용자가 거의 없어서 3개월 만에 다시 폐쇄되고 말았다. 처음 치앙마이를 갈 때 나는 치앙마이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었다. 첫째는 버스를 타는 방법으로 롬싹 터미널에서 야간 버스를 타면 8시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는 번거로움은 없지만 장거리 버스 여행에 대한 부담과 야간 버스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두 번째는 기차를 타는 방법이었는데 롬싹 터미널에서 핏사눌록행 버스를 타고 핏사눌룩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핏사눌룩 기차역으로 이동, 3,4시간을 기다려 치앙마이행 야간 침대 기차를 타는 것이다. 여러 번 갈아타야 하고 이동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지만 여성전용 침대 칸이 있어서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세 번째는 비행기를 타는 방법이었는데 페차분 공항은 폐쇄되었지만 핏사눌룩 공항을 이용할 수 있었다. 롬싹 터미널에서 핏사눌룩 터미널까지 3시간,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서 치앙마이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면 시도해 봄직한 방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방콕을 제외한 태국의 모든 도시의 공항은 방콕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포기할 수박에 없었다. 그때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이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가기 시작한 나는 2년 동안의 태국 생활로 8시간, 10시간의 버스 여행쯤은 식은 죽 먹기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치앙마이는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가 볼만한 곳이었다. 외국인들이 많기도 하고 도시 자체의 개방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음식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유기농, 친환경 작물 재배와 공정 거래 등의 개념으로 열리는 마켓과 상점들도 많았다. 

북부 지방의 음식 중 내가 좋아했던 것 중에 하나는 찐 야채와 찹쌀밥을 장과 함께 먹는 것이다. 다양한 야채와 꽃을 찌고 '안찬'이라고 하는 버터플라이피 꽃으로 물을 들인 파란색 찹쌀밥을 좋아하는 남프릭눔과 같이 먹으면 마치 한국의 시골에 가서 밥을 먹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정겨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주말마다 열리는 유기농 마켓인 제이제이마켓에서 밥과 반찬을 장과 함께 고르면 사진에서처럼 바나나 잎에 싸서 준다. 이 날 나는 구스베리라는 달콤하고 새콤한 열매와 그린 후추를 함께 사서 공연이 열리고 있는 마켓 한쪽의 테이블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음식을 떠올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오고 간다. 같이 음식을 먹은 기억으로 그 시간을 떠올릴 수 있다니 음식은 매우 정서적이면서 단단한 기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롬싹에서의 2년 동안 내가 먹고 경험한 음식들은 음식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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