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글씨 Jan 11. 2024

상처 아홉|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혔다.

누군가의 무례함은 나비효과처럼 커져 나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를 생각했다가도 '아니야, 조금만 더 견뎌보자.'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무작정 버티고 달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얼마나 독이 되는지 모른 채, 나는 그저 스스로를 달래기 바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은 괜찮았다가 또 어느 날은 힘들었다가 또 어느 날은 견딜만했다가 또 어느 날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곤 했다. 이대로 지내다가는 스스로가 망가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쯤, 또다시 실장의 폭언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직원들이 모두 모여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대놓고 나를 저격한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대체 왜 안 하니? 내가 하라는 일조차 안 할 만큼 네가 여기서 많이 바쁘니?'가 취지였는데 참 억울하게도 난 단체 카톡방에서 실장이 언급한 업무에 대해 전달받은 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래서 개인 카톡으로 되물었다. 대체 어떤 업무를 말하는 거냐고, 나는 들은 적이 없다고. 그랬더니 실장은 내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설령 내가 말 안 했어도 네가 알아서 했어야지.'라고 말이다. 기가 막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버렸다. 내가 독심술사도 아니고 대체 본인 마음을 어떻게 읽고 알아서 한단 말인가. 너무 황당해 답장도 보내지 않고 그대로 멍하니 있다 냉수를 한 잔 들이켜고 정신을 차린 후, 실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갔다. 적다 보니 생각보다 장문의 카톡이 완성되었지만 내가 전하고자 한 요지는 간단했다. '업무를 지시하고자 할 때 명확하게 직접 전달해 줄 것, 내가 업무적으로 실수한 부분에 대한 질타는 달게 받겠지만 그 외의 인격적인 모독이나 비난은 자제해 줄 것, 나는 당신으로 인해 정신과를 다닐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지만 나 역시 우리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테니 당신도 최소한으로 노력해 줄 것.'이었다. 하지만 실장은 그 카톡을 읽고도 내게 답하지 않았다.


 간절한 요청과 부탁이 담긴 카톡에도 답장이 없었던 실장은 다음 날, 사무실로 찾아와서 또 모든 사람이 있는 공개된 장소에서 민망한 상황을 연출했다. ' OO아, 내가 널 왜 싫어해. 내가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무슨 자격으로 싫어해.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 싫은 티를 내. 내가 너 싫어한다고 오해하지 마.'라며 모든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자기 할 말만 해댔다. 일하던 동료들이 모두 동작을 멈추고 나와 실장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나의 카톡에 답장을 바란 것도 아니었지만, 최소한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무안을 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직접 사무실에 오더라도 나와 둘이서 대화를 할 줄 알았지,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와 본인의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 했다. 실장은 상상 그 이상으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무례함의 끝판왕이었다. 지금껏 내가 겪어왔던 모든 인간 군상 중에서 가장 최악의 유형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무안을 준 것도 모자라 내게는 발언권조차 주지 않았다.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홀랑 나가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실장은 그 뒤로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자기 할 말만 하며 시도 때도 없이 폭언을 쏟아붓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실장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찍혀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왔던 지라 전화를 받지 못해 부재중을 확인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라는 음성이 들려 실장에게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연락이 없어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화 중이었기에 실장에게 다시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실장은 약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실장은 내게 '넌 사람이 전화를 했는데 네가 안 받아서 부재중이 찍혀있으면 바로 전화를 해야지 왜 안 해?'라며 따져왔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받지 못했고, 전화를 두 차례 다시 걸었고, 받지 않아 문자메시지까지 남겨두었는데 거기서 내가 대체 뭘 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부재중 전화와 관련한 온갖 비난을 쏟아낸 실장은 이번에는 또다시 업무와 관련된 것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실장이 비난한 그 업무는 대표의 컨펌을 받아 진행한 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온갖 비난을 했던 것이었다. 그 업무를 처리한 방식과 대표의 컨펌 하에 진행한 건이라는 설명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폭언을 멈추지 않았던 실장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게 깔더니 '내가 대표한테 직접 물어볼게요.' 하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온 실장은 대표의 앞에서도 내게 갖은 폭언을 쏟아냈고, 대표는 자신이 직접 준 컨펌임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오히려 실장의 폭언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수많은 폭언을 퍼붓는 실장과 그 모습과 태도를 보고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표의 모습에 신물이 나고 역겨운 감정이 밀려들어온 나는 그들과 더 이상 함께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답답한 마음과 숨이 턱 막히는 느낌에 깊은 한숨을 내뱉자 대표는 그제야 내게 한 마디를 거들었다. '너 태도가 지금 왜 그러니?' 하면서 말이다.


 1년 동안 실장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대표가 나의 깊은 한숨에 '불량한 태도'라며 내게 따라 들어오라는 말을 건넸다. 이판사판이다 싶었다. 그동안 내가 들어왔던 폭언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감정이 터질 대로 터져버린 나는 분에 차올라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흥분한 감정상태로는 나의 얘기를 온전히 전달치 못 할 것 같아 대표에게 잠시 진정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감정을 추스르고 그동안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물론 대표의 반응은 그냥 그랬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야. 그냥 나이가 많아서 사람 대하는 법이 올드해서 그래.'라며 감싸기 급급했다. 그러면서 내게 상처받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가증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더 이상 실장과는 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유도 모른 채 듣는 폭언 속에서 더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해도 좋으니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실장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더는 일 못 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대표의 태도가 돌변했다. 그러더니 내게 '피차일반이야. 나도 너 때문에 스트레스 되게 많이 받았어. 난 너처럼 이사 간다고 휴가 그렇게 길게 쓰는 사람도 처음 봤어. 너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니? 우린 그냥 직장인이 아니라 활동가야. 활동가랑 직장인은 좀 다른 개념이야.'라며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궤변에서마저도 난 참 억울했다. 대표가 말한 이사 휴가는 고작 2일이었고, 그 2일마저도 내 연차가 아닌 주말에 일하고 이삿날을 위해 모아두었던 대체휴무였다. 심지어 이사 휴가를 위해 2일을 쓰는 대신, 난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고 읍소한 후에야 대체휴무 컨펌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름휴가로 3일을 썼는데, 이사를 위해 아껴두었던 대체휴무 2일을 쓴 나 때문에 본인이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는 그 말에, 내가 대체 어떻게 반응을 했어야 했을까. 참 황당했다. 실장과 대표는 마지막까지 나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다. '활동가'는 직장인과 다르다며 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지정되어 있는 연차를 쓰는 것에도 온갖 눈치를 봐야만 했고, 휴가를 쓰기 위해서는 휴가를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읊어야 했고,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갖은 폭언을 들어야 했다. 내가 항변하면 변명이었고, 남 탓이라고 여겨지며 최소한의 기본적인 직원 대접조차 받지 못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내게 남은 것은 허망함, 허탈함, 그리고 분노와 수치심이었다.




이전 09화 상처 여덟|건강과 자존감을 모두 잃은 직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