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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글씨 Jan 04. 2024

상처 여덟|건강과 자존감을 모두 잃은 직장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대신 건강과 자존감을 모두 잃었다.





 한 번 나빠지기 시작한 건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한 번 추락하기 시작한 자존감은 더더욱 끌어올리기 쉽지 않았다. 이석증은 툭하면 재발해 주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고, 밝고 쾌활했던 성격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내성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웃음을 잃어갔고,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회사에 가면 또 실장에게 무슨 말을 들을까, 오늘은 또 어떤 폭언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 때면 쉬이 잠이 오지 않았고, 잠에 들다가도 한두 시간 만에 깨어버려 깊게 잠들지 못하는 괴로운 생활이 반복되었다. 너무 힘든 마음에 팀장에게 털어놓으면 '말씀을 그렇게 하셔서 그렇지, 나쁜 분은 아니세요.'라는 말만 돌아오곤 했다. 나쁜 사람의 정의란 대체 무엇일까.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상처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 내가 다 참고 이해해야 하는 걸까?


 스물세 살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여러 일을 겪게 되었고, 스트레스와 상처는 받을지언정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 자신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거센 파도 앞에 힘없이 버티고 서 있는 불완전한 모래성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장은 툭하면 이런저런 사유를 붙여가며 내게 화풀이 같은 폭언을 쏟아냈고, 말 끝마다 '네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내 말투가 원래 이러니까 이해해 .'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며 내게 이해를 종용했다. 말의 시작은 '야.'였고 끝은 '네가 이해해.'였다. 나는 실장에게 최소한의 직원 대접을 받지 못했다. 궁금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본인에게 반드시 물어보며 진행하라는 말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질문을 하면 폭언을 듣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대체 나더러 일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어쩌다 답변을 해주는 날은 그 답변마저도 'O팀장한테 물어봐.'라는 영양가 없는 답변이었다. 참 황당한 답변이었다. 난 분명 '팀장님들께 먼저 여쭤봤는데도 모른다고 하셔서 실장님께 직접 여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다시 팀장들에게 물어보라니. 내 메시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는 반증이었다.


 출근해서 퇴근 직전까지 매 순간이 긴장상태였다. 아니, 퇴근을 하고 난 후에도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업무폰을 들여다보면 실장에게 10~20개의 폭언 메시지들이 와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부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예비 신랑은 회사를 그만둘 것을 권유했다. 건강이 망가지고 마음마저 망가져가는 날 보며 예비 신랑 역시 많이 속상해했었다. 하루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혼자 울고 있는데, 그 모습을 발견한 예비 신랑이 날 안아주며 토닥였다. 그 손길에 펑펑 울다가도 예비 신랑에게 기대고 살 수만은 없어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더랬다. 하지만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내가 너무 마음이 지쳐서, 힘들어서 내 상황을 너무 꼬아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에 제 3자인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고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약 덕분에 밤에는 잠을 푹 잘 수 있게 됐고, 출근 전에 먹는 진정제를 통해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었지만 내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다. 실장의 폭언과 변덕은 계속 됐다. 심지어 내가 하지 않은 일들까지 모조리 내게 덮어씌우며 갖은 폭언을 하는 날도 있었다. 실장의 오해를 풀기 위해 내가 하지 않은 것임을, 또 내가 진행한 일처리 방향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면 실장은 내게 '남 탓 하지 마.'라며 내 얘기를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한 회사생활로 인해 스스로를 좀먹어갈 때쯤, 한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나비효과처럼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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