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직장은 내게 스트레스와 끝없는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나의 마지막 사회복지 직장을 그만둔 후,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 내가 좀 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내던지며 이력서를 끊임없이 고쳐나갔고, 구인구직 어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곤 했다. 그러다 문득 동물단체의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해보지 않았던 분야였지만, 해보지 않은 분야에 도전하며 경험을 쌓아왔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신중하게 써 내려갔다. 완성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얼마 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면접장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비가 오던 날이었고 거리도 멀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위해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면접 전부터 마음이 들떠있는 상태였다. 면접 시간이 다 되었을 때는 설레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게 되었고, 생각보다 괜찮게 본 면접에 결과를 떠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출근이 가능하냐는 연락이 왔다. 연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출근일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그렇게 첫 출근 날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첫 출근 날부터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일들 투성이었다. 주소 보안으로 인해 제대로 된 주소지조차 알 수 없었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여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9시가 넘도록 만나기로 했던 단체의 대표는 나타나질 않았다. 취업사기를 당한 건가 싶던 찰나에야 만날 수 있었고 나는 첫 출근 날부터 9시가 넘어서 출근하게 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늦어서 늦게 출근한 것이 아니니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당시의 나는 블랙핑크의 제니가 착용한 가방으로 유명세를 탔던 보부상 가방을 들고 다녔고, 그 가방에 망고(반려묘)의 배지를 제작해서 달고 다녔었다. 그 배지를 본 실장은 내게 딱 한 마디를 던졌다. '돈 주고 사 왔냐?'라고. 너무 황당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실장이 내게 그렇게 물은 이유는 단 하나, 망고가 품종묘라는 이유에서였다. 황당했고 어이가 없었고 기가 막혔다. 동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품종견, 품종묘들이 많이 유기되어 보호소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례하게 그런 질문을 내게 던진 것이었다. '보호소에서 입양한 아이인데요.' 무례한 질문에 최대한 짧게 대답했다. 무례를 범한 사람에게 구구절절 나와 망고의 사연을 읊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장은 나에게 첫인상부터 무례한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실장의 무례함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어려울 것도 힘든 업무도 없는 무난한 직장이었다. 더군다나 실장은 사무실에 상주하는 인원이 아니었기에 부딪힐 일도 크게 없었어서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초반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업무폰으로 실장에게 전화가 왔고 그 전화를 받은 이후부터 직장생활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일을 알려줄 테니 컴퓨터 화면을 켜보라고 다짜고짜 자기 할 말만 내뱉던 실장. 그러더니 또 다짜고짜 원격으로 이것저것 다운로드하며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말들로 설명을 하더니 내일부터 이렇게 진행해서 자기한테 카톡으로 보내라던 실장. 난생처음 겪어보는 황당한 업무 인수인계에 어이없는 것도 잠시, 못 알아듣겠으니 한 번만 더 다시 설명해 달라는 말에 '이것도 못 알아들어?'라고 타박하던 실장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의 설명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앞 뒤를 모두 자른 설명,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못하는 없는 말재주에 직접 보고 알려주는 것도 아닌 원격으로 알려주는 업무까지. 환장할 노릇인 3박자가 갖추어지니 너무 답답했다. 우선 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실장의 말들을 곱씹으며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당연히 처음 해보는 일에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부터는 온갖 비난과 질타가 이어졌다. '아니, 제대로 확인 안 해?', '이것도 몰라?', '너 일 편하라고 내가 다 해준 거잖아.' 등은 기본이었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면 무서워서라도 알아서 똑바로 하는데 넌 왜 그러냐?'와 같이 비아냥거림까지 받기 일쑤였다. 제대로 해주지 않는 설명, 매일 바뀌는 컨펌의 기준. '모르면 팀장들한테 좀 물어봐'라며 떠넘기는 모습까지. 실장의 말을 듣고 팀장들에게 물어보면 팀장들도 전혀 모르는 업무여서 아무도 내 업무를 도와주지 못했고 설명해 주지도 못했다. 그 후로도 실장이 내게 준 업무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업무 이외에도 자잘한 것들로 인해 매일 폭언을 쏟아냈지만 '조금만 참으면 부딪힐 일이 없으니 우선 참자'라며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극심한 어지럼증에 처음에는 직장도 멀고 매일 피곤하고 힘들어서 기력이 약해졌나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어지럼증은 날로 갈수록 더 심해졌고, 결국 일상생활에 지장이 오는 수준까지 이어졌다. 길을 가다 쓰러지거나, 전철에서 주저앉거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 차려보면 바닥에 쓰러져있는 등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결국 병원 진료를 보게 되었고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석증은 원인이 불분명하며, 보통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한다고 한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넘겨왔는데, 내 몸은 실장의 폭언들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왔던 것이다. 심한 이석증으로 인해 회사에서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의 권유로 잠시 휴직을 하게 되었고, 증상이 완화된 후로는 병원 진료를 병행하며 출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출근한 사무실에서 실장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날 보더니 하는 소리는 여전히 가관이었다. '너 맨날 점심 편의점에서 먹는다며? 그런 거나 처먹으니까 그렇게 아프지.' 실장의 말에 내 표정이 굳어지는 것은 물론, 일을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치고 있던 타자를 멈추고 뒤를 돌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실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매일 점심을 편의점으로 때운 것은 사실이었다. 회사 주변에 도저히 먹을 곳이라고는 없었고, 집은 너무 멀어서 도시락을 가지고 출퇴근하기에도 번거로웠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때워야 했다. 그리고 그게 내 건강에 악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편의점 음식으로 인해 내 건강이 상했다고 해서 내가 실장에게 저런 식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었다. 내가 불편한 티를 냄에도 불구하고 실장의 크고 작은 폭언은 매일 같이 이어졌고 스트레스와 불쾌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