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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글씨 Dec 14. 2023

상처 다섯|어린 사회복지사라 무시당한 세 번째 직장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갖은 무시를 당하게 된 제2의 사회복지사의 삶

 

 동물원을 퇴사한 후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은 시기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공을 살려 안전한 길을 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 볼까. 이런저런 고민들로 인해 생각보다 놀게 되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여러 취업 공고 어플들을 살펴보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 위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의 세 번째 직장이 되었던 한 사회복지 센터가 눈에 띄었다.





 오랜만에 세미 정장을 차려입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집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 3개월 계약직. 거리도 괜찮았고 사회복지 계약직 치고 준수한 급여까지.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던 내 입장에서는 급한 불이라도 끌 수 있는 최적의 선택지였다. 사회복지에 대한 애정도 사명감도 모두 떨어진 상태였지만, 우선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운이 좋게도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면접 당일, 밖을 나서는데 비가 억수 같이 내렸다. '날씨 운이 없네' 하는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며 면접장으로 향했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주변 카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꽤 많이 남는 시간에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뭐 하는 곳인지나 좀 찾아보자' 하고 센터의 홈페이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자활'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복지 영역에 이것저것 검색도 해보며 사전 탐색을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검색을 진행하다 어느덧 면접 시간이 임박하여 센터로 들어갔고 마침내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장의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딱딱하지도 않았고 적당히 온화한 분위기였다. 사명감이나 부담감이 없어서였을까. 면접관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술술 대답도 잘 나왔고, 생각했던 것보다 자기소개도 잘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면접이었지만 나의 기준과 면접관들의 기준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기대감을 접고 면접이 종료되자마자 면접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핸드폰을 하며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면접에 합격했다고 말이다. 그렇게 운이 좋게도 나는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고, 다시 한번 사회복지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사회복지사로서의 경험이라고 해봤자 23살에 조기 취업해서 1년 반동안 겪은 것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정신장애인의 직업 재활 훈련을 돕는 역할이었다 보니 새로 일하게 된 자활과는 확연히 달라 처음에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재활과 자활, 비슷한 단어였지만 두 분야는 너무나도 달랐다. 비록 3개월의 계약직이었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활지침서를 수도 없이 들여다보고, 모르는 것은 이것저것 물어보며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1~2주 정도가 흘렀을 때쯤, 온전히 내가 담당하는 '사업단'을 맡게 되었다. 내가 담당한 사업단은 빨래방 사업단과 돌봄 사업단이었는데, 문제는 이 두 사업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민들의 성향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빨래방 사업단의 주민들은 모두 온화했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다 같이 으쌰으쌰 하며 근무하는 분위기였다면, 돌봄 사업단의 주민들은 어딘가 모르게 묘하게 날이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돌봄 사업단의 주민들은 25살의 어린 직원이 자신들의 새 담당자라며 나타난 것이 못마땅한 듯했다. 툭하면 내게 '사회복지사 몇 급이세요?', '아이씨 진짜', '선생님은 어리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 '여기에 대해 뭐 얼마나 안다고 그러세요?'와 같이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을 해왔고, 그 무시 속에서 나는 담당자로서의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전 담당자였던 퇴사한 팀장님과 나를 툭하면 비교했으며, 특히 어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담당자인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탱탱볼처럼 튕겨져 나가기 일쑤였다. 


 그들의 말마따나 나는 25살의 어린 사회복지사였다. 그런 햇병아리 사회복지사에게 사춘기 청소년들도 아닌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어른들을 상대로 통제하고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향한 싸늘한 시선과 무시하는 말들 속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을 때, 한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자활사업단에서 근무를 하는 주민들은 보통 조건부수급자로,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근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수급자이지만 사업단 내에서는 엄연한 근로자이기 때문에 자활사업지침서를 바탕으로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담당자는 바지 사장 같은 의미였다. 어찌 되었든 사업단에서 근무하는 주민들은 조건부수급자이지만 근로자이기 때문에 근무수칙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으나 돌봄 사업단의 주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들이 나가고 싶을 때 담당자 몰래 외출을 하기도 했고, 이를 들켜 주의를 주면 '답답하면 바람 좀 쐬러 나갈 수도 있지 융통성 없게 그런 식으로 구냐'는 등의 날 선 말로 받아치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칼을 빼들어 이 사태에 대한 매듭을 짓고자 했다. 사업단의 모든 주민들을 불러 모아 나의 솔직한 감정과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자활지침서의 내용 등을 상세히 전달하며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나를 공개적으로 무시했고 끝내 나를 비난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근무 시간에 본인들이 먹고 싶은 붕어빵을 사러 가지 못하게 했다, 장도 못 보고 오게 한다, 이게 다 담당자가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에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돌봄 사업단의 주민들과 말다툼을 벌였고, 끝까지 본인들만 생각하는 모습에 '난 정말 사회복지랑 안 맞는구나'라는 확신만 가지게 될 뿐이었다. 


 3개월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는 입사 초반부터 심각했다.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온갖 무시와 괄시를 받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다. 나이가 뭐길래, 나이가 뭐라고. 고민 끝에 '이대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런 나의 고민을 슈퍼바이저(상사)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슈퍼비전을 받았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한 명씩 개별 상담을 진행하면서 속 얘기를 들어보는 건 어때요?'라는 슈퍼비전 말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았던 슈퍼비전은 나와 돌봄 사업단 주민들의 사이를 서서히 풀어지게 만들었다. 한 명씩 개별상담을 진행하니 그동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나와 가장 대립했던 주민은 내게 사과까지 했다. 비록 상처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덧 풀어져 분위기가 조금 말랑해졌고, 끈끈하진 않더라도 그렇다고 가늘지도 않은 유대감이 그들과 나 사이에 생기는 것이 느껴졌을 때 즈음 3개월 계약직이었던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사회복지사로서의 제2막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진정한 헬게이트가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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