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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Dec 18. 2020

청춘은 청춘을 모른다

| HANDAL 11-3 | 청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고하다



“청춘은 청춘을 모른다. 청춘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청춘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그래서 청춘이라 이름 붙여졌다.” - 작가 김경태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청춘"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되면서 나이 듦을 인식하게 되는 이 시기마다 내 젊음과 내 열정을 되짚어보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마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꺼내놓고 나를 이 낱말에 비추어보며 현실의 젊음과 이상적 젊음을 대조하는 거다.



아래 링크한 글은 2020년 1월 20일에 브런치에 게시한 글이다. 연초 나는 “청춘”이라는 단어를 두고 현재 내 열정과 방향을 고민했었다.


그리고, 나의 책 <독서의 맛>을 썼던 2019년에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문학 선생님이 <청춘예찬> 낭독했던 그 기억의 순간을 빌어 나의 청춘을 되짚었었다.


<독서의 맛>에서 발췌


또, 지금 이 새벽 <구본형 선생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면서 그가 책의 서두에서 풀어내고 있는 "젊음"에 대한 문장들이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청춘"의 의미와 너무 닿아있어서 오늘 이 단어로 글을 써보겠다고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젊음은 젊음을 모른다. 늙음만이 젊음을 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더 멀리 놓아야 글씨가 더 잘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마흔을 넘은 나이를 실감하기도 한다. 젊음은 우리가 회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우리는 기성세대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어찌하랴.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젊음을 쓰고 나이 들어서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인생의 역설인 것을.

<구본형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구본형 선생이 말하는 “젊음”과 내가 느끼는 “청춘”은 같은 맥락이지만 또한 이질적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내 의견이지만 “젊음”은 출생연도와 나이같이 숫자로 치환될 것 같고, “청춘”은 은유의 단어로 느껴진다. “청춘”은 색으로 치면 붉은색과 녹색을 거쳐 파란색이라면, “젊음”은 연두나 노랑 같다고 할까?


아무튼, 오늘 “청춘”을 소환한 이유는 오늘 / 지금 / 바로 이 순간이 우리에게는 가장 젊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청춘이라는 열정과 희망 그리고 환희의 단어로 채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청춘의 절정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 느낌만으로 가슴이 뛰고 열정이 생기고 의욕이 솟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도 자신이 현재 청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춘은 추억 같아서 이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소환되지만 결과물은 항상 과거에 매여있다.


...


오늘 나는 다시 “청춘”을 불러본다.


청춘을 돌려다오”가 아닌 “청춘아! 기다려라!”로 말이다.


마흔다섯 살, 피터팬을 꿈꿔본다.

마냥 즐겁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말이다.


- 브런치 작가이자 청춘을 통과 중인 김경태 -


#청춘 #젊음 #열정 #희망 #작가김경태 #가슴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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