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삼성문화 살짝 엿보기 | 삼성맨의 자기계발법
#내가 삼성에서 배운 것들
18년간 회사를 다니다 보니 어느덧 나도 삼성의 업무 문화에 제법 많이 물들었다. 나와 주변의 동료들은 잘 모르지만 회사 밖에서 알게된 사람들을 만나보면 내 생각과 업무 스타일이 다른 분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긴 시간 삼성이라는 곳에 머물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이 회사의 문화에 윤색되어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삼성의 문화, 이건 좋고 싫음, 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회사의 문화는 바로 “위기의식”이다.
경제는 사이클(Cycle)이라서 호황이 있으면 불황이 있기 마련이다. 장사가 잘되면 잘되어서 좋고, 장사가 안되면 움츠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다시 상승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기대감을 만드는 게 대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회사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여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하여 서두르는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했다. 덕분에 호황일 때는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일 때는 IMF같은 갑작스런 경제 위기를 준비하는 계획을 마련했으며, 각종 뉴스에서 경제 위기라는 말이 나오면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덕분에 18년간 단 한 번도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이런 위기의식은 자칫 임직원들을 염세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지만 사업주 입장에서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작년 말 올해 예산으로 1억을 설정했다고 하자. 1월이 되자마자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는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협력업체를 쥐어짜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조정을 통해서 기존 예산안에 숨어있던 관행적인 비효율을 조금이라도 줄이게 된다. 협력사로부터 구매해오던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고 AS 받던 것들을 직접 수리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당장은 힘들지만 1~2년 기술이 축적되다 보면 우리들의 실력이 늘고 역량이 향상된다. 회사는 이런 방식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유도한다.
이런 방법을 자기계발에 응용해봤다. 가계 예산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비상식적인 계획을 세우고 도전해보면서 실패를 극복하며 저축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또, 내게 필요한 업무력 향상을 위해 프로그램 언어를 능숙하게 활용하기 위한 교육을 수강하고 업무에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앞으로 필요할지 모를 동영상 편집기술과 포토샵 같은 것들을 직접 배워 사용해보면서 카드 뉴스나 페이지를 만들어 내 책을 홍보하는데 활용했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시간과 노력이 더해갈수록 점점 볼만한 결과물이 나왔다. 작년부터 내가 유튜브 <닥치고독서 TV>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능력 배양 덕분이다.
또 하나 삼성에서 배운 것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다. 대기업이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불편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업무를 진행해보면 거의 모든 업무가 시스템 기반(System Based)으로 운영되고 있고 절차도 간소해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다.
물론 다른 여타 IT회사만큼의 자유도는 없지만 복장, 업무시간, 그 외 여러가지 업무적인 것들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를 많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변화 수용은 리더의 성향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겠지만 내가 겪어본 대부분의 리더들은 변화 수용에 적극적인 편이었다. 쉴 새 없이 제품이 생산되는 제조업이다 보니 리더의 판단에 따라 엄청난 금액의 이익과 손해가 순간의 판단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성 때문에 변화를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현재를 혁파하는데 거침없다는 것을 느낀다.
참고로 지금 내가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간에서 이슈되고 있는 정치/경제적인 문제에 등장하는 삼성의 경영진이 아닌, 발로 뛰어 매분기 수조원을 벌어내는 삼성의 실무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거대 그룹의 작은 가지에 속하는 부서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선후배들을 통해서 배우고 싶고 취하고 싶은 것들은 적극적으로 얻으려고 노력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려고 노력한다. 내 나름대로 미추희비를 가려내어 취사선택하려고 애쓴다. 이 와중에도 선배 리더들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바로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다. 물론 내 집에 있는 자녀들과의 생각의 차이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아빠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의 머릿속에는 삼성맨에 대한 정형화된 선입견이 있다. 구글(Google)에서 삼성맨으로 검색을 해보라. 그러면 사람들이 삼성맨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말끔한 양복이 풍기는 인텔리함, 부지런함, 스마트, 날카로운 성격, 반듯하게 관리받는 인재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80~00년대 삼성맨의 모습인 것 같다. 아니면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는 삼성맨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사싫 나처럼 지방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임원이 아니라면 양복과는 거리가 멀다. 부장들도 대부분 청바지에 셔츠 그리고 점퍼를 입고 다닌다. 구두보다는 운동화가 압도적이다. 부지런한 것은 맞다. 대부분 7시 조금 넘으면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일이 남았다면 늦게까지 일한다. 책임감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많이 하고 빨리하는 것은 축적된 업무능력과 문화 때문이다. 제조공장이다 보니 최첨단 설비에서 쉴 새 없이 쌓이는 데이터들 덕분에 하루에도 수십 가지 문제들이 생기고 해결해 나간다. 업의 특성상 일은 많을 수밖에 없고 빨리 처리하지 못하면 생산량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일의 속도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날카롭다는 말의 다른 말은 예리하다가 될 것이다.
사실 이 조직 내에서 직급 사다리의 윗부분으로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 비단 임원이 아니라도 보직장이 된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서의 승자들이다. 그들에게 일을 잘한다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래서 숫자 하나를 봐도 의미를 생각하고 이메일 문장 한 줄에서도 내가 할 일과 알아야 할 것들을 챙긴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안테나는 항상 민감하고 신경은 날이 바짝 서있다. 그래서 일에는 철두철미하지만 사람 냄새가 흐린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런 관점에서 예리하다보다 날카롭다가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취업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리의 삼성”이라는 이미지가 1위일 것이다.
내가 취업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관리”면에서 내가 느끼는 이곳은 지원부서의 힘이 너무 막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원부서는 인사, 재무, 기획, 혁신 같은 부서를 말한다. 실제 회사는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인데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지원 쪽의 영향력이 더 강한 것 같다. 물론 큰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총괄하는 헤드쿼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업의 본질은 제품의 생산인데 이 본질이 자꾸 뒤로 밀려나는 것 같은 안타까운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예전에 어떤 경영서적에서 읽었던 사례가 생각난다.
이 회사는 커다란 창고를 운영하는 1인 회사다. 다른 회사의 제품을 받아 창고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필요할 때 고객이 찾아갈 수 있게 하면서 보관료를 받는 것이 주 수입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창고에 좀도둑이 들기 시작했다. 사장은 고민 끝에 정문에 경비를 두기로 했다. 24시간 3교대 경비를 해야해서 4명의 경비원을 뽑았다. (쉬는 날도 있어야 하니까) 회사는 날로 번창해서 창고를 더 크게 확장했다. 그러다 보니 후문도 생겨 4명의 경비를 더 뽑았다. 창고가 점점 더 커지다 보니 문이 더 많이 생겼고 입구마다 경비원을 지속적으로 배치했다. 경비가 늘어나자 경비원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경비원을 관리할 관리자를 1명 뽑았다. 이렇게 뽑은 관리자는 경비원을 관리하며 사장의 옆에서 사장과 함께 창고 사업의 발전을 도모했다. 조금씩 관리자의 업무가 늘어나자 관리자는 자신의 일을 도와줄 4명의 직원을 더 모집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불황이 시작되었다. 다른 경쟁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사장과 관리자는 함께 고민해서 경비원 4명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창고에 있던 문 하나를 폐쇄했다.
불황은 점점 심해졌다. 인력을 더 줄여야 했고 창고부지의 일부를 팔았다. 덕분에 창고의 문이 줄어 경비원들을 더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축소시켰더니 결국 처음 시작했던 크기의 창고와 사장, 관리자 그리고 관리자를 서포트하던 직원 4명 이렇게 6명이 남게 되었다.
이 사례는 사업의 본질이 왜곡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이 회사의 업은 창고업이다. 그런데 사업을 확장하다 보니 돈은 벌게 되었지만, 부가적인 다른 일들이 늘었다. 그리고 부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의 결정권이 커지게 되면서 실제 업의 본질에 맞게 일하던 사람들이 쫓겨나게 되었다. 앞서 내가 지금 우리 회사가 지원부서의 힘이 막강하다고 말했다. 사업이 커지면 이렇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사업의 본질을 잊어버리게 되면 본래의 사업의 뿌리는 사라지고 곁가지만 남게 된다.
처음 내가 입사하면서 들었던 “관리의 삼성”이라는 구절 속에는 위 사례의 예는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관리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내부를 통제하고, 기술을 봉인하는 등의 관리였을 거다. 그런데 요즘 회사를 보고 있으면 조금씩 그때의 관리가 아닌 관리를 위한 관리가 엿보인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18년간 삼성을 다니면서 특별히 삼성이라서 다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차피 한 곳에서만 일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회사나 직종 경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매우 주관적이고 편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자는 세명이 걸어가도 한 명의 스승이 있다고 말했다. 18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오랜 기간 보아온 사람들이 천천히 리더로 성장하는 모습과 잘 나가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과정을 두루 목격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점점 내 생각은 그들과 비슷하게 윤색되고 있었다. 너무 깊숙이 물들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장점이 많은 곳이고 배울 점도 많은 곳이다.
비단 삼성뿐만 아니라 지금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나 조직에서도 배울 점은 충분하다. 스스로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느냐의 문제이고, 배우겠다는 자세의 문제일 뿐이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업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해 그것을 기반으로 자기계발의 방법을 설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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