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무패의 전설

수상할 정도로 근육을 키웠던 청소년

by 문마닐


동작구 챔피언이 되다


대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자 퇴근 후와 주말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에 행복해졌다. 월급은 정말, 정말 귀여웠지만 어쨌든, 직장이라면 자고로 돈과 시간 둘 중에 하나는 줘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고, 이 회사는 시간을 주는 곳이었다. 귀여운 월급을 뚝 떼 2/3 정도를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절약뿐이었다. 그래서 체육관도 다니지 못하고, 퇴근길에 한강을 걷고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 어플을 깔아 집에서 15분 20분씩 근력운동을 계속했다. 체육관에 등록할 돈은 없어도 운동할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래도 연차에 따라 월급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미세먼지로 실외운동을 할 수 없었던 어느 봄날, 나는 회사 바로 맞은편에 있는 복싱체육관을 발견했다. 무려 한국 챔피언 출신이 관장님으로 있는 곳이었다. 때마침 체육관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새끼들을 낳아 꼬물이들이 한쪽 구석에 펜스를 치고 기어 다니고 있었다. 치명적으로 귀여운 그 아이들을 보러 주 5회 체육관에 나갔다. 야근을 해야 하면 체육관에 갔다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친구를 만나야 하면 회사 근처로 오라고 한 뒤 저녁을 먹고 또 운동을 하러 갔다.


요가할 때 분명 어깨는 내리고 등은 펼치라고 했는데, 복싱을 하러 가니 다시 어깨를 접으라고 하는 것이다. 방어를 위해서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샌드백을 칠 때면 그날의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 아무리 힘든 날이어도 체육관에서 나올 때 즈음에는 머리가 맑았다. 대신 너무 신나게 샌드백을 치는 바람에 가끔은 손목에 밴드를 감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간 체육관에 나간 어느 날, 동작구 개최로 생활체육대회라는 것이 열린다는 것이다. 프로에 데뷔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였다. 수시로 스파링 연습 상대가 되어 글러브를 온몸으로 받아주던 코치님이 나가보라고 부추겼다. 그동안 때린 게 있으니 미안한 마음에 그만 출전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래서 대회를 딱 4주 남기고 감량을 시작했다. 6개월을 매일같이 수련했더니 나름 몸이 최적화된 상태였는데, 내가 목표로 하는 체급은 무려 6킬로를 감량해야 했다. 68kg에서 -62kg 체급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명확한 몸무게를 목표로 감량을 한 건 처음이었다. 원래도 주 5일 운동했는데 대회를 목표로 하니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체육관에 갔다.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스파링이 그저 공격만을 하는 것이었으나, 대회를 나가려면 방어도 연습해야 했다. 처음으로 주먹이 나를 향해 제대로 뻗어오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뻗어오는 주먹을 상대로 나도 주먹을 뻗기까지 3일 넘게 걸렸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분한 마음에 나오려는 눈물을 참은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맞는 연습까지 하는데 체중 때문에 대회에 나가지 못한다면 그것보다 속상한 일은 없을 터였다. 그래서 술, 밀가루, 설탕, 그리고 소금을 끊었다. 앞의 세 가지는 어떻게든 가능했지만 소금은 쉽지 않았다. 외식을 할 수 없으니 도시락을 싸다녔는데, 양파 반개에 밥 반 공기를 넣고 티스푼의 반도 안 되는 양의 카레가루를 뿌려 볶음밥을 만들었다. 거기에 기름기 하나도 없는 토시살을 구워 회 사이즈로 네 조각을 올린 게 점심식사였다. 저녁은 바나나였고, 아침은 삶은 계란이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가느다란 몸은 처음이었다. 지방과 수분이 빠지고 나니 찾아온 것은 추위였다. 다른 사람들이 다 덥다고 하는데 나만 추웠다. 목표일을 맞춰두고 딱 한 달을 감량하는 것인데도 그랬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몸이 휘청거리니 주먹도 덩달아 휘청휘청거렸다. 내가 말라 가는 게 보였는지 체육관에 있던 강아지가 나에게 오더니 가장 아끼는 뼈다귀를 툭 내려놓고 코로 한번 툭 치고 눈을 마주치고 떠났다.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나 보다. 그렇게 시합 날 계체를 해보니 61kg가 되어 있었다. 중학생 이후 가장 낮은 몸무게였다. 상대로 나온 것은 40대의 땅달막한 아주머니였다. 아들과 딸을 대동하고 나온 그분께는 죄송하지만 열심히 주먹을 휘둘렀다. 서로 체력이 바닥나 방어는 포기하고 너 한방 나 한방 사이좋게 휘두르는 접전 끝에 이긴 것은 나였다. 우리 체급에는 둘 밖에 없어 한 번의 시합으로 그 체급의 챔피언이 되었다. 너무 혹독하게 식단과 운동을 했던 탓에 시합 후, 더 이상은 그렇게 먹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한 달 만에 먹는 바깥 음식은 무얼 먹어도 미슐랭 쓰리스타 급이었다. 간이 된 음식은 너무나도 맛있었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동작구 챔피언이라고 자랑한다. 무패의 전설이라고도 한다. 거짓말은 아니다. 전설 빼고는… 1전 1승의 전적을 가지고 있으니 무패는 맞고, 생활체육대회 출신이긴 하지만 챔피언인 건 맞다. 복싱대회 트로피는 크고 못생겨서 집에 둘 엄두가 생기지 않아 체육관에 기증하고, 상장은 자랑하러 부모님 댁에 가져다 드렸다. 시합한다고 말한 적도 없으니 갑자기 홀쭉해진 딸이 나타나 상장을 보여주자 집은 난리가 났다. 아무튼 “왕년에 내가 복싱 챔피언이었어” 혹은 “왕년에 내가 동작구 싸움짱이었어”라는 자랑을 할만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밤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때려도 주먹을 뻗을 수 있다는 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렇게까지 진심일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이렇게까지 운동에 진심인 사람이 될 줄 몰랐다. 그냥 어렸을 때 오빠에게만 뭘 시켜주는 걸 싫어해서 따라다녔을 뿐인데… 그런데 막상 하고 보니 오빠보다 운동에 더 적성이 맞았던 것이다. 무언가 해내고, 점점 나아지고, 눈에 보이는 성취를 얻고, 인정받는 기분이 좋았다. 인정 욕구에 취약한 사람에게는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 특히나 성인이 되어 필요성을 느끼고 체육관에 등록했을 때는 이 효과가 더 컸다. 어려서 다니는 체육관은 보육의 의미가 크지만, 성인이 되어 다니는 체육관은 ‘즐거움’이 수반되어야 재등록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코치들이 최대한 즐겁게 프로그램을 짜려고 노력하고, 출석률이 좋기만 해도 시선이 닿을 때마다 칭찬을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직장인만 되어도, 어디선가 쉽게 칭찬을 받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운동을 하러 가면 계속 잘한다고 박수를 쳐주는 누군가가 있다! 그 칭찬은 남과 비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그리고 현재의 나에 대해서 오는 칭찬이다. 처음에 체육관에 가면 고수들이 하는 것을 넋을 잃고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언제쯤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좌절하는 기간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다닌 지 3개월이 넘고 6개월이 넘고, 시간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체육관에 찾아오는 뉴비들이 나를 그 고수 보듯이 한다는 것을 느껴질 때가 있다.


체육관을 다닌 나의 히스토리를 자기소개서에 성장과정으로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저는 태권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예를 갖추는 법을 배웠고, 검도를 하며 세상에는 나와 맞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군사관학교를 가기 위해 체대입시학원을 다니며 뭐든 해낼 수 있는 기초체력을 다졌고, 요가를 하며 고요하게 버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복싱을 하며 어떻게든 버티면 3분이 지나 종이 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마지막 10초까지 제대로 서서 끝까지 주먹을 내질러야 한다는 것도.



다음 이야기 한 줄 예고편

<부상이라니, 제 척추를 갈아 끼울 방법은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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