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를 갈아 끼울 수는 없나요

근육이 많은 직장인도 30대가 되니…

by 문마닐


결국 다들 뜨개 하고 식물을 키우는 고양이 집사 할머니가 되는 거겠지


법적으로야 20살이 성인의 기준이지만, 갓 20살이 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감각은 스물보다 몇 살은 더 먹어서야, 몇 번에 거쳐 내게 찾아왔다. 가령 영주 부석사 아래에서 먹은 청국장에 처음으로 맛있다고 느꼈을 때, 양꼬치집에서 가지 튀김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결국 백반집에서 나오는 가지무침까지 먹게 됐을 때, 뜨개가 너무 재밌어졌을 때. 그리고 이제는 다치지 않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서른 살에 처음으로 운동 부상이 무서워졌다. 부상을 입고 나서야 새로 보이는 사실들이 있다. 요가 선생님이 몸을 천천히 내려놓으라고 하는 데 이유가 있다는 것, 복싱을 같이 하는 아저씨가 샌드백을 살살 치는 게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캡 모자를 쓰고 좁은 보폭으로 빠르게 걸어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웃긴 게 아니라, 무릎에 부담을 덜 주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는 것.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촌스럽다고 생각한 중노년의 생활방식에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이끌려 운명처럼 흘러가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20대에는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인스타 감성 카페를 찾다가 점점 그 지역 특산물과 한식 백반을 찾고, 도시보다 산속의 사찰을 좋아하게 되는 것처럼. 결국은 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우는 방법을 깨닫고, 마당에 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고(준비물: 마당이 있는 주택),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가 되는 필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직접 분갈이를 하고, 흙을 옮기고, 마당을 정리하고, 오래 뜨개 해도 어깨가 굽지 않는 할머니가 되려면 운동은 그야말로 밥먹듯이 꾸준히 해줘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부상 없는 운동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내 허리 돌려줘요

당신이 건축가를 상상한다면, 그것은 아마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고 3D 프로그램으로 모형을 만드는 모습일 것이다. 종이에다가 도면을 그리는 것은 옛 건축가들의 모습이란 걸 당신도 알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2022년 현재까지 건축사 시험은 종이에 연필(혹은 샤프펜슬)로 도면을 그린다. 건축사 시험은 세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과목은 세 시간 동안 시간을 주고 도면을 그리도록 되어 있고, 그러니 시험은 쉬는 시간 포함 열 시간 반 동안 이루어진다. 하루 안에!

시험이란 게 하루 만에 뿅 그려서 합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시험도 수능과 같다. 무슨 말이냐면, 시험 시간에 맞춰서 시험 내용을 연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심지어 일 년에 한 번 본다는 것도 수능과 같다(현재는 일시적으로 일 년에 두 번 시행하지만, 나 때는!). 다행히 과목별로 합격할 수 있어 세 과목을 몇 년에 걸쳐 나눠서 합격해도 괜찮다. 아무튼 이게 무슨 말이냐면, 건축사 시험을 보기 위해 2년 간 학교 의자에 앉아서 허리를 숙인 채로 도면을 그리는 연습을 계속했다는 뜻이다. 첫 일 년 간은 세 과목을 준비해야 했으니 더 오랜 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상태로 유럽여행(다녀와서 『고요와 평화로 지어올린 성당』을 썼던 그 여행이다)을 다녀왔다. 유럽에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그 건축물, 지하철, 숙소 내부에는 수많은 계단이 있고 엘리베이터는 보기 드문 문명의 이기라는 것을! 분명 최소한의 최소한만 챙겨가서 19kg의 무게로 시작했던 캐리어는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져 결국에는 33kg까지 불어나고 말았다. 허리 부상은 힘이 센 사람들이 입기 쉬운 부상이다. 자신의 힘을 믿고 무거운 걸 번쩍번쩍 들다가 꼭 한 번씩 다치기 때문이다. 짐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캐리어를 들고 숙소 계단을 오르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유럽여행 다니던 시절… 왼쪽의 캐리어가 (정말로) 등골 브레이커다.


귀국 직후에 병원에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또 셀프로 재활한답시고 매일 한강 달리기를 했다. 운동으로 뭐든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단점은, 부상마저 운동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사실은 그 누구보다 건강했던 몸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망가질 거라고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름 가까이 매일 달린 결과 발바닥까지 저릿저릿한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허리디스크가 악화된 것이다. 한번 악화된 허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수인 상태라 실손보험도 해지해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건축사 시험은 한 과목이 남아 있었다. MRI라도 찍으면 보험가입마저 거절될 상황이라 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만 간신히 받았다. 하루에 고작 세 시간 앉아서 시험 준비를 하는 것도 허리가 버티지 못해 한 시간에 한 번씩 나가 벤치에 3분씩 누워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내 누워서 쉬었다. 그렇게 누워있으면서 척추를 갈아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다행히 남은 한 과목은 바로 통과했다. 이제 재취업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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