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라 불리는 비일상
집을 나서며 수백 번은 보았던 풍경, 길 건너의 오래된 월드컵 현대 아파트.
자주 가는 카페에 들르기 위해 그 단지 외곽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단지를 통과하는 길을 택했고, 낯선 장소와 각도에서 바라본 우리 집 전경은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등산로마다 다른 풍경을 품듯, 낯선 길은 언제나 새로운 장면을 선물한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시선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대개 관광객이거나 노동자려니 여기며, 휴대폰이나 동행자에게 자연스레 시선을 돌린다.
외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더라도 그들의 삶에 별다른 관심은 두지 않는다.
“[이 집, 터키 사람이 직접 운영한대!]” 같은 사실도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결국 식사와 대화에만 집중하게 된다.
차 안에 흐르던 익숙한 음악,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유튜브, 그저 흘러가는 출근길처럼.
하지만 해외에서는 외국인이 유난히 잘 보인다.
작년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한국에서 마주했다면, 말 한마디 나누기 어려웠을 것이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익숙한 습관이 너무도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 앞에서 담배를 권하던 파키스탄 바텐더와 베트남 종업원, 도로에서 춤추던 젊은 케냐 부부와 그 앞에서 노점을 운영하던 모녀, 클럽에서 남은 술을 나눌 수 있냐던 그리스 청년과, 파티가 끝난 뒤 호텔 앞에서 취해 있던 호주 노인 제임스는 — 그 공간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얼굴들이다.
상경한 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군 복무 역시 서울에서 했으니, 끊김 없이 12년을 지내며 벌써 다섯 번의 이사를 거쳤다.
이사 직후엔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동네의 모든 인프라를 익히는 시기를 거친다.
골목길 지름길, 급할 때 찾을 화장실, 손님을 대접할 술집까지—
그렇게 흔들다리 효과가 지나고 나면 새로운 목적지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일상이 다시 세팅되고, 습관은 정해진 몇 개의 장소를 자동으로 향하게 한다.
2022년 말부터, 해외로 떠나는 인구가 다시 늘고 있다.
연말엔 인스타그램에 태국 여행 사진이 연신 올라왔고, 설 연휴에는 후쿠오카의 음식과 거리 풍경이 밀려들었다.
그 돈을 국내에서 쓴다면, 나름의 재미도 있지 않을까?
서울에서도 일주일 동안 200만 원을 쓴다면 충분히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익숙함에 지불하는 돈은 어딘가 아깝게 느껴진다.
우리는, 낯섦에 기꺼이 몸을 던졌던 조상의 후손이니까.
그리고 파티가 끝난 후, 우리는 다시 일상의 회복기에 진입하며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우리는 모든 비일상을, 결국 여행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