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動詞)의 동사(凍死) - 설산에서
조그맣게 벌린 입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순수한 만년설을 들이켜자 차가운 산소가 기도를 쓸고 허파를 헤집다가 내 체온에 따스하게 달아올라 온몸을 휘저은 뒤 허둥대며 허옇게 얼어붙은 눈구름이 되어 다시 입을 통해 탈출하는데, 그제야 이 무채색의 설원에서 움직이는 것은 나를 포함한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불청객들, 이들의 흐릿한 색채뿐임을 알아차리며,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들이 순식간에 원형의 상태로 복구됨을 되돌아보다가, 저 위 희뿌옇게 빛나는 순백의 봉우리에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것이 어렴풋이 일렁이자 다시 한번 힘차게 로프 레일에 의지해 게으른 카라비너를 재촉하며 정상을 향해 아주 무거운 한 발자국이 디뎌진다.
시선이 대열을 지나 저만치 앞선 초록색 부츠와 빨간 점퍼와 파란 방한복에 닿자 다시 자그맣게 입을 벌려 들릴 듯 말 듯하게 겨우 ‘힘내자’는 말도 건네보는데 접속에 대한 열띤 의지는 금세 작은 눈꽃으로 얼어붙어 소복소복 나리고, 내가 원주민이었는지 이방인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 날카롭게 눈바람 한 번 불어오자 내 정신도 같이 쓸려나가려다 가까스로 그것을 붙잡아 다시 무게추를 달아낸 걸음으로 피어오른 눈꽃을 짓밟고 나아가자 하늘에 닿을 듯이 장엄한 산봉우리만이 마침내 내가 심고, 펴고, 밟아낸 눈꽃을 감지하여 헤아릴 수 없이 큰 소리로 화답하는데 이 설산의 소리 역시 별수 없이 눈보라로 빙결된다.
이번엔 정신이 아닌 내 발끝이 미끄러지며 새하얀 비탈길을 눈덩이처럼 구르자 백두와 구름을 그려낸 인상화와 마찬가지로 고저가 구분되지 않는 흰 협곡 속으로 나를 잡아끄는데 대부분은 서로를 탯줄처럼 연결시킨 고리를 잽싸게 잘라내고 바닥에 넙치처럼 바짝 엎드려 각각 저 허연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피했으나, 한 명은 채 그 절그럭거리는 금속의 따스한 연결에 도취되어, 또 한 이는 나와 같이 나뒹구는 그 백치의 두툼한 형광색의 옷자락을 틀어쥐는 바람에, 호기롭게 올라탔던 고공의 외줄타기에 실패한 세 광대들의 등 뒤를 잡아채는 흰 산의 식탐 속으로 마치 낚싯줄에 줄줄이 엮인 참치들처럼 끌어올려진다.
이상, 층층이 얼어 죽은 무수한 명사들 위로 추락하는 동사 셋
길게 이어지는 수직의 눈꽃, 셰르파와 그가 아직 움켜잡은 대원 하나, 그리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