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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

-아무렇치도 안은 척 숨기고 살지만-

by tea웨이

"걱정 말아라, 여기가 좋다. 수녀 님들 잘해주시지. 끼니때마다 따순 밥 나오지.

때 되면 목욕시켜주지. 머리 깎아 주지. 나는 아주 잘 지낸다.

바쁜데 니들 자주 안 와도 된다"

손녀가 왕할머니라 할 만큼 체격도 크시고 활기 있고 당당하고 적극적이셨던 분이 누가 머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씀하셨다. 마치 자기 자신한테 세뇌시키는 듯한... 누구한테 강요받은 듯한 정답을 외는 학생들처럼 무한 반복하신다. 그런데 평생을 엄마 표정을 봐 온 내가 모 를리가..

통닭이나 탕수육등 간식을 사들고 가시면 직원분들 눈치를 심하게 보며 어디엔가 숨기려 하시는데

숨길 곳이 작은 캐비닛이 유일하다. 그런데 속옷 기저귀 등으로 이미 꽉 차서.. 좀 남겨 두었다가 출출할 때

먹고싶은 욕망이 얄짤없이 거절당했을 것이다. 단체 공간이니 개인 적인 군것질 거리는 용납하지 않는.. 공간이다. 말끝마다 기저귀찬 노친네가 사람인가... 하면서 중얼거린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물으면 얼른 침묵하셨던 이유를....



나는 평생을 큰 체구와 대식가로 살아왔다. 요양병원 들어와서 좀 빠졌지만. 근데 그 살 빠진 것

이야기를 하자면 좀 서글프다. 개도 식사시간에는 안 건든다는데 나는 이곳에 들어와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말하기가 싫고 어쩔 때는 침묵으로 종일 보낼 때도 있다.

기저귀 때문이다. 많이 먹으면 자주 싸게 되고,

자주 싸면 손이 많이 간다고 요양보호사 분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염소똥처럼 조금씩 주는 식판 위의

밥도 입맛이 톡 떨어져 남긴다.

지식들이.

“엄마, 반찬 괜찮치? 이 지역에서는 제일 좋다고 소문났어!”

“응, 괜찮아.”

하지만 그 말 뒤에 숨은 건 말 못 할 자존심이다.

경로당에서 시끌벅적 같이 점심해 먹던 생각이 난다.

나는 침대에서 혼자 먹는다. 말할 사람도, 눈 마주칠 사람도 없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나는 밥을 먹으며 개만도 못한

세상으로부터 쫒겨나고 무시당한 느낌이 든다. 더 이상 존중받지 못한... 식판 위엔 밥이 아니라

내가 삼켜야 할 침묵이 담겨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해야 건강하다는 것. 모르는 사람 없다. 그러나 불치병에 걸리자 잘 자고부터

망가지더니 김현철의 '달의 몰락'노래가사처럼 몸이 몰락하고 인생이 점점 침몰하는 느낌이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라도 살리기 위해 글을 썼다. 구독자수, 라이크잇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는

사치였다.

그저 누군가 읽어주고 가끔씩 공감해 주면 감사하다.

오늘처럼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강직과 통증이 괴롭히면 굳은 몸을 풀기 위해 한 밤 중에 러닝머신을 뛰기도 하고 괴롭지만 그래도 아파트가 아닌 시골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도 아직은 글 쓸 만큼 상태 좋음이 나쁨 보다 조금 많은 것에 감사하며 글을 올린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외에는 그냥 조용히 묻어가는 스타일인 나는 어떤 자리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 화제가 되는 것이 어색하고 거북하다. 당연히 은둔형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아주 친한 지인, 가족 외에는 구태여 내 병명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다. 글 쓰는 브런치에서도 투병기를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래전부터 쓰고 싶어 준비하고 있었던 찻잔스토리가 있었고 이제 비로소 108개의 날 것 그대로의 글연습을 끝내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찻잔이야기를 쓰려던 참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낙서한 스케치북.

이런 낙서에 상상력을 가미하여 사람들을 만들고 그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담는 공간을 만들어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일.. 이 이야기를 쓰려고 읽은 책들, 모아놓은 자료들 , 개경시내관광, 국립박물관 방문, 이제 000 마을만 방문하면....... 허니문타임이 끝나기 전에 빨리 마치려고 서둘러야 했었다

그러다 보게 된 엄마의 요양원 생활의 실체가 내 노후도 암담한 어둠으로 만들었다. 그 와중에 그래도 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 희망으로 보이기도 했다



살아? 말아?

몇 달이 흘렀다. 일상이 흔들리고 무너졌다.

. 한 인간의 품위에 금이 가는 동작을 총집합한 이병에 내가 단련한 품위는 꼬인 발가락 통증 한방에 무너졌다

내 몸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자격지심. 그리고 자존감 제로, 우울.

사소한 일에도 곧잘 삐치고 분노를 표출했다. 원하는 곳으로 운전해 달라는 내 부탁을 자기 멋대로 운전해 놓고 오히려 나를 가르쳐 들려는 동생 남편에게 쌓인 분노를 터트려 달리는 차에서 내려달라고 소리도 지르고 , 친척 결혼식장에서 나 안태우고 갔다고 딸과 절연을 결심한 해프닝도 벌어졌다. 망가져 가는 몸을 오픈시키기 싫어 모임 두 개만 남기고 다 잠수 탔다. 점 점 은둔 노인이 되어 깄다.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졌다. 잠시 쉬고 있는 찻집은 혼자 큰소리로 엉엉 울기에 딱 좋았다. 매일 울었다. 자려고 누워서 생각하니 내 길은 이제 파란 신호등은 거의 사라지고 빨강 신호등만 남은 인생이었다. 침몰만 남은 배 같은 인생.

늙고 불치병 걸린 사람에게 행복한 노후가 있을 턱이 없으니..

말아? 죽자고?

여러 번 스위스 안락사 의자에 앉는 상상을 해보았다.

건조하고 무채색이고 삭막하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나답게 살다가 나답게 죽고 싶었다

살아? 나답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말아? 나답게 죽고 싶은데 그 길이 안 보인다

차라리

길을 찾아보려고 다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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