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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Dec 28. 2023

가치(價値)와 마모(磨耗)

손때 묻은 고색창연(古色蒼然)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다.   

智慧(지혜)의 女神(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夕陽(석양)에 날기 시작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첫 장을 넘기면 자화상 같은 스케치 아래 쓰신 글입니다. 

날의 끝을 알 수 없는 무기수(無期囚)가 헤아린 오늘과 내일입니다.     


선생님의 글들과 그림들 그리고 글씨들을 좋아해서 많이 보았었지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내가 갇히고 나서 더 그립게 읽고 싶던 글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보내신 편지글들 이어서입니다.

밖에서 읽었던 책입니다. 감옥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다시 찾았던 책입니다.



막상 책을 받고 며칠 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의 『사색』에 내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선뜻 서지 않아서였습니다.


선생님의 『사색』은 나에게만은 금서(禁書)처럼 따로 떼어 두었습니다. 

내가 선생님의 이 책을 감옥에서 읽는 것을 선생님께는 숨기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감옥은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달리 없습니다. 

혼자 있으니 금욕보다 유혹이 수월합니다. 

다른 책들보다 가장 먼저 그리고 매일 반복하며 내가 ‘지금’ 읽어야 할 금서(今書)라는 자신이 섰습니다.


첫 페이지가 선생님이 감옥에서 보내신 처음 편지였는지는 모릅니다. 

나는 첫 편지를 읽습니다. 처음 그림은 나를 그려놓은 듯했습니다.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책의 첫 줄입니다.


감옥에서 얼마의 날들을 보내고 ‘오늘’을 세셨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나는 언제 ‘오늘’을 볼 수 있을지도 헤아리기 쉽지 않습니다. 

달력의 날짜들이 어지럽습니다. 순간 멀미 감이 올라왔습니다. 

20대 청년의 글로 믿기지도 않고 그가 보았던 감옥 또한 지금 내 눈앞에는 보이지도 않습니다. 

여백에 한 줄 적었습니다.


나는, 과연

갇혀 있는 것일까?



“할 말이 많다면 일단 침묵을 지켜야 한다.
번갯불을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오래 구름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니체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토마스 기르스트의 ‘느리게 사는 지혜’와 ‘가치 있는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는 밥딜런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의 길이는 ‘느림’과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두레박 줄이 길어야 깊은 물을 길을 수 있다’고 하지요. 

맑은 물이 깊이 있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어둡고 어두운 데까지 내려가는 두레박 줄에 매달려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말이 많은 사람의 특징은, 

오래 말하고, 

혼자 말하고, 

크게 말하고,

한 말을 또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없어진 지금이 되어서야 이전의 내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니체의 말을 가슴에 새겨나가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놓인 예술품의 가치는 그 작품 앞에 깔린 마루의 마모 정도와 직접 연결된다.”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마모’(磨耗)의 ‘닳은 자국’에 대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랜 시간이 단지 세월이 오래된 옛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닮음’의 세월입니다.

‘닮고 닮음’입니다. 

‘고색창연(古色蒼然)’이란 말을 떠올리게 하는 오랜 ‘손때 묻음’입니다. 

만지고 만져서 반들반들해져 내는 빛입니다. 

오랜 반복의 촉감(觸感)이 만들어 낸 색감(色感)이 고색창연입니다. 

서로의 오랜 어루만짐이 빚어내는 사랑의 빛입니다. 


우물의 물은 계속 퍼 주어야 우물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반복의 어루만짐을 지속(持續) 해 주는 만남은 가족을 대신할 게 없어 보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닳고 닳음’을 보여주는 것이 ‘길’(道)이라는 생각입니다. 

길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닳고 닳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길의 ‘닳고 닳음’은 고색창연의 색이기보다는 ‘단단함’입니다. 

그래서 ‘길바닥’이라고 합니다. 아니 '길빠닥'입니다.

모든 ‘바닥’은 단단함입니다.

바닥은 더는 내리누를 힘을 다한 단단함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바닥’을 느끼는 것은 더는 자괴(自壞)의 추락(墜落)을 그치는 일입니다.

수감의 날들로 ‘단단함’을 만들어 나가야 할 ‘닳음’입니다.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바닥에서 닳고 닳아서 내어야 하는 ‘빛’을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의 ‘손때 묻은’ ‘닳고 닳음’이 빚어낸 것 중 하나가 고전(古典)입니다. 내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 하나를 더 챙길 수 있게 합니다.


나에게 오늘은 밟고 밟아 ‘닳고 닳은’ 단단한 바닥을 만들어 가는 날입니다. 

내일의 ‘고색창연’은 오늘의 내(my) 일은 아닙니다. 




불가에서 자주 하는 말 중에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고 하네요. 

‘소중한 인연은 단 한 번밖에 없다’는 말로 풀어놓습니다. 

무소유(無所有) 법정 스님의 책 제목이기도 한 법문 모음집을 읽었습니다. 단지 인간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한순간의 느낌, 생각, 깨달음 같은 ‘일기일회’(一期一會)를 떠 올렸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도 끊임없이 자식들에게 독서를 게으르지 말 것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전한 말이 ‘수사차록’(隨思箚錄)입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나에게 하는 말입니다. 

때마다 적어놓지 않으면 곧 잊습니다. 그래서 메모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자려고 누웠을 때입니다. 그때 드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멋진 글감이 떠오르면 몇 번을 속으로 반복해 외웁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글로 옮기려면 밤사이 잊곤 합니다. 



메모지를 만들었습니다. 

누워서도 쓸 수 있게 과자 곽 종이 두세 장을 풀로 붙여 메모지 판을 만들었습니다.


낮에 읽었던 초기 부처님 말씀이 생각나 어젯밤 누워서 적어두었습니다.   

  

이미 생겨난 번뇌의 싹을 잘라버리고

새로이 또 다른 번뇌를 심지 말고

또 현재 생기는 번뇌를 기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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