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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Aug 01. 2021

결단의 순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밤이면
하늘은
그리움으로 가득해져

온통 반짝거리는
눈물방울로
가득하다.

- 용혜원, <별>


“언젠가 결단할 날이 올 겁니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행사할 때 타인의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재직 중인 회사의 남자 변호사로는 최초로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니 내가 진행 중이던 송무를 인계 받을 동료 변호사들에게는 일종의 부채감이 생기던 때였다.


변호사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하며 나와 아내의 육아휴직 계획에 대해서 얘기를 하던 중, 아내 출산 후 늦어도 1년 안에는 복직이나 이직을 할 계획이라고 하자,


한 변호사가

“아니, 아이를 낳고 여자가 다시 일을 한다고요?”라고 물었고,

나는 “그럼요! 저보다 백배는 더 나은 변호사인데 당연히 일 해야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변호사는 고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의 저서 <지금 잠이 옵니까?> 겉표지에서나 볼법한 눈빛으로

언젠가 결단할 날이 올 겁니다.”라며 나에게 충고를 했다.


일전에도 임신소식을 알리며 육아휴직을 계획 중이라고 하자,

전 직장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며 대체근무자를 뽑지 않아 본인의 업무과 과중하게 되었다며 육아휴직 제도의 폐해를 논하던 변호사가 한 말이라 그런지, (그때의 감정을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충고가 아닌 저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워킹맘들이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얼마나 많은 유무형의 피해와 불이익을 받아왔을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출산 후, 아내와 내가 모두 육아휴직에 들어가자 가계 수입은 둘이 합쳐 260만 원 정도였다.

아내와 나의 육아휴직 급여 백십이만 오천 원에 구청에서 지급하는 배우자 육아휴직 장려금 30만 원을 합한 금액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고용보험을 통해 지급되는 육아휴직급여는 1년 동안만 지원이 될 뿐이고, 보수적이다 못해 육아와 관련해서는 구시대적이기도 한 법조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아내의 휴직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내의 커리어에 좋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와 아내의 복직 시점과 복직 후 육아 방식에 대하여 때론 심하게 다투기도 하며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내는 8월에 나는 9월에 복직을 하고, 복직 후에 선호를 주중에는 장모님께 맡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동료 변호사의 말처럼, 여자도 남자도, 엄마도 아빠도 결단할 날이 온 것이다.


워킹맘의 연관 검색어는 죄책감이라고 한다. 요즘은 여성들은 대학 진학은 물론이고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고 직장에 들어가는 데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한다. 취업이 쉽지는 않지만, 취업률에서 남녀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아 남성은 69퍼센트, 여성은 65.2퍼센트를 차지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많은 여성은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어떤 여성들은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직장 일을 계속하려는 워킹맘은 아직 어린아이를 집에 두고 회사에 가도 되는 건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출산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도 직장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좋은 어머니는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머리에 박혀 있기에 ‘나는 어머니다운 어머니인가’를 묻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아이 발달의 중요한 시기에 어린 자녀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염려와 걱정은 심리적인 죄책감을 일으킨다. 직장을 포기한 동료 전업맘을 떠올리면서 워킹맘은 매 순간 퇴사를 고민한다고 한다.

-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는 엄마 아빠에게> 123쪽에서 124쪽, 조혜자 지음


만약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길 때에 엄마가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당연히 아빠도 엄마와 같이 죄책감을 느껴야 함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육아를 하면서 찾아오는 ‘결단’의 순간의 주인공은 언제나 엄마이고, 아빠는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워킹맘을 압박한다.


그러나 육아는 엄마, 아빠 모두의 몫이고 책임이기에, 어려운 결단의 순간에도 엄마 아빠는 모두 결단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가끔은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며 싸우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사랑하는 아기에게 최선의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함께 결정하고 나아가야 한다.

집 밖은 매서운 눈초리로 언제든 비난의 준비가 되어 있는 악당들이 도사리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복직 준비를 하며, 선호가 주중에 생활할 공간도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애써주신 덕분에 나와 아내는 선호에게 필요한 침대랑 수납함 정도를 준비하는 중이다.

주중에 떨어져 있을 선호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그리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때마침 구매한 선호가 좋아하는 안녕달 작가님의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를 선호에게 읽어주며

나도 아내도 남몰래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앞으로 곧 다가올 9월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선호야,

그래도,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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