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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Aug 27. 2021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엄마, 나 잘 하고 있어요...?

“엄마, 나 좀 더 놀다가 가려고. 늦어서 미안해.”
“괜찮아 아들.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아!”


오랜만에 꿈에서 엄마를 만났다.

전에는 엄마가 꿈에 나타나면 엄마가 아프거나, 길을 잃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 꿈에서 깨어나길 바랐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 꿈은 조금 달랐다.

아내와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여행이 너무 즐거워서 다시 여행지로 돌아갔다.

돌아온 여행지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는 미안해하는 나에게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괜찮다며, 더 신나게 놀다 오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켜 앉았다. 뒤척이며 다시 잠이 들 때까지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의 생일을 챙기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엄마에게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무던한 엄마였지만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였던가, 엄마의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엄마는 다른 건 받고 싶은 게 없고 편지를 받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학업의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나는 학창시절 심각한 강박증을 앓고 있었다.

증상이 심할 때에는 단어 하나를 적는 데에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곤 했다.

쑥스러운 마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니 강박증이 심해져서 몹시 고단했고, 엉뚱하게도 엄마에게 힘들다는 말을 했다.

엄마는 미안하다며, 힘들면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4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할 때, 엄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짧고 담백하게 적힌 편지를 받았을 때 내심 반갑기만 했을 뿐이었다.

엄마는 혹여나 내가 많이 걱정할까봐 엄마가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가족들에게 신신당부를 했고, 나는 훈련소에서 퇴소한 날, 집으로 가지 말고 병원으로 오라고 하던 아버지의 전화를 받을 때까지도 엄마가 많이 아픈 줄 몰랐다.


큰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날, 엄마는 울먹이며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누나에게 부탁을 했다.

엄마는 누나가 급히 사다준 편지지에 한글자씩 꾹꾹 눌러썼다.

훗날 내가 훈련소에서 받은 편지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들었을 때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랑. 그리움. 불안함. 두려움. 미안함...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배어있는 짧은 편지를 읽고 나는 그저 기분이 좋았을 뿐이었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언제나 미숙했던 것이다.




공중보건의 시절, 날이 좋은 봄날에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갔다.

엄마는 제주도는 많이 가봤으니 아까운 휴가를 너무 많이 소진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아들과의 여행은 처음이니까 재미있을 거라며 엄마를 설득했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엄마가 조심스레 제주도에 며칠 더 있고 싶다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맑음과 흐림을 종잡을 수 없는 제주의 날씨처럼, 나의 기분도 행복과 우울 사이에서 종잡을 수 없었다.

엄마와의 여행이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 켠의 불안한 우울이 고개를 들곤 했다.

무한도전에 나온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며 엄마를 데리고 도착한 마라도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편안한 공허함을 느꼈다.

이 땅의 끝, 수평선과 지평선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망망대해가 보이는 작은 섬에서는 모든 투쟁이 전부 끝나는 것만 같았다.



마라도

엄마야, 나랑 마라도 가자.
바다내음 흙내음 아스라이 스며드는 그곳에 가자.

거기에 가서  잔디밭에 누워 하늘에 비친 바다도 보고
수녀님 앞에서 기도도 하고
절간에 가서 부처님도 보자.

그렇게 그렇게 아주 멀리 가서
아픈것들, 나쁜것들 몰래 두고 슬며시 오자.

고놈들 못 쫓아오게 추억 한 알 떨어뜨리지 말고 오자.

그렇게 오자.





나를 닮은 선호를 키우다 보니, 내가 닮았던 엄마 생각이 났다.

어제는 내가 엄마 뱃속에서 나왔던 날이라 그랬을까.

꿈에서 오랜만에 건강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 부스스 잠이 깬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요즈음 선호가 wonder weeks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많이 보채고 운다.

아내는 나보다 먼저 복직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나 혼자 선호를 기르다보니,

어제, 그제, 하루 종일 안아주길 바라는 선호에게 지쳐,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생일 상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투정까지 부려버렸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 하루는 선호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놀고, 퇴근한 아내와 저녁을 먹고, 선호를 씻기고 육(아)퇴(근)를 했다.

게으른 남편을 둔 탓에 육아서를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은 대부분 아내의 몫인데, 글을 쓰는 지금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책이 눈에 띈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엄마, 나 잘 하고 있어요...?

나... 아내랑 선호가 신나게 놀다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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