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장과 첫 장
날씨가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반차를 쓰고 어디론가 산책을 가기도, 맥주 한잔을 마시며 뜨끈했던 하루를 씻어내기에도, 법원에 가기에도 좋은 날이었다.
엄마와 내가 함께 보냈던 30여 년의 시간 동안, 그녀는 내가 하고 싶다고 했던 것들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만 난색을 표했다. 팔자가 사나워진다면서. 그녀의 가족사에서 기인한, 나름의 편견이었겠지만 사실, 글 한 조각 쓰지 않고 살아도 팔자는 때때로 사납게 덤벼 들더라. 너무나 눈이 부셔 신화라고 믿었던 이야기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가파르게 굴러 통속적인 사랑과 전쟁이 되었고, 4주 후에 보자는 익숙한 인사를 하는 신구 할아버지는 없었지만 법원과 은행, 병원과 구청 같은 실체가 또렷한 것들이 현실과 뒤엉켜 발끝에 차이는 동시에 엉겨 붙었다.
돌이켜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생을 함께 하자는 약속을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부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수조건이다. 서로의 시간을 배려해야 하고, 몇 번의 약속을 잡고, 성실하게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그와 나는 그렇게 했고, 마지막 법원 일정을 마치고 나와 김치찌개 맛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1년여 만에, 나에게는 '전남편'이라는 사람이 생겼다.
글쎄, 운이 좋았지만 당연하게도, 쉬웠던 시간은 없었다. 나는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고 필사적이었고, 세상에는 그냥, 그냥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누군가를 완전히 사랑하고 미워했던 기억과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용서였다. 용서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그렇게 혼자가 된 이후에도 계절은 착실하게 돌아왔고, 나는 한 번의 생일과 새해를 맞았다. 시간은 상대적이지만 꽤나 공평하게, 1년여를 잠자코 흘렀다. 지금은 까마득하지만,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일하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울지 않는 일이 가능했고 짐짓 인생이 평화롭다고 느끼기도 했었다. 해서, 그저 일을 하면서 버텼으나, 시간이 흐르고 생활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왜곡되었던 것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을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히려 남은 것은 지친 육신과 가치관에 상처를 입힐 만큼의 정신적 피로감, 깜짝 놀랄 만큼 못생겨진 얼굴과 그동안 쉬지 않아 묵은 38일 하고도 7시간의 연차휴가였다.
잘못된 경로는 빠르게 수정하면 되고, 조금 망가졌던 자아는 시간을 들여 수리하면 된다.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구원해야 하고, 나에게는 다행히 38일 7시간이라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 남았다.
그러므로,
놀아 보기로 했다. 38일 7시간을 남김없이.
더불어, 놀면서 쓰기로 했다. 이미 팔자는 사납고, 굳이 그것을 거역하기 위해 겁을 집어먹는 것보다는 강해지는 편이 낫다. 원하는 것을 하고, 기록을 남기면서.
그리하여 이것은 올해 나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