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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세 Aug 28. 2019

노는 기록 - 10일

2019년 5월 9일 / MBCC, 코펜하겐, 덴마크





아침 7시까지 술을 마시는 것과, 아침 7시부터 술을 마시는 것은 조금 다르다. 아니, 꽤 많이 다르다.



‘람빅’이라고 불리는 맥주의 한 종류가 있다.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신 맥주(Sour Beer)’정도가 될 텐데, 사실 람빅은 단순한 신맛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람빅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신맛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신맛이 기존 주류 맥주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람빅의 특성이고, 무엇보다 람빅이 내포하고 있는 신맛이 첫인상에서 주목받기 쉽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설명을 떠나서(일단 할 수도 없고), 내가 생각하는 람빅은 자연과 시간의 맥주이다. 자연 그대로의 효모들이 시간을 들여 맥아를 어루만지면서 신맛과 단맛, 꽃과 과일, 나무와 풀, 치즈와 쿰쿰함 등,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다채로움이 깃든 하나의 세계를 잉태하게 되는 것인데, 그 헤아리기 어려운 복잡성과 예측하기 힘든 우연성, 아슬아슬한 균형감 때문에 긴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자연과 시간의 기여도가 높아서인지,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람빅을 만들어내는 양조장들은 기가막힌 효모와 긴 역사를 가진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데, 코펜하겐 두 번째 날의 주인공이었던 Brasserie Cantillon도 드높은 명성의 벨기에 람빅 양조장 중 하나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Brasserie Cantillon은 코펜하겐에 Himmeriget이라는 좋은 친구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Himmeriget은 규모는 작지만 무척 훌륭한 맥주 라인업을 자랑하는 크래프트 맥주 바로, Mikkeller의 수장 Mikkel의 쌍둥이 동생이 연관되어 있는 곳이다. 맥주에 대한 집요함이 그들의 가족력이었는지, 동생 Jeppe 역시 미국 동부를 발판으로 Evil Twin Brewing이라는 브루어리를 하나 이끌고 있는데 형제의 사이가 그렇게 살가운 것은 아니었는지 코펜하겐의 좁은 맥주 씬에서는 언제나 그들에 대한 긴장감 있는 소문이 넘쳐난다고 한다. 아, 어쨌거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Cantillon과 Himmeriget이 친구라는 사실과 매년 Cantillon이 Himmeriget을 위해 블루베리를 잔뜩 넣은 블루베리 람빅을 양조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말이 너무 많았다)


5월 9일은 Himmeriget에서 이 특별한 블루베리 람빅을 런칭하는 날이었다. 코펜하겐에 가기 전부터 친구는 반드시 이 런칭행사를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심지어 이 블루베리 람빅을 위해 코펜하겐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이 경험이라는 것은 단순히 바에 가서 맥주를 사서 나오는 것이 아닌, 대략 6시간 전부터 (정오에 런칭이었으므로 오전 6시쯤) 코펜하겐의 비 오고 바람 불고 추운 날씨와 싸우며 꼼짝없이 줄을 서야 하는 고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간다고 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추위가 무서워지는 바람에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껴입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옷들을 챙기면서 제발 비만은 오지 않기를 기도했었다. 그리하여 5월 9일 오전 6시 반쯤, 티셔츠 위에 후디, 후디 위에 플리스, 플리스 위에 윈드브레이커, 윈드브레이커 위에 코트를 껴입고 겨울 양말을 신은 후 거리로 나섰고, (5월인데) 어둑어둑한 도시의 하늘에서는 무심하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와 내가 Himmeriget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줄이 길었고, 우리보다 한참 앞의 줄에서 전날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났다. 새벽 두 시에 도착했다는 한 친구는 몸의 반이 침낭에 들어가 있었고, 첫 번째로 줄을 선 사람들은 전날 정오에 도착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덕질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뭔가 한정 판매하는 것을 사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한다는 사실이 신비로웠지만, 어쨌거나 나도 블루베리 람빅이 탐나서 빗속에서 6시간을 버티기로 했으니, 영 못할 짓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마음을 크게 먹고, 친구가 사다준 커피를 마시면서 멍하니 서있는데 손과 발이 너무 시리고 피곤이 몰려왔다. 2시간쯤 서있었나 싶어 시계를 봤는데,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집에 가고 싶어 지는 동시에 영 못할 짓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서있으려니 끔찍하게 추웠다) 그때 어디에선가 맥주의 코르크 마개를 오픈하는 소리가 뜬금없이 청량하게 들려왔다. 말로만 듣던 블루베리 라인 맥주 조찬의 시작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줄 안에 갇혀 가만히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었고, 그 시각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술판이 벌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해를 반복할수록 이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어 거의 모든 이들이 나눠마실 맥주를 대여섯 병(혹은 캔) 씩 챙겨 오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 된 것 같았다. 나의 친구도 5병 정도의 맥주와 내 몫까지 작은 맥주잔 2개를 챙겨 왔고, 우리는 낯선 사람들이 나누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기운에 조금씩 몸이 데워지면서 바 스탭들이 나와 번호표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번호표를 받은 후부터는 줄 안에서는 이동 가능했기 때문에 (다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곳에 있는 것이었으므로 당연히 새치기나 줄 이탈 등이 민감한 이슈였고, 해서 번호표를 배분한 이후에도 1시간 간격으로 스탭들이 출석체크를 하고, 체크 시 자리에 없는 경우 줄에서 퇴출된다고 했다) 우리는 잔을 들고 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친구들과 인사하며 맥주를 마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지루해 보였던 사람들이 점차 생기를 찾으면서 맥주 오픈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는데 (오전 9시였다) 그때부터는 줄 안에 있는 모두가 친구였다. 사람들의 가방에서 귀하고 맛있는 맥주들이 줄줄이 나왔고, 눈을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인사 대신 내 잔을 채웠다. 나는 미국에서 온 친구와 맥주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스웨덴 사람들로부터 뭔지 모를 독한 전통주를 받아 마셨으며, 브라질 사람들과 깔깔대거나 휴대용 도마를 무릎에 올려놓고 드라이 소시지를 썰고 있는 덴마크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소시지를 얻어먹다가 출석 체크하는 스탭이 보이면 얌전히 내 자리로 돌아갔고, 체크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줄 사이사이를 뛰어다녔다. 아침인 데다 화장도 안 한 비 맞은 몰골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세상 가장 즐거운 맥주 파티였다. (몇몇 사람들과는 꽤 진지한 이야기도 했던 것 같은데, 단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더 이상 춥지 않았고, 핸드폰의 시계가 12시를 표시하고 있었다. 블루베리 람빅 판매가 시작되었고, 신난 취객들의 줄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는데, 친구가 취하는 바람에 조금 지루해져서 뒤에 있던 스웨덴 모자와 대화를 조금 했다. 아들이 맥주를 좋아해서, 단지 블루베리 람빅을 사기 위해 코펜하겐에 왔고, 한 명당 살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데다 여자 친구도 맥주를 좋아해서 함께 오려고 했지만, 여자 친구는 아이와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줄을 섰다고 했다. 추운데 그 고생을 함께 하다니 어머니가 정말 대단하시네요,라고 했더니 '뭐, 나쁘지 않았어요.'라고 어머니는 쿨하게 응답했다. 30분쯤 지나 내 차례가 되어 바에 들어가 대략 1분 만에 블루베리 람빅 큰 병을 샀다. 6시간을 기다려 맥주 한 병이라니, 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그 순간 그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장소에서 낯선 사람 백 명쯤과 이야기해 본 일이 처음이었고, 그 낯선 사람들이 눈을 마주칠 때마다 맛있는 술을 준 일도 처음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몸이 불편했지만 즐거웠으므로 그 시간은 가치가 있었다. 나는 함께 시간과 술을 나눈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스웨덴 모자와도 포옹을 한 후 친구를 챙겨 바를 나섰다.



맥주는 가방에 담았지만, 마치 머릿속에 넣은 것처럼 머리가 무거웠다. 여전히 코펜하겐의 Mikkeller 바나 바틀샵에서는 맥주 릴리즈 행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일단 그냥 낮잠이나 자기로 하고 각자의 거처로 향했다.


오후 4시경, 나는 숙취가 떠나지 않은 몸을 일으켜 그날 출시되는 몇 종의 맥주를 더 사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중독자의 서사 같은 느낌이지만) Mikkeller가 미국 인디애나 주의 3 Floyds라는 브루어리와 함께 만든 브루펍(펍 안에 양조시설이 있어, 같은 장소에서 양조한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보통 양조 규모가 작아 좀 더 다양하고 실험적인 맥주들이 생산되는 편이다), Warpig는 굉장히 큰 공간에서 맥주는 물론 아메리칸 바베큐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인데, 나와 친구는 딱히 앉아서 맥주를 마실 컨디션이 더 이상 아니었던 데다(그런 컨디션이면 더 이상할 법도 했다) 바베큐 무드도 아니라 목표했던 한정 릴리즈 맥주 두병씩을 사고 난 후 Warpig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Mikkeller General Store에 들러 맥주와 초콜릿을 샀다. (Mikkeller General Store는 맥주는 물론 맥주와 연관된 MD상품들, Mikkeller가 소량 생산하고 있는 크래프트 초콜릿도 판매하는 지점이다)



사실 저녁 6시부터는 친구의 집에 여러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서(나 포함)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라 우리는 그날 해야 할 맥주 쇼핑을 조금 서둘러 끝마쳤고, 마트에 들러 음료수와 칩 조금, 칼스버그 맥주(덴마크는 역시 칼스버그)를 사들고 해가 지기 전에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친구의 집에는 그의 직장 동료와 그녀의 딸(열여섯 살이었다), 내 친구의 오래된 한국인 친구와 그녀의 남동생(그들은 그때 즈음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까지 여섯 명의 사람이 모였다. 친구의 집에는 곳곳에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 오간 흔적들이 많이 있었고, (심지어 카카오톡 라이언 우산도 두 개나 있었다) 열여섯 살의 어린 친구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엄마와 함께 서울을 여행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다들 잘 아는 사이였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따뜻하고 사려 깊어 나는 금세 그들과 공통점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에 스며들 수 있었다. 나이와 성별, 국적과 언어가 다른 여섯 사람은 칼스버그와 콜라를 천천히 비워 내며 온갖 이야기를 했다. 덴마크의 선거 후보자와 교육, 그들이 태어난 도시, 어린 친구가 좋아하는 K-pop가수와 그녀의 한국어 선생님, 피부관리, 우리가 배워온 여러 가지 언어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동안 작은 웃음들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고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했다. 여유를 부리며 흐르는 시간 동안, 나는 눈으로 보이는 우리 모두의 다른 점들이 희미해져 감을 느꼈고, 그 느낌이 좋았다. 다음날 오전 10시부터는 맥주축제가 시작될 예정이었기에 우리는 조금 일찍 아쉬운 포옹을 나누며 작별 인사를 했고, 나는 이들을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오락가락했던 온도와 사람들, 취기와 여유로움이 공존했던 하루를 되새기며, 나는 언어에 대하여 생각했다. 덴마크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는 나라이다. 4년 전 출장으로 방문했을 때, 함께 일하던 덴마크 친구에게 왜 내가 만나는 거의 모든 덴마크인들이 영어를 편하게 구사하는지 물었는데, 그녀는 실없는 질문이라는 듯 '학교에서 배워.'라고 대답했고,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학교에서 배우는데?라고 생각만 했다) 나 역시 완벽하고 정교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블루베리 람빅을 기다리는 줄에서 6시간 동안 친구를 만들거나, 덴마크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다채로운 주제의 대화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다행스러웠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는 영어로 말할 줄 몰랐고, 나에게 있어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숫자로 변환되는 어떤 증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하거나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거나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을 때, 영어는 온전히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한 언어로서 기능하고 있다. 잊고 있던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또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술을 많이 마셨으나 다치지도 아프지도 않았던 무사한 하루가 갔다. 축제의 전야, 필요한 것은 설렘과 호기심, 단단한 마음가짐과 숙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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