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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날 Oct 03. 2022

흰 이슬 흰 달, 휘영청 백로

이슬 맺히는 한가위 흰 달 아래, 한 숨을 고릅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백로(白露): 백로는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난다. [출처:다음백과]


  지새운 이슬

시골집은 한 여름에도 새벽엔 잔디가 살짝 물기를 품고 있긴 하지만, 흰 이슬이 열린다는 '백로' 즈음엔 새벽에 일어나지 않아도 아침 녁까지 풀에 맺힌 이슬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어진 밤을 지새운 아침 이슬이 새벽까지 말똥 말똥 깨어있다 아침이 되셔야 후두두둑 햇볕 타고 사라지는 계절입니다. 이슬을 손바닥 가득 품어보고 다가오는 가을을 느껴봅니다.


배추 도사, 무 도사

추석 연휴에 도사님들을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동네 원예사에서는 배추, 무 심을 시기가 좀 지났다고 하셨지만, 가을 작물을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 배추는 모종으로, 무는 씨앗으로 들여왔습니다. 여름 잡초를 대충 걷어낸 밭을 한 번씩 잘 뒤집어서 두둑 네 군데를 마련했어요. 상추가 있던 두둑에 무 씨앗을 잘 뿌려주고 토마토를 걷어낸 두둑엔 배추 모종, 파밭에는 새 파 모종을 다시 심어주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심어 보는 쪽파는 가장 앞 두둑 잘 보이는 데 놓았습니다. 심어야 할 때를 조금 지나 자리 잡은 아이들이라 잘 자라 줄지 모르겠어요. 힘내라, 늦깎이 가을 작물들!


무 씨앗, 배추 모종
쪽파 다섯개, 파 뭉치들


한가위! 달리고 먹고 쉬고

치열했던 여름을 다 지내고, 탓밭돠 정원에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한가롭습니다. 자식들 집 떠난 뒤 홀로 집에 남은 기분이 이럴까요? 9월 초순 일찍 맞이한 한가위 연휴, 게으른 정원사는 작정하고 게으름을 피웁니다.

산 중턱에 있는 시골집에서 7키로쯤 달려 내려가 보았습니다. 시골집에 오면 며칠이고 집에만 있었는데, 달려 내려가니 시내도 40분이면 도착, 장 보고 나서 올 때는 하루에 3-4번 있는 버스를 시간 잘 맞춰 타고 동네 입구까지 와서, 산길을 20여분 걸어 올라오면 다시 시골집. 달리기도 하고 장도 보고 산책도 할 수 있는 꽤 좋은 루틴을 찾아냈습니다.

달려라! 동네 입구 큰 나무. 도시에 와서도 달렸어요. 예쁜 가을 하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문득 문득  먹을까 생각하다 
느릿 느릿 만들어 먹고 품평하고
그렇게 두어끼를 지나면 하루가 저뭅니다.

엄마가 담아주신 열무김치만 있으면 국수, 비빔밥 뭐든지 뚝딱 한끼. 그리고 딸아이가 만들어준 쿠르아상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뚝딱 만들어보는 김밥
길냥이들도 한가로워요.



휘영청 밝은 달! 더도 말고 달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쉼,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가을을 마중나갑니다.



게으른 정원가의 '백로' 활용법

1. 배추 도사, 무 도사 모셔오기

2. 달리고, 먹고, 놀며 쉬며

3. 여유롭게 가을을 맞이하기


절기마다 같은 장소에서 텃밭 정원 전경을 사진으로 담아 보려해요.  2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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