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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날 Oct 03. 2022

밤이 깊었네, 춤을 추는 추분

온몸으로 춤을 추며 가을 하늘을 달려요!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추분(秋分) : 양력 9월 23일경, 추분점(秋分點)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므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출처:다음백과]


계절의 분기점

춘분과 함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 계절의 분기점이 되는 추분.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지만, 춘분은 낮이 길어짐을 느끼고, 추분은 밤이 깊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게 '추세'겠지요,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방향성을 잡아주는 힘. 추분 즈음에는 그 방향성이 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고 있어요.


시골살이를 하면 추분을 온몸으로 겪어내게 됩니다. 저녁 6시면 어둑어둑해지며 일찍 들어서는 밤 때문에 하루는 짧아지고, 주말을 보내고 시골집에서 도시로 돌아오는 여정은 더 일찍 시작되는데 길 위에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집니다. 어둠이 와도 길 위에 늘어선 차는 여전히 많거든요. 그래도 어둑해진 산길을 운전하며 내려오는 게 조심스러워서 늦은 오후면 나서게 됩니다. 이렇게 라이프 스타일이 바뀌게 되는 분기점이 추분이에요. 벌써부터 겨울을 준비하는 느낌이랄까요. 아닌 게 아니라 시골집의 9월 밤은 전기장판 없이는 잠을 청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널 못 보내, 수국!

가냘픈 몸에 버거워 보이는 큰 꽃송이를 여름 내 품고 있었는데, 가을에 접어들어서도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보통 꽃이 시들면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수국은 늘어진 가지 끝으로 빛이 바래 붉어진 꽃송이를 끝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련퉁이!

수국은 미련이 많은 꽃인가 봐요.

한 켠에 오랜 미련을 품고 있는 내 마음의 무게처럼 묵직하게 전달되는 쓸쓸함

수국 꽃가지를 잘라주어야겠죠. 그래야 가벼운 몸으로 겨울을 보내고 내년 새 싹과 새 꽃을 맞이할 테니깐요. 하지만 이번 주도 수국 가지치기를 미룹니다.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낸 꽃송이가 애잔해서, 붉어진 꽃이 또 다르게 아름다워서, 수국 앞에 선 내가 미련퉁이여서 그런가 봅니다.


메리골드와 꽃무릇

작년인가 씨를 뿌려 만난 꽃이 있었어요. 메리골드. 작년에는 금세 폈다 졌던 것 같은데, 올해는 다른 땅으로 이사를 가더니 쨍한 주황색을 뽐내며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가을에는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수줍게 다가서는 I형 가을에, E형 텐션을 뽐내는 꽃이랄까요.

아, MBTI 가 유행이라지만 메리골드를 보면서도 유형 가르기를 하다니요! 꽃도 사람도 어느 유형으로 평가되고 단정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걸요. 메리골드도,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도.


그리고, 여기, 갑자기 튀어나온 꽃이 또 있습니다.

올봄에 과천 화훼단지에서 야심 차게 데려와, 정원 맨 앞 구근 존에 심었던 꽃무릇. 탱글탱글 씩씩한 구근들 스무여 개를 심었었는데, 가을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인 거예요. 두더지가 파먹었나 했죠. 땅을 뒤적여봐도 남아있는 구근이 없어 보였거든요. 그런데, 추분이 지나고 하나 둘 꽃들이 지기 시작하는 정원에 파릇파릇 새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오! 꽃무릇 자리예요. 꽃무릇입니다!

생명이란 문득

나타났다 사라지는 별똥별 같은 걸까, 아름다운 빨간 꽃핀 꽃무릇을 상상하며 하늘에 별똥별을 그려봅니다.



가을 작물이 제법 자랐어요.

추석 연휴 때 심은 배추 모종과 무 씨앗이 제법 잘 컸습니다. 8월 말 제 때 심었다는 옆집 배추와 무는 벌레가 많이 먹었다는데, 늦깎이 우리 집 배추와 무는 벌레 없이 싱싱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벌레들이 아직 오지 않을 걸까,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다 때가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지만, 좀 늦어도 나름대로의 시작도 의미 있는 게 아닐까요. 김장 담을 배추도 아닌 걸요, 작게 여물 이 아이들과 소소하게 가을 텃밭을 꾸려보렵니다.

 

춤을 추는 추분

달리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높아요.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는 일은 참 멋진 일이에요. 달리며 숨이 차 오를 때 내 안과 바깥세상이 만나는 것 같아요.

온몸으로 춤을 추며, 가을 하늘을 달려요!



게으른 정원가의 '추분' 활용법

1. 여전히 아름다운 수국 바라보기

2. 가을 작물 커가는 모습 바라보기

3. 깊어가는 밤, 가을 달리기!

22.10.1. 시월 첫날 텃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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