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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날 Oct 29. 2022

한로에 맺힌 국화꽃 향기

찬 이슬에 국화꽃 향기가 진하게 맺히고, 동절기 맞을 준비를 합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한로(寒露) : 양력 10월 8일경,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할 시기여서 기온이 더욱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야 하므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한로를 전후하여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며, 온갖 모임이나 놀이가 성행한다. [출처: 다음백과]


절기에 맺힌 두 번째 이슬

이슬이 시작된다는 백로를 한 달 지나,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입니다. 한로의 이슬은 해가 뜨고 아침 9시가 지나도 짱짱합니다. 세워둔 차의 이슬은 비가 되어 흘러내리고, 잔디 마당을 걷다 보면 발끝이 찌릿찌릿 시린 느낌도 듭니다. 도시에 살다 보면 소주잔을 기울일 때는 빼곤 '이슬'이란 말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데, 사실 시골집에서는 사시사철 이른 아침이면 이슬을 만나게 되지요. 매일 만나는 친구가 TV에 나온 것처럼, 절기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린 이슬이 새삼 더 친근하고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국화꽃 향기는 바닥을 타고 온다

국화꽃 향기의 농도가 짙어서 무거운 걸까요. 한로 즈음 시골집에 도착하자마자 짙은 국화꽃 향기가 묵직하게 코를 찌릅니다. 가을 향기! 우리 집 국화는 어디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집 한 켠 모서리에 잘 자리 잡은 산국이 있습니다. 여름에 줄기를 짧게 잘라줘야 했는데 시기를 놓쳐서, 이미 길게 자라 늘여 뜨려진 줄기 끝에 노란 꽃들이 송글 송글 맺었습니다. 좀 난해한 모양으로 핀 산국이지만 10월 내내 이 동네 벌들이 축제를 벌이는 핫플이 되었습니다.

저절로 피어난 산국, 우리집 가을 마당을 짙은 향기로 채워줍니다.


동절기가 시작되었어요

관광지 시간 안내에 등장하는 동절기는 보통 10월부터입니다. 맞아요. 이제 서서히 텃밭 정원은 겨울 방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오후에는 반팔 입고 활동하기에도 괜찮은 10월 초순이지만, 마당 수도가 얼기 전에 치열한 하절기를 지나온 텃밭 정원을 정리해주어야 해요. 올해 부지런한 정원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뒷 정원 정자의 '쓰임새'

여름 내 수풀에 뒤덮여 발걸음 하기도 어려웠던 뒷 정원을 먼저 정리해봅니다. 사람이 닿지 않는 정원은 참 을씨년스러워요. 허리까지 자란 잡초들을 우선 뽑아주고, 정자 주변으로 뻗친 가지를 잘라 길을 내주려는데 쉽지 않아요. 보살펴 준 사람도 없었는데 여기 아이들은 왜 이렇게 훌쩍 자랐을까요? 뒷 정원을 잘 정리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정자의 쓰임새를 찾고 싶은데, 올해도 그냥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아요. 아직도 시골집에 내가 더 탐색하고 더 친해져야 할 미지의 공간이 있다는 게 정주행 할 재밌는 드라마를 즐겨찾기 해둔 것처럼 든든한 느낌이 들기도 하니깐요.


천천히 하나씩 찾아가지요,
내 공간의 쓰임새들


(좌) 정자로 가는 길을 내려고 (우) 가지치기했어요.
조금 깔끔해진 뒷 정원. 어린 소나무 두 그루를 과감하게잘랐습니 다. 길목과 수돗가를 가리고 있던 아이들이었는데 솔방울의 틔어 자생한 것이 애뜻해서 못자르고 있었거든요


잔디 깎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8월 말에 올해 처음으로 잔디를 깎았었는데 두 달만에 잔디가 꽤 자랐습니다. 긴 머리를 잘라주었더니 잔디가 건강해져서 가을에도 잘 자란 것 같아요. 단정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두 달 전보다 좀 더 짧게 자릅니다. 짧게 자르려니 잔디 깎기 칼날이 돌이나 솔방울에 닿아 무서운 굉음을 내서 조심조심 마당을 오갑니다.

아마도 이번에 자르면 이대로 잔디가 노란 양탄자로 변하고 가을 단풍을 덮고 겨울 눈을 맞겠지요. 철 바뀔 때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꺼내놓으시는 새 이불처럼 폭신하고 기분 좋은 마당 잔디입니다. 내 손길을 엄마 손길처럼 느끼고 우리 잔디도 올 가을도 잘 보낼 수 있겠지요.

(좌) 잔디깍기 납신 길 (우) 노오란 속살 드러난 잔디
정원 일은
만물의 물성(物性)을 직접 느낄 수 있고,
또 한 만큼의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정직한' 일이라 참 좋아요.



회심의 가지치기

우리 마당을 안전하게 둘러주는 철쭉과 꽃나무들 가지치기를 드디어 시작했습니다. 가장 잘 보이는 앞마당부터 햇볕을 쫓아 길게 목을 내민 철쭉 머리를 큰 가위로 평평하게 잘라줍니다. 아! 머리를 자른다는 표현은 좀 기괴하네요. 여하튼 위로 아래로 옆으로 평평하게 가지치기를 하니 정말 단정한 마당이 되었습니다.

단정해진 앞마당. 노력 대비 성과가 매우 큰 재미있는 정원 일입니다.


BEFORE & AFTER, 무엇이 바꿨을까요?

소나무가 날씬해졌어요.

지난번 소나무 전정작업을 해주신 마을 반장님께서 텃밭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전정 작업을 마저 해주셨습니다. 저 편 산 바람이 우리 마당까지 고스란히 전달돼요. 시원한 바람, 상쾌한 시월의 정원입니다.

속살 드러난 소나무 가지가 꽤 자유분방하게 뻗어있죠. 그 사이로 재미있게 바람이 드나듭니다.


텃밭 지지대를 다 뽑아 정리하고,

고추와 가지 몇 개만 남겨두었어요. 그래도 배추와 무, 쪽파가 잘 자라고 있어 꽤 풍성한 가을 텃밭입니다.

무 줄기, 고춧잎과 고추 그리고 상추를 한 아름 따서 먹었어요. 여전히 배와 마음을 채워주는 고마운 텃밭입니다.

무줄기와 고춧잎은 삶아서 된장에 무쳐먹고, 고추와 상추와 함께 무줄기도 생채로 먹어봤어요.



게으른 정원사의 '한로' 활용법

1. 국화꽃 향기 타고 가을 만끽하기

2. 정원, 마당 둘레 꽃나무 가치지기

3. 텃밭 지지대 정리하면서 가을 작물 거두기


2022.10.15. 제법 풍성한 가을 텃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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