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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날 Nov 26. 2022

겨울에 입맞춤을, 입동

비와 함께 본격적인 겨울이 예고되었습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흘러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입동(立冬):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 각 마을에서는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 곳곳에 놓으며, 이웃은 물론 농사에 힘쓴 소에게도 나누어주면서 1년을 마무리하는 제사를 올린다. 이 무렵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기 시작하며, 동면하는 동물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숨는다. 입동날 추우면 그해 겨울은 몹시 춥다고 한다. [출처:다음백과]


비와 함께 예고된 본격적인 겨울

입동이 지난 주말,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며칠째 미세먼지가 심하더니, 길쭉한 물줄기가 뿌연 하늘을 가르고 시원하게 쏟아집니다. 마당 데크에 앉아 멍하니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계절 감각이 없어지는 듯하다가도, 언뜻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오는 알싸한 기운이 아! 이제 겨울이 오는구나! 체감하게 합니다.

미세먼지를 해체하고 낭만을 실어 나르며,
계절을 가로지르면서 달려오는 멋진 겨울비



겨울을 기다리고 있었나요?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입동 즈음, 올 겨울을 몹시 기대하고 있는 듯이 분주합니다. 밭을 갈고 수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리 바쁜 일도 없건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것이, 긴 여행을 앞둔 전 날 밤처럼 사브작 사브작 이것저것을 챙기게 됩니다.  

봄, 여름, 가을은 따로 준비하진 않잖아요. 그저 맞이할 뿐이죠. 하지만 입동 전부터 분주히 '대비'하게 되는 겨울은 특별한 계절입니다.


야생의 선조는 추위를 피해 '생존'해야 했죠.
하지만 안전한 집이 있는 문명 시대에도,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시골집은
야생과 문명 사이에 있어 흥미롭습니다.


겨울 준비의 첫 단추는 낙엽을 떨구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 나무들을 응원하며 내 눈에 좀 더 예쁘게 정돈하는 일입니다. 가을을 지낸 나무와 풀들은 온통 흙빛을 닮아있어요. 우리 집 울타리가 되어 주는 철쭉의 삐죽 나와있는 줄기를 가지런히 잘라줍니다. 미용실 안 가고 집에서 앞머리 자르는 느낌이에요. 어설프지만 간편하고 또 잘라놓고 보면 꽤 단정해요. 텃밭 정원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던 고추, 부추도 보내주고, 큰 꽃대를 고스란히 세우고 있던 백합도 땅 가까이로 키를 낮춰주고, 긴 여름과 가을까지 꽃을 피우던 목수국 가지도 잘라주었습니다. 내년에 또 보자, 인사하며 왠지 쓸쓸해지는 마음을 다독거려 봅니다.

붉게 물들다 서서히 흙빛을 닮아가고 있는 철쭉과 단풍잎들


가을 수확

겨울을 맞이하는 결정적인 이벤트는 뭐니 뭐니 해도 가을 수확입니다. 사실 수확이랄 것도 없는 것이 배추 여섯 포기와 씨앗을 뿌려 잘게 자란 무뿐이지만, 오랜만에 땅에서 무를 쑥 뽑아내고, 배춧잎을 싹둑 가르는 손맛이 여름 한창때 수확의 기쁨을 떠올리게 합니다.  

배추와 무를 마당 수돗가에서 뽀독 뽀독 씻어, 배추와 무는 잘라 집 안으로 들여보내고, 무청은 탈탈 털어서 비가 들이치지 않는 데크 지붕에 가지런히 널었습니다. 줄줄이 예쁘게 널어놓으니 이제 시골 사람 다 된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잘 말려서 시래기국을 끓어먹어야지 하는 효용보다는, 시골살이 정취를 담뿍 느끼게 해주는 효과가 더 좋습니다.


마당 수도와 헤어질 결심

영하 날씨가 계속되는 진짜 겨울이 오면, 마당 수돗가는 폐쇄됩니다. 폐쇄라는 말이 좀 사납지요. 근데 실제로 쓸 수 없어요. 수도를 틀었다 잠갔다 하면 고인 물이 꽁꽁 얼어 수도관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폭신한 뽁뽁이를 둘러놓고 있어요. 겨울에 마당을 덜 찾게 되는 큰 이유가 바로 마당 수도를 쓸 수 없다는 거예요. 정원 일을 하고 음식 쓰레기를 묻고 세차를 하고 모든 일 끝에는 수도를 시원하게 틀고 장비를 정리하고 손을 씻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걸 하지 못하니 참 아쉬워요.

마당 수도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11월, 헤어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히 해봅니다. 제일 먼저 옥상 물청소. 일 년 내내 조금씩 쌓인 낙엽과 흙물 덩이에 옥상 바닥이 거뭇해져 있어요. 거센 물줄기로 쏴악 한번 씻어주고 밀대로 야무지게 밀어줍니다. 거의 일 년 만에 닿는 손길에도 다시 깨끗해지는 옥상 바닥이 참 고맙습니다. 올 겨울에는 볕이 오래 머무는 옥상에 자주 올라오리라, 10월에 페인트칠한 하얀 벤치와 캠핑 의자를 올려놓았어요. 볕을 쬐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이 벤치와 의자에 몸을 기댈 셈입니다. 나의 공간이 또 하나 탄생했어요.



초겨울의 정취들

장미 꽃봉오리가 올라왔어요. 추분 즈음에 장미 줄기를 잘라주었더니, 새로운 힘이 솟았는지 마알간 새 줄기가 올라오고 아이러니하게도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 즈음에 빨간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추워서 그런지 꽃잎을 다 벌리진 못했어요. 입을 꼭 다물고 좀 당황하는 것 같은 초겨울의 장미가 참 사랑스럽습니다.  

연료 부자가 되었어요.

응답하라 1988 드라마를 보면, 연탄을 창고 가득 쌓아놓는 것이 부자의 상징 같은 걸로 그려지잖아요. 어릴 적 내 기억 속에서도 집에 연탄 들어오는 날은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우리 집에도 거실 난로 펠릿 연료를 가득 들여놓았습니다. 마당 창고 꽉 차게 들여놓으니 든든합니다. 이 아이들로 올 겨울도 따뜻하게 지내보렵니다.

그리고 겨울 준비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 따뜻한 커피와 함께 딸아이가 직접 쑨 팥으로 붕어빵을 개시해요.

추운 겨울은 따뜻한 것들을 더 찾게 되면서
오히려 온기를 고스란히 더 느끼게 되는
따뜻한 계절입니다.



게으른 정원가의 '입동' 활용법

1. 흙빛 닮아가는 정원 아이들 잘라주기

2. 배추와 무, 가을 수확하고 무청 널기

3. 옥상 청소, 마당 수도와 헤어질 결심

4. 거실 난로 펠릿 창고에 가득 쌓아놓기

잎이 떨어진 나무 가지 사이로 윗마을 길이 시야에 들어오는 입동 정원. 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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