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날 Dec 14. 2022

소설,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눈과 함께 진짜 거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소설(小雪) : 이때부터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하여 점차 겨울 기분이 든다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 옛날부터 중국사람들은 소설로부터 대설까지의 기간을 5일씩 삼후(三候)로 구분하여, 초후(初候)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中候)에는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폐색 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소설이 갓 지난 주말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또 다른 절기가 온 것을 환기라도 시켜주듯 이번에도 비가 내려 달라진 기운과 향내를 듬뿍 선사합니다. 소설의 차가운 기운과 소춘이라 불릴만한 따뜻한 기운이 한데 어울려 묘한 매력을 풍기는 절기이지만, 겨울로 내달리는 추세는 꺾을 수 없나 봅니다. 비 온 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놀란 듯 파아란 하늘입니다.


추운 겨울을 좋아합니다.

추위를 안 타는 편은 아닌데 겨울엔 추워야 제 철의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따뜻한 겨울 날씨에 꼭 따라붙는 미세먼지가 참 싫기도 하고요.) 코끝에 싸하게 맞붙는 차가운 기운이 똑 부러진 자연의 지휘처럼 명쾌하게 느껴지고 옷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자연과의 아찔한 스킨십처럼 낭만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땅이 얼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가을을 흠뻑 느끼고 싶기도 했고 내 게으름의 결과이기도 한, 마당 가득 쌓여있는 낙엽을 쓸어 담으려 합니다. 빨간 카펫처럼 고왔던 빛이 어느새 흙빛을 닮아가고 또 많이 말라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쓸어 담는 일은 사실 일도 아니에요. 바삭 거리는 예쁜 소리를 들으며 마당을 쓰담 쓰담하다 보면 가볍고 푹신한 낙엽 이불 몇 십 채가 만들어집니다. 낙엽 이불을 텃밭으로 옮겨 고랑 사이 길에 두둑이 깔아주었습니다. 올해 봄에 이렇게 텃밭 길에 낙엽을 깔아주었더니 잡초가 덜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낙엽이 삭으면 작물에게 유용한 거름이 되기도 하니 이점이 많습니다. 다만, 바람이 거세게 불면 이리저리 나뒹굴어 매번 모아주고 다독거려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동반되기는 합니다.

낙엽 쓸어담기 루틴, 하트 만들기

그리고 정원 아이들에게는 가을에 잔디 깎고 한편에 모아둬 잘 마른 잔디를 한 아름 모아 덮어주었어요. 추운 겨울을 잘 견뎌서 내년 봄에도 다시 만나길 기원하며 뿌리애 진동이 닿도록 토닥토닥 두드려 봅니다. 내년 봄을 미리 약속하듯 어렵게 피워낸 장미꽃을 보세요.


너무 애쓸 필요 없어.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또 보겠지 마음 놓고 이 겨울을 지나자
- 겨울 장미꽃에게 -
가을 가지치기 후, 소설에 핀 장미꽃과 새잎이 돋운 라일락. 마른 잔디 이불을 덮어주었어요.


공간 기획의 기쁨

시골집에 자리 잡은 지 3년째 사용하지 않고 있던 정자를 정리했습니다. 오래된 두 겹의 장판을 뜯어내고 널빤지 숨을 쉬게 해 준 뒤에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전 주인이 창고에 두고 가신 장판을 깔아주었습니다. 이 장판은 뒷면에 전선이 붙어있는데 전 주인이 안방에 전기장판처럼 쓰시던 것이어서, 정자에서도 따뜻하게 몸을 데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 전기를 켤 일은 좀처럼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입니다.

내 손길이 닿고 공간의 쓰임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때가 있어요.


또 한 편의 소중한 내 공간, 마당 수도를 얼지 않게 살피는 일도 중요합니다.

수도를 감싸는 스티로폼 기둥, 이것도 전 주인분이 쓰시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폐품 활용 차원의 물건이지만, 우리 마당 수도 둘레에 딱 맞는 너비의 스티로폼 기둥과 그 위에 올려놓는 돌덩이까지 딱 맞춤이에요.


쓰임새를 잘 발휘하며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물건들의 진가, 시골집에서는 이렇게 물건들과도 정이 듭니다.


첫눈

12월 3일, 시골집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살포시 내려 마당에 조금 덮이는 듯하더니, 몇 시간 안에 자취를 감춘 수줍은 첫눈입니다. 정자 지붕에, 잔디 마당에, 텃밭으로 이사 간 낙엽 위에 옅게 칠한 하얀 물감처럼 덧대진 눈이 참 예쁘고 따뜻합니다.

차가운 눈이 따뜻해 보이는 건 어떤 착시 효과일까요? 기분 좋은 착시와 함께 올 겨울의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게으른 정원가의 ‘소설’ 활용법

1. 땅이 얼기 전에 낙엽 쓸어 모으기

2. 정자, 마당 수도, 내 공간들 살피기

3. 첫눈 맞이하기 ^.........^

22.12.3 첫 눈 내린 텃밭 정원
이전 19화 겨울에 입맞춤을, 입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