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맞으며 상큼 온 가을, 서리당하기 전에 볕 따라 즐겨봅니다.
작은 텃밭 정원을 몇 년째 가꾸고 있지만 도통 자라지 않는 기술과 지식과 마음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게으른 정원가의 24절기 활용법
상강(霜降): 양력 10월 23·24일께,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지므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계절이다 [출처: 다음백과]
대기 중의 수증기가 중간 단계인 액체상을 거치지 않고 얼음으로 직접 형성되는 것을 '서리'라고 합니다. 아침 이슬을 만나지 않고 바로 얼음 결정체, 서리를 만나게 되는 때가 '상강'입니다. 이슬은 맺히고, 서리는 내리고, 이슬과 서리가 만나는 동사가 참 적절하고 운치 있지요. 이슬은 찬찬히 맺히고 서리는 맺힐 새 없이 내리는 게 정말 딱 맞는 표현이네요.
아! 가을입니다.
겨울을 앞두고 으름장이라도 놓듯이 '상강'이 납시었지만, 느긋한 가을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높은 하늘, 청명한 날씨, 따스한 한낮의 햇살, 반짝이는 별! 그리고 형형색색의 단풍!
살금살금 추워져요.
상강에 접어들면서 아침과 저녁에는 꽤 추워졌습니다. 하지만 볕이 드는 낮에 마당에 나가 있으면 아직은 따사로운 기운이 느껴져요. 그래서 이 계절엔 마당 볕을 졸졸 따라다닙니다. 해가 뜬 직후엔 집 맞닿아 있는 마당 데크 깊숙이 볕이 들어와 있고, 오전 9시 남짓 마당에 놓은 라디오에서 즐겨 듣는 '이현우의 음악 앨범'이 한창일 때 볕은 데크를 벗어나고 그늘이 조금씩 잔디를 밟고 있고, 오후 3시 즈음이면 볕이 잔디밭을 다 빠져나가 마당 둘레 나무와 건물이 없는 좌우 마당으로 비켜나 있습니다.
우리 집은 배산임수로 앉아있느라 북동향이라서, 동절기에는 볕이 참 귀해요. 10월 중순만 돼도 오후 2-3시면 볕이 다 가시고 스산한 느낌의 어둠이 슬금슬금 찾아옵니다. 이 계절엔 집 안보다 볕이 드신 마당이 훨씬 따듯하기에 열심히 볕을 따라다니며 온기를 느껴요.
상강 즈음의 볕은
상감마마 납시오! 하며 귀하게 오시고,
그 볕을 상감 모시듯 졸졸졸 따라다닙니다.
시골집은 기름 보일러라 난방을 돌리기엔 아직 부담스럽고, 거실의 펠릿 난로를 먼저 개시합니다. 10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일 년의 반은 난로 옆에서 붙여 있어야 하는 생활이 시골집의 고충이자 또 낭만이지요. 마당 데크의 난로와 텃밭 앞 난로에도 불을 지펴봤어요. 난로 불로 고구마도 구워 먹고 오래 묵은 낙엽도 태워봅니다.
그리고 텃밭 앞을 지키는 오래된 난로
전 주인분이 남기고 가신 이 난로는 두꺼운 철로 되어 있는데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연통이 끊어져서, 몇 년 전 거실에 펠릿 난로를 들여놓을 때 난로 사장님이 알루미늄 연통을 새로 달아주셨습니다. 어느새 녹이 많이 슬어 이번에 새 단장을 했어요. 내열성 락카를 뿌려주었더니, '새삥' 난로가 되었습니다.
하얀색 페인트도 구해서 마당 데크 위 식탁과 벤치도 칠했어요. 페인트 작업은 처음이었는데 페인트 뚜껑 따는 것부터 난항, 겨우 겨우 틈을 만들어 페인트를 붓고, 웬일인지 너무 묽은 페인트를 살살 달래 가며 페인트칠을 했더니, 내 손길이 닿아 더욱 정감 가는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마당 일은 내 손길이 닿아서 기능적으로나 심미적으로 더 나아진다기보다는, 그저 내 손길과 대상의 교감 같은 것이 만들어내는 정겨움이 좋아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강 지나고 빨간 단풍이 절정이었던 시골집, 일주일 지나 다시 찾은 11월 첫 주말에는 나무에 매달려있던 단풍이 마당에 다 떨어져 있습니다. 마당에 빨간 카펫을 깐 듯 두텁게 덮인 단풍잎 또한 절경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속절없는 시간
내 마음의 부침과 상관없이 흐르는 자연이 위로가 되는 가을입니다.
1. 마당 볕 따라다니기
2. 봄에 심은 남은 작물 모두 정리하기
3. 마당 난로, 데크 가구에 내 손길 태우기
4. 난로 때우며 가을 정취 충분히 즐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