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나의 꿈은 어디에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by 김정배

“오, 열두발도 돌릴 줄 알아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어느 젊은 한국인 부부의 질문이었다. 남자분으로부터 <열두발>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보통의 사람들이 나의 모자에 대해 <상모>, <농악대>, <사물놀이> 정도의 단어들로만 알고 있지, <열두발 상모>라는 정확한 명칭을 아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기 때문이다.


남자분은 자신도 예전에 상모를 돌렸었다며,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본인도 나의 채상을 사용할 수 있겠는지 물어보았다. “네, 물론이지요.”
벙거지(모자 틀)를 가슴팍 가까이 대고는, 진자(모자와 연결된 추)를 좌우로 흔들어, 진자의 뻑뻑함을 확인하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무림고수의 느낌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드러난 그의 채상 솜씨는 아마추어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프로 중에서도 프로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 오빠 예전에 이것도 배웠었어? 왜 이렇게 잘 돌려?”
여자분이 남자분에게 물었다.
“나, 이걸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다녔었잖아.”
“상모를 그렇게 잘 돌리면서, 왜 그 길을 직업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어? 한예종도 나왔다면서!”
“삼았었었어.”
“응, 삼았었는데! 그래서?”
남자분은 애써 대답을 이어가셨다.
“그래서긴, 뭐가 그래서야? 그걸로 돈벌이가 괜찮았었으면, 내가 이렇게 호주로 돈을 벌러 왔겠어?”


남자분께서는, 이 곳 호주의 도심 한복판에서 상모를 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니, 문득 자신의 지난 20대 시절이 생각났다고 하셨다. 머나먼 타국에서 상모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는 한데, 혹시라도 내가 상모를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본인은 반평생 넘게 상모를 돌리며 살아왔지만, 지금은 돈을 벌러 호주에 왔고, 상모를 그만 둔지도 벌써 몇 년이 다 되어간다고 하셨다. 상모를 돌려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고 하셨다.


상모를 잘 돌려서 대학교를 가실 정도였으면, 그것도 한예종에 들어가실 정도의 실력이었으면, 어릴 적부터 제법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재능을 인정받으셨었을 텐데, 지금은 그 당시의 어릴 적 꿈과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너무 빨리만 달렸었기에 너무나 빨리 지쳐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20대인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현실과 꿈의 괴리는 더 크기만 한 걸까?


공부를 잘한다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칭찬만 받고 자라온 나는 운이 좋게도 내가 목표로 했던 대학교 중 한 곳에 진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졸업을 했지만, 취업에까지 곧바로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온 곳이, 바로 이 곳 호주 멜버른이었다.
금산군수가 되어, 고향의 몰락해가는 지역경제를 살려보겠다던 나의 꿈! 신문기자가 되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 잡고 말겠다던 나의 꿈! 그 꿈들은 다 어디로 떠나간 것일까? 지금 이 곳 호주에서 상모를 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나의 어릴 적 꿈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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