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멜버른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by 김정배

H라는 대만 친구는 두 시간 전에 막 멜버른에 도착했다며, 오늘이 대만으로 돌아갔다가 멜버른으로 돌아온 첫날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이미 1년 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이 곳 멜버른에 왔었고, 다른 도시의 농장에서 세컨드 비자 조건을 취득하고는 대만에 몇 개월 있다가 다시 멜버른으로 복귀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멜버른을 떠난 마지막 날로부터 대략 반년은 지난 것 같다고 하였다. 겨우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도, 멜버른의 이곳, 저곳이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만 하다고 하였다.
몇 개월 전 자신이 자주 걷곤 하였던, 이 곳 스완스톤 스트릿에도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몇 개월 전에 이 거리를 빛냈던 버스커들은 하나같이 전부 새로운 얼굴들로 바뀌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익숙한 얼굴의 버스커를 찾아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덧 나의 버스킹 공연 앞에까지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꿈에 그리던 도시 멜버른이었지만, 그녀가 머물던 시기의 많은 것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였다. 건물도 그대로이고, 도시도 그대로이긴 한데, 그 안을 채운 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바뀐 것 같다고 하였다. 지난 몇 개월을 이 도시에서 함께 웃고 함께 생활했던, 자신의 외국인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모두 자신들의 본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녀가 두 번째로 방문한 멜버른은 그녀의 첫 번째 멜버른과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두 번째 멜버른에서, 첫 번째 외국인 친구가 되었다. 내가 버스킹을 쉬는 날이면, 그녀와 함께 공원을 걷거나, 커피를 마셨다.
나에게는 이미 많은 대만 친구가 있었고, 나에게는 이미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녀와는 좀 더 편하게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멜버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애틋한 감정이 서로 잘 통하였던 것 같다. 우리는 멜버른의 유럽풍 건물들을 좋아했고, 플린더스 스트릿 역의 빛바랜 노란색을 좋아했고, 이 도시 사람들의 삶의 여유와 매너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멜버른을 다시 가고 싶다. 그러나 멜버른을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내가 멜버른을 다시 가게 되면, 나의 기억 속 멜버른에 대한 좋은 기억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질 것만 같아 그것이 두렵다.
H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두 번째 멜버른도, 나의 첫 번째 멜버른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도시의 외관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지언정, 그 도시를 채웠던 그때 그 시절의, 나의 사람들은 이미 이 도시에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멜버른으로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나의 첫 번째 멜버른을 기억하기 위함이라면, 나는 오히려 멜버른이 아닌,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들로부터 나의 멜버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대만의 타이페이, 예를 들면 대만의 타이중, 예를 들면 일본의 규슈, 예를 들면 일본의 오카야마, 예를 들면 일본의 도쿄, 예를 들면 경산, 예를 들면 부산, 예를 들면 대구!
대만의 타이페이와 타이중에는, 그리고 일본의 도쿄와 오카야마에는 나의 또 다른 멜버른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저마다의 첫 번째 멜버른을 품고는, 저마다의 두 번째 멜버른을 꿈꾸고 있다. 내가 정을 주고, 마음을 주었었던, 오랜 친구들, 오늘따라 그 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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