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VB(Victoria bitter) is my favourite beer. I really love it. How about you? What’s your best?”
“What?! VB is your favourite? Kidding me?! Australian beer is bad. Compared to VB, other global brand beer is better, like a miller, and Hoegaarden.”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VB(빅토리아 비터)라는 이야기에 호주 출신인 제시카는 정색을 하며 기겁하였다. 밀러나 호가든과 같은 더 좋은 글로벌 브랜드의 맥주가 있는데, 왜 굳이 VB와 같은 맛없는 호주 맥주를 마시고 있냐고. 만약 제시카가 우리나라의 Cass나 Hite를 세계 최고의 맥주라고 이야기했다면, 나도 제시카와 같은 류의 정색과 기겁을 하지 않았을까?
맥주를 영어로 라거라고도 부른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대학생 때까지도 맥주는 라거 한 종류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파는 모든 맥주가 하나같이 전부 라거뿐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호주에 와서야 맥주에서도 그 증류 방법에 따라, 에일, 비터, 스타우트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난생처음 마셔보는 비터라는 종류의 맥주에 나는 제법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Bitter라는 이름처럼이나 철 맛 같으면서도, 철 맛 같지 않은, 그 특유의 쌉싸름함에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라거는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즐길 수 있으니, 이 곳 호주에서만큼은, 한국에서 즐길 수 없는 것들을 즐기자! 맥주도, 인생도!” 그것이 호주에서의 나의 인생철학이었다.
호텔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같이 사는 셰어하우스 메이트들과 거실의 식탁에 앉아 맥주 한 캔씩을 따며 서로의 하루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여느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았던 분위기! 그래서 우리 셰어하우스에는 맥주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마셔라, 부어라 하고 마신 것도 아니었다. 딱 퇴근 후의 저녁 시간, 맥주 한 캔과 함께하는 소소한 대화의 장!
호주 멜버른에는 있지만, 이 곳 대한민국의 서울과 수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도시를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거리 위의 버스커들이 없다. 옷깃만 스치더라도 본인이 먼저 고개를 숙이며 sorry라고 양해를 구하는 젠틀함이 없다. 최저시급으로 한 시간 일하여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다. (2014년 호주의 최저 시급은 19불, 한국돈으로는 19,000원 정도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2014년 최저시급은 5,210원! 한국에서는 맥도날드에서 빅맥세트를 하나 사 먹기 위해 두 시간을 일해야 하는데, 호주에서는 한 시간을 일하면 두 끼의 빅맥세트를 먹을 수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퇴근 후의 저녁이 있는 삶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맥주, 빅토리아 비터가 없었다.
그래서 간혹 편의점의 세계 맥주 칸에 VB가 보이면, 나는 VB를 있는 대로 싹쓸이하여 쟁여 놓는 편이다. 이렇게라도 호주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것들을 한국에서도 즐기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