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이버리의 <초록 소파>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주사 맞는 것을 무서워한다거나, 약 먹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병원이라는 공간에 들어가는 기분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면, 내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나에게는 잠정적인 환자의 역할이 주어진다.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한낫 아프고 병든 한 명의 환자로 존재한다. 맞다. 나는 한 명의 환자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거듭나면 되는데, 나는 환자로써 나의 상처를 의사에게 보이는 일에조차 창피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내 상처가 스스로 아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프면 아픈 걸 인정하면 되는데, 그래서 일찌감치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콱 맞고, 약 타다 먹으면 금방 나으면 되는 것을, 나는 매번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버티다 버티다 병원에 가고야 만다. 어떻게든 나의 의지와 회복 능력으로 아픈 걸 극복하려다 병을 더 키우는 셈이다.
안 아프다, 안 아프다 생각하면 덜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암시에 의한 착각일 뿐이지, 이미 걸린 병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주사를 맞든, 약을 먹든, 상처가 더 커지기 전에 나의 병을 인정하고 치료하면 될 텐데, 나는 또 그 상처가 곪아 터질 때까지 참고 또 참는다. 그것이 몸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 든 간에 말이다. 이미 아프고 있으면서, 애써 안 아픈 척 자기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럴 거면 애당초 아프지나 말았으면......
'미련'은, 말 그대로 '미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