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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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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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구리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직접 들은 것은 그 날이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개구리가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내가 사 온 새똥개구리는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였다. 얼마 안 가 수컷 한 마리와 암컷 한 마리는 쌍을 맺었고, 알을 낳았다. 처음에 알은 8개였고, 전부 성공적으로 부화해 올챙이는 총 8마리였다. 새똥개구리는 한 번 알을 낳기 시작하면 한 달이 안 되는 주기로 계속해서 알을 낳는다. 첫 올챙이들이 태어났을 때 새똥개구리는 알을 또 낳았다. 그리고 처음 태어난 올챙이들이 뒷다리가 생기기도 전에 새똥개구리는 알을 또 또 낳았다. 각각 10개 정도씩 낳았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낳은 알도 이제는 다 태어났다.


그 뒤부터는 개구리알을 세는 것을 포기했다. 올챙이가 태어나면 올챙이들만 뜰채로 건져서 어항으로 옮겨주었다. 아마 곧 있으면 다섯 번째 올챙이의 파도가 올 것이다. 그런 계산을 하다보니 나는 상상도 못할 숫자의 등장에 놀랐다. 이러다 내 방이 개구리 천국이 되겠는걸?


평범한 고등학생인 나는 방학 기간에도 공부밖에 할 것이 없었고,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개구리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은 유일한 힐링 시간이 되었다.


기념할 만한 것은 뒷다리만 있던 올챙이가 드디어 앞다리도 생겼다는 것이다. 슬슬 대비를 해야 한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순간을 말이다. 새똥개구리의 올챙이는 새똥개구리에 비하면 관리가 무척 쉽다. 먹이를 아무거나 주는대로 먹기 때문이다. 물에 사료를 던져 두기만 하면 다음날이면 없어져 있곤 했다. 사료 뿐 아니라 벌레든, 이끼든, 전부 없어졌다. 무엇이든 잘 먹는 올챙이를 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올챙이가 다리가 나오고, 꼬리가 들어가고, 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개구리는 더 이상 사료를 먹지 않는다. 그 말은 살아있는 먹이를 직접 가져다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성체 개구리는 먹이용으로 파는 어린 귀뚜라미와 조금 큰 쥐며느리들을 주고 있었다. 올챙이에서 이제 막 변화한 개구리는 작은 사이즈 때문에 신중하게 먹이를 골라야 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것은 초파리이다.


초파리, 집에서 마주친다면 아무 쓸모 없는 생물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생물이다. 아마 지금도 수많은 초파리들이 흰 벽에 둘러싸여 희생되고 있겠지. 우리 인간은 그 작은 생물 덕에 살아있음에도, 감사하기는 커녕 혐오하기를 택했다. 혐오는 보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혐오감과 달리 감사하는 것은 능동적인 활동이다. 그렇다는 뜻은 감사한다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에, 감사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 또한 능동적인 활동이라는 말이 된다. 즉, 느껴지는 혐오감을 감사하기로 덮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은 지성체에게 있어 이성보다는 본능에 자신을 맡기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초파리에게 감사한다. 초파리가 없었다면 이제 막 개구리가 된 녀석을 위한 마땅한 먹이가 없었을 것이고, 나는 사육을 포기해야만 했을 것이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말이다.


나는 감사하기로 혐오감을 억지로 덮지 않아도 초파리에게 감사한다는 감정을 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다. 초파리는 개구리에게 입으로 들어가 살이 되는 생존의 문제다. 마치 우리 인간에게 돼지나 소(어쩌면 개구리도)가 생존의 문제인 것처럼. 본능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내가 그토록 징그러워하던 개구리를 맛보고 즐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귀뚜라미, 쥐며느리와 더불어 초파리도 같이 키우게 되었다. 개구리란 손이 많이 가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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