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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진 Oct 15. 2023

왕따 시절 유일한 친구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필리핀으로 이사한 지 3개월 만에 현지 학교에 입학했는데 반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고 피부색이 다른 나를 모두 동물원 원숭이 보듯 했다. 학교생활은 괴로웠다. 5학년이 됐어도 학교생활이 나아지기는커녕 괴롭힘은 점점 더 심해졌다. 여럿이 나를 놀리는 것은 가벼운 장난에 들었다. 나를 향해 심한 욕을 날리기도 하고 이유 없이 주먹으로 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클럽활동을 했는데 나는 ‘Music Club’을 선택했다. 음악을 좋아하거나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클럽 목록에서 내가 알 만한 것이 ‘Music’ 밖에 없었고 다른 애들과 말을 섞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막상 참여해보니 이름만 ‘Music’일 뿐 사실 ‘Bandurria’(반두리아)라는 스페인 민속악기를 합주하는 클럽이었다. 크기가 작아서 어린이가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였고 매력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교실 한편에 있던 기타에 관심이 더 갔다. 쉬는 시간마다 기타를 치고 있던 선생님에게 다가가 코드를 하나씩 배웠다. 흥미로웠다. 그 후 나는 어머니에게 오랫동안 졸랐고 한 악기사에서 학교에서 봤던 것처럼 나일론 줄이 달린 ‘클래식 기타’를 샀다. 어머니는 악기만 있으면 뭐 하느냐며 교습소까지 보내주셨다. 괴로웠던 타국 생활에 낙이 생겼다.


    아직 한국에서 살던 더 어린 시절, 피아노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은 바이엘을 어디까지 쳤느니 체르니 몇 번을 치느니 하며 만날 때마다 서로 자랑했다. 나는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어 음악 시간에 삐뚤빼뚤한 손가락 모양으로 멜로디언을 연주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뒤에서 수군거리며 웃었다. 당시 우리 집은 학원을 보낼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수줍은 성격 때문에 이미 체르니를 치고 있는 친구들 앞에서 ‘도레미’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우연히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에 흥미가 생겼고 6학년이 됐을 때는 어머니에게 먼저 피아노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누나의 악기로 샀던 플루트마저 내가 더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동시에 세 가지 악기를 배우게 되었다. 나의 일주일은 음악으로 가득 찼다.


    어릴 적 내 손 모양을 보고 웃던 친구들은 지금 뮤지션이 됐을까? 모르긴 해도 그들 중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친구들은 없는 것 같다. 친구들보다 늦게 배웠고 특출한 재능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음악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잘하게 되었고 잘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평생 음악을 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나는 작곡가가 되었다. 지금도 음악을 좋아하는 나의 꿈은 할아버지 작곡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작곡가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내게 재능이 있는 걸까?’하고 의심할 때가 많다. 어린 시절 나는 외로울 때 음악을 친구 삼아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양한 악기들을 놀이처럼 배웠다. 나는 누군가의 잔소리에 어쩔 수 없이 연습한 적이 없다. 방과 후 집에 오면 기타에 빠져 살았는데 굳이 나의 음악적 재능을 꼽자면 이렇게 자발적으로 연습했던 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 읽기는 싫어도 악기를 연습하는 데는 누구보다 엉덩이가 무거웠고 그게 힘들어도 싫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래서 흔히 음악은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노력과 의지가 재능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도 그걸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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