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긴 되네

by 맨오브피스

날씨가 슬슬 추워지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서머타임도 해제되었다. 10월의 끝이었다. 할로윈 파티를 기점으로 매출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매출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이 세상에 '충분한 매출'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성과를 보여주어야 했다. 성장하지 않으면 망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개 직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회사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았다. 다만 덕순이와 나의 계획이 걱정이었다. 덕순이가 오기 전에 회사가 망하면 도로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나? 독일에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나? 일한 지 3개월밖에 안됐는데도 실업급여를 주려나?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영업팀이 어느 이스라엘 업체를 물어왔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텔아비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앱 개발사였다. 그들이 개발한 앱을 설치하면 휴대폰 배경화면과 아이콘을 다양한 테마로 꾸밀 수 있었다. 그들은 테마 선택 화면에 광고를 넣고 싶어했다. 처음 들어보는 앱이었지만 유저 숫자는 수백만 명이었다. 좋은 기회였다. 다시 한 번 대박의 조짐이 느껴졌지만, 또 실망하고 싶지는 않아서 기대감을 최대한 낮췄다.


"이렇게 빨리 연동을 끝냈단 말이야?!"


광고 코드와 기술 문서를 첨부해 메일로 보냈더니 10분만에 답변이 왔다. 우리는 놀라며 메일을 열었다. 그들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며 화상 미팅을 하자고 했다.


퍼플팀의 광고 코드는 개인에 맞춰져 있었다. 스마트폰 유저의 개인 정보를 기반으로 각 유저에게 맞는 광고를 제공했다. 한국 유저에게는 한국 광고를 보여주고, 미국 유저에게는 미국 광고를 보여줬다. 신발을 검색하는 유저에게는 신발 광고를 보여줬다. 유튜브 광고가 개인마다 다른 것과 같은 원리였다. 우리에겐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이 있었다. 요즘의 알고리즘과 비교하면 정말 허접했지만, 그 당시 기준으론 최첨단이었다.


화상 미팅을 시작했다. 우리 쪽은 영업팀 한 명과 나, 상대 쪽은 개발사 대표 혼자였다.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퍼플팀의 광고를 원합니다. 하지만 광고 코드는 연동하기 싫습니다."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더 많은 광고가 필요합니다. 유저들에게 같은 광고를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기 싫습니다. 더욱 다양한 광고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광고 코드를 제안드리는 겁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퍼플팀의 알고리즘은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퍼플팀의 광고 코드에 맡기는 대신 직접 고르고 싶습니다. 저희 유저들이 어떤 광고를 좋아할지는 퍼플팀보다 저희가 더 잘 압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일리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받는 광고 요청에는 유저의 개인 정보가 들어 있다. 유저가 위치한 국가, 스마트폰 설정 언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스마트폰 브랜드명 등등. 꽤 상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개발사가 모든 정보를 쥐고 있고, 퍼플팀은 그 정보의 일부분만 받는다. 그 일부분만 가지고 어떤 광고가 먹힐지를 유추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에 살고, 사용 휴대폰은 아이폰5S이며, 주로 가구를 검색하는 제니퍼라는 사람에게 게임 광고를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데이팅 앱 광고를 보여줄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개발사는 제니퍼에 대해 퍼플팀보다 훨씬 더 상세히 알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더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지만, 우리는 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로 했다. 우선 본사 개발팀과 상의했다.


"알고리즘을 만들어 달라던 때는 언제고 이젠 그걸 빼라고?"


반발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가장 급한 건 매출이었다. 못생긴 표정으로 징징거렸다. 개발팀은 투덜거리면서도 다행히 개발에 착수했다. 맞춤형 알고리즘을 빼고, 모든 광고를 한 덩어리로 묶었다. 그리고 그 덩어리를 개발사 서버로 던져 주었다. 광고 내용이 바뀌면 새로운 덩어리를 만들어 던져 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광고 덩어리를 던지는 것 뿐이었다. 던지고 나면 나머지는 개발사의 몫이었다. 그들의 알고리즘이 활약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매출이 터졌다. 서버는 터지지 않았다. 일요일 낮이었다. 매출이 급상승 중이었다. 나는 제목에 'URGENT'라고 써서 모두에게 메일을 보냈다.


"이 그래프를 보라고!"


5분 간격으로 회신이 도착했다. 올라가는 매출을 보며 다들 신나했다. 그토록 느낌표가 많은 이메일은 처음이었다. F로 시작하는 감탄사도 여럿 보였다. 팀원들은 숫자가 올라갈때마다 화면을 캡쳐해 이메일로 공유했다. 점잖은 유럽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올라가는 매출에 환장하는 우리 팀이 자랑스러웠다. 매출 숫자보다도, 다 같이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이 좋았다. 그래도 뭐가 되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 직원들처럼 거대한 보너스를 받지는 않았다(여전히 적자였다). 앞으로 더 벌어야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일단은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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