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태도

역할이 되어버린 사랑들

by Mano

사랑은 이상하게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을 부추긴다.

그래서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주는 사람인 동시에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된다.

무언가를 준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 한편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에서의 ‘줌’은 손실이 아니라 확장에 가깝다.


우리는 주고받음이 서로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질 때,

그 관계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주기 때문에 받는 것도 아니고,

받았기 때문에 다시 주어야 하는 조건화된 행위도 아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라 선택이며,

능동적인 두 사람이 각자의 의지로 상대를 향할 때 성립한다.


그러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많은 글과 말들은

이 자발성을 너무 쉽게 역할로 바꿔버린다.

누가 더 사랑해야 하는지,

누가 더 이해해야 하는지,

누가 더 참아야 하는지를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춰 사랑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임무가 되고,

사람은 주체가 아니라 역할로 환원된다.


물론 현실의 관계는 언제나 완전히 대칭적일 수 없다.

어떤 시기에는 한 사람이 더 주고,

어떤 순간에는 다른 사람이 더 감당한다.

이 비대칭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의 설명을 넘어

지켜야 할 규칙이나 자격 조건으로 굳어질 때다.

역할이 고정되는 순간,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까워진다.


사랑을 역할로 규정하는 방식이 불편한 이유는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한 구도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쪽은 늘 주는 사람으로,

다른 한쪽은 늘 받는 사람으로 배치되면서

각자의 선택과 책임은 흐려진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불만과 좌절은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수행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선택이어야 한다.

다른 선택지들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상대를 향해 움직이려는 태도 말이다.

그 자유가 사라질 때,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워진다.


결국 사랑은 누가 더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여전히 능동적인 위치에 서 있는가의 문제다.

역할이 아니라

선택하는 주체로 서있으려는 애씀이 있을 때

사랑은 비로소 관계로서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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