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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만소 Nov 17. 2022

[5] 사가정역 블루스

 집에 가는 버스에서 그녀와 보았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거의 매일 같은 버스를 타는 듯했다. 최근에  이별 탓인지 짧아진 머리와 잦은 야근에  처진 어깨, 바뀐 이어폰을 끼고 창문에 멀리를 기대어 집에 가는 듯했다.

[ 야, 오늘도 걔 있다.]

 내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웃으며 말을 걸어보라 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뒷 좌석에서 그녀가 내릴 사가정역까지 조용히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상상을 하며, 같이 우산을 쓰고 비 아래를 걷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녀 또한 나를 의식하고 있을까. 나는 끊이지 않은 상상을 했다. 물론 그녀도 내가 자신의 뒷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헤어져."

 우리는 꽤 친구 같았다. 빠른 템포의 블루스 안에서 우리는 서로 한 소절씩을 주고받으며 느릿하게 그리고 잔잔하게 연애를 했다. 우리는 장난으로라도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면 안 됐다. 가족끼리 한 침대에서 자는 거 아니야. 가족끼리는 뽀뽀하는 거 아니야. 그런 식으로 웃어넘기면 안 됐던 것 같다. 서로에게 설렘도, 정도 없고 같이 있으면 웃길 뿐인 널리고 널린 친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 그래도 서로 결혼할 사람 없으면, 나중에 연락해. 결혼이나 하자."

 그렇게 이별을 프러포즈를 받았다. 나는 버려진 넝마처럼 몇 날 며칠을 슬픔에 허우적댔다. 그러나 곧 괜찮아졌고, 이렇게 버스에서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앉기에는 너무 애매하여 두 칸 떨어진 대각선 미묘한 거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끝을 기다렸다.

 곧 그녀가 내릴 사가정역 3번 출구에 도착한다. 비도 오기도 하고, 예전의 끈적함이 그리워진 탓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 아, 오랜만에 비도 오는데 막걸리에 파전 먹을래?"

 그녀가 바뀐 이어폰을 빼고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동태 같은 눈알은 아름다웠다. 오늘 시간이 나면 내가 사준 이어폰은 어딨냐 물어보고 싶다.

" 어, 미안... 선약이 있어서."

 그녀는 눈 한쪽을 찡그리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알았다 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이미 누군가 앉아있었다. 어설프게 그녀 근처에 서서 핸드폰을 보는 척했다.

 곧 버스가 멈추고 그녀는 갈게, 라며 짧은 인사를 했다. 나는 응.이라고 말하고 우리의 마지막을 눈으로 담았다. 창문 밖에 기다리는 잘 생기고 키가 큰 남자와 그에게 안기는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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