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오늘 세 시간 동안 서아 잘 봐줄 수 있지? 나 편하게 차 공부하고 오면 되지?"
드디어 첫날이다.
아이 둘을 연달아 낳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게 얼마만일까. 아직 엄마 젖을 떼지 못한, 백일이 갓 지난 막둥이를 아빠 품에 안겨놓고 나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왔다.
집에서 7분 정도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후, 서촌으로 가는 버스를 찾는 두 눈이 바삐 움직였다. 7025번 초록색 버스. 여느 때 보다 두근거리는 발걸음. 버스 창가에 앉아 살포시 창문을 열고 그 사이로 수줍게 인사를 건네 오는 듯한 바람. 따뜻한 공기. 모든 것이 완벽했다.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내려 통인시장의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조그만 건물의 2층에 '다심헌'이라는 곳이 보인다.
'이곳이구나. 내가 정식으로 차를 배울 곳.'
찻집 딸이지만, 차를 정식으로 배워보는 것은 처음이다.
'차 교육은 어떻게 진행될까? 선생님께서 찻집 딸이니까 많이 알겠지 하고 생각하시면 어쩌지. 난 정말 모르는데. 함께 배우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계단을 올라 2층 다심헌에 도착했을 땐, 마침 우전을 마시고 있는 선생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어~ 저기 혹시 만수가 만든 차 따님 맞죠? 차 수저라고 하던데. 인상이 만수 선생님하고 많이 닮았네요."
미소가 아름답고 목소리가 우아한 느낌의 차 선생님. 뭔가 느낌이 좋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만난 동기 분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길고 네모난 테이블에 둘러앉아 앞에 놓인 다기들을 바라본다.
"자 오늘은 첫 시간이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후에 차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워볼 거예요. 그리고 앞에 놓인 다기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차를 직접 따라 보면서 여러 가지 차들을 마셔보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첫 시간이라 나를 반겨주고 싶으셨는지 우리 집 우전을 처음으로 내어주셨다.
2022 만수가 만든차 우전
신기하게도 정말 자주 마시는 우리 집 차인데도, 약간은 긴장한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펴고 두 손을 다소곳이 들어 올려 향을 음미하고, 한번 두 번에 나누어 마시니 완전히 다른 차처럼 느껴졌다. 아빠가 만든 차가 매우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2022 명차원 우전
다음으로는 명차원 우전을 마셔보았는데, 스님이 만든 차라고 한다.
"선생님, 저희 집 차보다 더 고소하고 맛있는데요."
의문의 1패인가. 만수가 만든 차의 우전은 풀향이 나면서 쌉싸래하면서도 군밤 향이 나는 단맛이고, 명차원 우전은 좀 더 구수하고 깊은 향이 났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 차만 마셔온 차린이인 내가, 이렇게 아빠가 만든 차를 객관적으로 마셔볼 기회가 또 있었던가.
아빠는 요즘 차 공부를 시작한 내게, "아빠 차만 마시지 말고 이것저것 여러 가지 차를 다 마셔봐. 아빠 차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훨훨 날아."라고 말씀하신다.
다도와 차를 마주하는 오늘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한다. 아이들 키우느라 조금은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고, 쉽지 않은 인간관계에 아파하고, 미래에는 뭘 먹고 살까 하는 잡생각들이 난무하는 지금의 나. 차와 다도를 배우며 나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다도와 명상, 그리고 느린 호흡. 그것들이 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갈 때까지. 나는 배우고 계속 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