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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의 순서

2025.3

by 만수당

길게 살진 않았지만 욕심을 부리는 데에 순서가 있었다.

사람 욕심이 첫 번째요, 명예가 두 번째, 돈이 세 번째였다.
나 자신에 대한 욕심은 없다시피해 한 아흔아홉번째 정도였다.

돈 욕심은 없고 사람 욕심은 많았던 탓에
주변의 일에 내 돈쓰기를 아끼지 않았고 아직도 내가 부자인줄 아는 지인도 많다. 주변에서 돈을 빌리려하면 친한 이에겐 받지 않을 생각으로 돈을 주었고 친하지 않으면 빌려주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아도 언젠가 나와 친하게 지냈던 이라면 경조사비를 건넸고 심지어 결혼을 뒤늦게 알아도 마찬가지였다.

또 명예욕심이 돈 욕심에 앞서는 탓에
큰 돈을 벌 기회를 여러 번 내 손으로 버렸다. 선대로부터 실낱같이 이어져내려오던 선비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지도, 그저 내 자존심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눈 감으면 벌 기회에 옳지 않음을 이유로 거절하는 것이 많아지자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권유는 오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도 돈을 많이 벌고 있고 나는 지금도 돈을 많이 벌지 않지만 그럼에도 떳떳하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한겹 두겹 쌓일수록
내가 걸어온 걸음이 의미있는 걸음이었을까 싶기도 할 때가 많다.

사람 욕심은 많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기에 점점 사라져가는 이름들이 많았고 나 홀로 떳떳하고자 해도 같이 하는 이들까지 굶게 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내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바닥 저 언저리에 있는데 남을 돕는다는 것도 의미가 크진 않아보인다.

그래서 결혼할 생각이 점점 없어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날 때와 같이 갈때도 걱정없이 혼자인 것이 오히려 편할 것이라 지레짐작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살아온 흔적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해 가슴 떨리게 흥분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앞으로도 내가 크게 바뀌는 일은 없겠으나 지나온 길에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작은 쐐기 한 조각이 역사를 바꾸었든
나의 삶에 옹이처럼 박혀 빠지지 않을,
그런 쐐기를 만들어내야겠다.

꼭 역사를 바꿈이랴, 그저 흔적 정도 남기면 그만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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