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
오늘은 초등학생 시절 내가 짝사랑했던 아이의 생일이다.
돌이켜보면, 유치원 때의 천진난만한 약속들을 제외하면 내 기억 속 첫 번째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시작은 사소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4학년 가을, 전학 온 아이와 부딪혀 머리에 혹이 나 울고 있었는데, 같은 반 여자아이 둘이 다가와 내 곁에 앉았다. 그 작은 손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다. 울음은 금세 잦아들었고, 마음속에는 이상한 따뜻함이 남았다. 그 순간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둘 중 한 명은 지금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이 바로 오늘 생일을 맞은 그 아이였다.
우리는 학원에서도 짝꿍이 되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다. 수업 시간에 책상을 맞대고 문제를 풀던 기억, 쉬는 시간에 사소한 이야기로 웃던 기억들이 내게는 특별했다. 그러나 마음이 깊어질수록 역설적으로 ‘친구조차 아니게 될까’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 채, 그 거리를 유지하고 말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익명 고백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한메일에 새 아이디를 만들고, 서툰 마음을 몇 줄로 적어 보냈다. 서명도 없고,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좋아한다’는 말만 담았다.
그 아이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도대체 누가 그 메일을 보냈는지 친구들에게 묻고 다녔다. 하지만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사실 알고있었을 것이다. 메일 아이디의 숫자가 내 생일이었으니.
어쨋든 일단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고, 동시에 나만 안고 있는 아쉬움이 되었다.
메일은 계속 이어졌고 어느샌가 그 친구는 자기의 고민, 걱정까지 다 털어두었다. 그 친구 입장에선 나를 잘 알고있지만 누군지 걱정하지않아도 되는 작은 대나무숲이 되버린 셈이다. 그래서 다른 아이와 사귈 때도 나보고 질투나지않냐며 장난치기도했고 보름 만에 헤어지고선 위로를 구하기도 했다.
학원 졸업여행때 진실게임을 할 때도 난 거짓을 답해줬지만 중학교 때까지 꾸준히 연락하다 대학 때에야 연락이 다시 닿았다. 그 친구는 부사관이 되어있었고 한사코 내게 장교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결국 임관은 안했지만.
세월이 흘러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우리는 서로의 삶 속에서 멀어졌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오래도록 남아 있다. 용기를 내지 못한 아쉬움조차 결국은 내 성장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이제는 안다.
사람의 삶에는 이렇게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흔드는 존재가 있다. 오래 만나지 않아도, 그 이름 하나가 어린 날의 나를 불러내고, 잊고 있던 떨림을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오늘 그 친구의 생일을 맞아 나는 다시 초등학교 교실 창가에 앉아 있는 소년을 떠올린다. 그 소년의 서툰 고백과 두려움, 그리고 끝내 건너지 못한 다리까지도 이제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매년 9월 18일, 항상 마음 구석이 아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