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
한때 전차chariot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춘추전국 시대 천자를 ‘만승萬乘’이라 불렀던 것은 만 대나 되는 수많은 전차와 보조병력을 거느릴 수 있는 힘이 곧 제왕의 정통성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고대 전차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고, 통치와 의전, 질서의 구조를 담아낸 제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역사는 고요히 방향을 틀었다. 기술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지고 전략이 전환되면서 전차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기병의 시대가 도래했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무령왕이 북방 유목민의 영향을 받아 '호복기사'를 채택하며 말에 안장을 얹고 편한 옷을 입고 전장에 나섰다. 기병의 기동력은 눈부시게 향상되었고, 활과 창은 점점 더 가볍고 치명적인 무기가 되었다.
전차는 무겁고 유지비가 많이 들었으며 지형이 드넓은 평원일 때 빛을 발했다. 그러나 전장이 중원에서 중국 전체로 넓어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평탄한 들판이 아니라 산과 강, 장거리 원정이 이어지는 복잡한 지형이 펼쳐졌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속도와 유연성은 곧 생존이 되었다. 특히 기병에 비향 느리고 조향마저 떨어지는
전차는 정면 돌파와 대형 유지라는 ‘형식의 미학’을 전제로 했지만 기병은 분산, 기습, 포위, 추격이라는 ‘속도의 미학’으로 전장을 지배했다. 또한 전국시대로 접어들며 수십만의 보병들이 전장에 나왔다. 일종의 하급귀족이던 사士 계급이 전차를 타고 누비던 전장에는 이름모를 농민들이 창을 들고 서 있었다.
기술·환경·전략이 삼합을 이루며 새로운 질서를 열었고, 전차는 더 이상 승리를 보장하지 못했다.
우리 기업도 이와 같다. 오늘날 많은 조직이 여전히 전차로 남아 있다. 설비와 고정비, 복잡한 절차와 보고 라인에 묶여 움직이며, 내부 합의와 의전적 절차가 고객과 시장보다 앞서는 구조다.
반면 기병형 조직은 훨씬 가볍고 기민하다. 클라우드와 파트너십으로 자산을 최소화하고, 짧은 주기로 실험과 학습을 반복하며, 데이터와 현장의 권한을 중심으로 실행한다. 전차형 기업이 규모를 자랑한다면, 기병형 기업은 승률을 높인다.
시장은 이미 기병의 시대이며 고객은 이동하고 기술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장엄한 형식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이 곧 승리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기업은 바뀌어야 한다. 당연히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제품은 모듈과 플랫폼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원가는 고정비에서 변동비로 옮겨가야 하며, 의사결정은 직급이 아니라 데이터와 역할에 붙어야 한다.
조직은 직무기술서가 아니라 스쿼드와 임무 중심으로 움직이고 시장 대응은 고객은 관심도 없는 서비스 런칭이 아니라 지속적 실험과 배포로 이루어져야한다. 공급망은 단일 경로가 아니라 다중 경로와 대체 가능성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리스크 관리 또한 방어적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회복탄력성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기업의 기동력은 이 '전환'에서 비롯된다.
과거의 만승은 천자의 권위였다. 그러나 오늘 기업이 노려야 할 만승은 거대한 규모가 아니라 만승萬勝이다. 한 번의 장엄한 돌파보다 작은 승리의 반복과 학습의 축적이 기업을 살린다. 가설에서 실험으로, 실험에서 확장으로 이어지는 루프를 빠르고 작게, 그러나 끊임없이 돌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의 비용은 제한되고 데이터는 언제나 공유되어야 하며 권한은 책상보다 현장에 있어야하지 않을까.
전차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기업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겨서 살기 위해서다. 기병의 시대에는 기병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가벼움과 짧은 주기, 현장의 권한을 표준으로 삼는 전환.
겉만 화려한 만승萬乘의 그림자를 버리고, 만승萬勝의 루프를 설계하는 자만이 오늘의 전장에서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될 수 있다.